지난해 팔월, 말복을 지났지만, 태양은 대지를 불태울 기세였다. 며칠 전부터 천정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그래서 위층 화장실 바닥을 해부하기로 했다. 해머 드릴의 진동과 파열음이 더위를 더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비지땀을 흘리는 아저씨를 보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덥고 힘들지요?” 냉수 한 병을 내밀자 “이게 원래 제 일인데요.” 감사를 표한다. 산다는 것! 어쩌면 지금이라는 여러 형태가 씨줄과 날줄로 오늘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지금 최선을 다하면 행복은 가까이서 미소를 짓지만, 게으름은 수시로 고개를 내밀어 행복을 밀어내기 일쑤다. 이런 지금의 소중함을 되새김해준 책이 바로 정호승의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 준 한마디’였다. 이 월말이었다. 치매로 어머니를 여의고 십오 년 동안 홀로 지내시던 아버지께서 아흔을 눈앞에 두고 뇌출혈과 신장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장례 기간 내내 주말도 없이 종종걸음친 상흔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하지만 그 후 찾아온 허전함은 우울증을 동반하여 마음의 근간을 흔들기도 했다. 이런 흔들림을 잠재우고 마음을 다독여 준 책이 바로 정호승의 산문집이다. 이 책이 던져준 치유의 깨달음은 두 가지다. 그 첫 번째 속삭임은 ‘
장마를 앞두고 흐린 날씨가 이어진다. 치자꽃 향기에 주위를 둘러보니 눈길 닿는 곳은 짙은 초록이다. 그 초록빛 사이에 분홍색의 바늘 뭉치가 솜사탕처럼 살포시 내려앉은 듯 활짝 핀 자귀나무꽃이 녹색과 대조를 이루며 돋보인다. 돋보일 수 있다는 것, 눈에 잘 띄는 것은 극과 극의 대비가 주는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색의 대비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우리 몸에 있어 상처의 흔적인 흉터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마다 한 두어 군데 흉터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특히 제일 많이 자리 잡은 곳이 무릎일 것이다. 태어나 기어 다니다 걸음마를 시작하고, 조금 익숙해지면 직립보행의 묘미인 달리기를 시작한다. 좌충우돌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성장하다 보니 무릎은 수난을 당한다. 그리고 그 흔적은 흉터로 훈장처럼 자리 잡는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어디에서 미끄러졌는지 바지의 무릎이 찢어져 피멍이 들어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 얼른 보건실로 데려가 소독을 하고 밴드를 부쳐주었다. 그리고 위로한답시고 “야 괜찮아 별것도 아니야. 선생님은 어릴 때 놀다 넘어져 피가 나면 흙을 발라 피를 멎게 한 적도 있는데…….” 이 말에 아이는 무슨 이상한별에서 살다가 온 사람의 이
신은 있을까? 그렇다면 왜 한 여자의 일생을 이렇게 비참하게 짓밟고 형장의 이슬이 되게 하였을까? 공간적 배경은 다르지만 테스가 살던 시대도 그러하였다. 인습에 매어 희생을 강조하는 남성우월주의 시대상은 지금까지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네 여인들의 삶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테스도 그런 여인의 일생을 부각해 주고 있다. 테스는 가난한 소작농의 장녀였다. 부모님은 더버빌 가문이란 옛 명예를 빌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열여섯의 테스를 흑심 있는 알렉 더버빌의 집으로 일하러 보낸다. 그러나 흑심을 눈치채지 못했던 테스는 알렉에게 몸을 유린당하고 사생아를 잉태하지만 죽고 만다. 그리고 그 충격을 뒤로 새 삶을 찾아 다른 농장에서 일하던 중 남편 에인절 클래어를 만난다. 에인절 클래어의 집안은 성직자 가문으로 원리 원칙의 계율을 중요시하였다. 하지만 에인절은 그것에 반감을 품고 양가의 어떤 친척도 없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첫날밤 테스는 지금까지의 있었던 일을, 에인절도 여기까지 오며 있었던 일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고해성사는 또 다른 파장을 몰고 온다. 테스는 남편의 과거를
찬란한 사월도 아픔으로 저물고 있다. 가로수로 심은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밑으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지나간다. 가망을 메고 손전화를 손에 쥐고 단짝인 친구끼리 마주 보는 얼굴과 팔랑거리는 모습이 너무 예뻐 가슴이 아려온다.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저 또래의 아이들이 이 찬란한 사월을 보내고 신록으로 일렁이는 오월도 보지 못한 채 먼 곳으로 가버렸다. 열흘을 넘게 울기도 많이 울고 가슴을 쥐어뜯기도 하였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 어른으로 아버지로 부모로서 한마디의 단말마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한 채 오금을 펴지도 못했다. 입속을 맴도는 말은 ‘미안하다 얘들아! 지켜주지 못해서’ 그러나 차마 내뱉지를 못하겠다. 아직도 생사를 알지도 못하는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이 세월호와 함께 저 바닷속에 있다. 평소에 바다를 참 좋아한다. 출퇴근 때마다 보는 바다는 시원함과 후련함으로 답답함을 달래주어 참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바다 옆을 지나치면서도 바라보기가 싫어진다. 아이들을 삼켜버린 저 바다가 밉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원망의 넋두리가 쏟아진다. 아이들이 보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 모든 일을 경쟁으로 포장하
삼월 마지막 주말입니다. 고속도로변이나 눈이 닿는 곳은 화려한 봄의 속삭임이 연분홍 수채화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다른 해 봄 같으면 참 예쁘다며 입을 모을 것인데 올해는 그렇지 못합니다. “여보, 엄마 우리가 모시면 안 될까? 엄마한테 도움 받은 게 한 두 번이 아닌데 돌아가시기 전에 며칠만이라도 모셨으면 마음이 가벼워 질 것 같아!” 아내의 물음에 대꾸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립니다. 하지만 저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 옵니다. 그것은 아직 지키지 못한 장모님과의 약속 때문입니다. 장모님께서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신세를 진지 어언 반년이 지났습니다. 장모님은 열여덟에 시집와서 이십년 전 장인어른을 떠나보내시고 그동안 이 산 저 산 칡 캐고 오갈피 심어 인근 오일장에 내다 팔며 아들 셋, 딸 둘에 친손주 외손주까지 건사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편해지려나 하니 지난 가을 뇌졸증이란 병마가 덮쳐 그 휴유증으로 세 곳의 병원을 거쳐 지금은 부산 큰 처남댁 부근의 노인요양병원에 계십니다. 다행히 정신은 차렸지만 몸의 오른쪽은 마비가 왔고, 말이 되질 않아 “우, 우! 아 아” 만 반복 하다 한숨과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게다가 얼마나 일을 많이 하셨는지 손가락 마디
화사한 봄 햇살이 꼭꼭 쪼고 간 자리마다 새싹과 꽃들이 만발한다. 눈이 닿는 나지막한 산자락엔 연일 더해지는 봄꽃의 군무가 정상을 향해 달음질하고 있다. 봄은 왜 이렇게 현란할까? 목련꽃 봉오리 부풀어 오를 때 기다림에 지친 가슴 시퍼렇게 멍들게 하더니만 진달래, 개나리 필 때 그 인내를 한계선에 앉히곤 벚꽃, 복사꽃, 유채꽃 환한 날엔 눈물 흘리게 한다. 겨우내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은 육신은 몰려오는 꽃샘바람에 잠을 깨고 한낮 불어오는 훈풍과 환한 봄볕 아래 생명의 수런거림은 응고된 혈액을 녹게 한다. 봄을 타는 것일까? 이렇게 햇볕 좋은 날 유채꽃 향기와 앞산 뒷산 꿩 울음 소리와 지천으로 물드는 산벚꽃과 보랏빛 새순이 망막에 앉을 때면 내 마음엔 꾸역꾸역 역마살이 고개를 든다. 휴일 칩거를 결정하고 돌아앉았지만 소리 없이 비집고 들어온 봄 햇살과 옥빛 하늘은 온 몸을 포승줄로 결박한다. 그래 오늘 하루 봄의 여신을 보듬어 보자. 오월을 준비하는 사월의 봄. 겨우내 칙칙하므로 가득했던 버드나무와 오리나무는 연초록의 진한 향기로 모든 감각을 마비시킨다. 더불어 꽃샘추위로 거세어지는 봄바람은 귓불을 맴돌며 붉은 유혹의 입김을 뿜어내고 햇볕에 졸고 있는 감나무
아직은 겨울빛! 마음을 새롭게 하겠다고 정리를 시작하자 책장, 캐비닛 밑에서 숨겨진 물건들이 먼지와 더불어 나온다. 얼떨결에 밀려들어가 존재감을 잃어버린 돋보기, 바둑알 등 종류도 다양하다. 버리려다 아까워 정리 상자 두었는데 봄 햇살이 창문을 넘자 한 아이가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초점은 밝기만 할 뿐 태우지를 못한다. 아마 장난감 돋보기라서 도수가 약한 모양이다. 아이의 돋보기 놀이를 보며 유년시절을 되돌아본다. 늦둥이로 태어나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쉰을 훨씬 넘기셨다. 그래서 군대 간 형, 서울 사는 누나, 사위에게 편지를 쓸 때면 오 촉짜리 백열등 아래 언제나 콧잔등에 돋보기안경을 반쯤 걸치고 밤 깊도록 방바닥에 엎드려 계셨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을 땐 언제나 안경집에 넣어 윗목에 두셨다. 돋보기는 물체의 모습을 확대하는 기구로 쓰임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그 원리를 모르던 시절 그냥 안경이라고 써 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고 대신 글자나 손바닥에 가까이 가져가면 커지는 것이 참 신기하였다. 이런 돋보기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부채질하는 물건이었다. 과학 시간 햇볕을 모아 검은 종이를 태우는 것을 보자 돋보기는 소유의
전라도 하면 떠오르는 것은 깔끔하면서도 맛깔스러운 남도 음식이다. 특히 지리산을 낀 구례에 가면 서른 여가지 나물 반찬에 된장과 굴비 찌개가 곁들여 나오는 19번 도로변 화엄사 입구의 산채 정식이 입맛을 잃었을 때 최고의 음식이다. 겨울남도 여행. 올겨울 들어 중국발 미세먼지가 자주 발생하여 시야가 좋지 않은 1월 중순 모처럼 조촐한 가족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은 봄가을이 좋은데 단풍 지고 삭막한 회색빛 겨울이 뭐가 좋다고 남해에서 바다를 보는데 굳이 땅끝까지 간다는 투덜거림도 있었지만 이미 결정한 걸음은 벌써 무수한 터널을 뚫어 만든 순천 영암 간 고속도로 위에 있다. 가는 동안 차창을 보며 바람이 불어 시야라도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었지만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조화를 내 입장에 맞춰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란 것을 알게 된다. 전라남도 해남! 남해를 거꾸로 하면 해남이 된다. 문득 지난해 가을 장모님께서 김장거리를 수확하여 택배를 보냈는데 택배 기사가 남해를 해남으로 잘못 적어 해남까지 갔다가 며칠 만에 수신인을 다시 확인하여 남해까지 온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친근한 것은 귀에 익은 멜로디로 흐르는 하사와 병장이 부르는
올해는 꼭 열매를 보고 싶었는데…. 밋밋한 타원형으로 짙은 갈색 반점의 윤기 자르르한 아주까리 씨앗을 이년 전 가을날 산 밭에서 몇 알 주워왔다.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모습이 참 예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손바닥 모양 같은 잎과 단단한 줄기가 매력을 발산하여 집에서도 한번 심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듬해 봄 석분가루로 가득 찬 마당 한 귀퉁이에 서너 알 심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어 썩어버렸거나 새가 물어갔겠지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추석 무렵 가는 줄기를 들어낸 채 아기 손바닥 모양 같은 아주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싹을 틔워 어떻게 하려고 이럴까? 얼마 있지 않으면 겨울이고 얼어 죽을 텐데. 아주까리는 피마자라고도 하며 열대 아프리카가 원산으로 전 세계의 온대지방에서 널리 자란다. 키는 약 2미터이며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후상 한해살이풀로 분류된다. 봄에 파종하여 그해 가을에 열매를 수확하고 어린잎은 쌈이나 나물로도 먹고 가시로 덮인 집 속의 열매는 공업용 윤활유나 설사약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 싹을 틔워 열매를 본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며 그냥 두고 보기로 하였는데 이
이라크에서 외국인이 가장 자주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는 ‘알리바바’라고 한다. 아라비안나이트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등장하는 알리바바는 ‘알리(Ali)의 아버지’라는 뜻이지만 현지에서는 ‘금품을 노린 무장강도, 도둑’이라는 뜻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육과정 전문가 40인’이 모인 팀의 이름이 다름 아닌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다. 인원수에 맞게 참 그럴듯하게 지은 이름으로 이 40인의 도적단은 모두가 두목이 될 수 있는 경험과 지혜를 겸비한 정말 명석하고 해박한 두뇌집단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이 집단의 여정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2013년 6월 18일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맛비와 함께 공모와 선정협의를 거친 40인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만남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교육현장에서는 내로라하는 선생님들로 더러는 면이 있기도 하였지만 모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교육과정 전문가 그 이름에 걸맞게 무엇으로 대변할 수 있을까? 첫 모임을 마치고 남해로 내려오는 길! 전조등에 드러나는 빗줄기를 보며 머릿속은 복잡함으로 가득하기 시작했다. 학교일, 전문서적과 교양서적 탐독 그리고 다양한 자기계발을 위한 연수를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조용하다. 바람 소리뿐이다. 골목을 걷는 발소리가 담벼락에 부딪혀 울린다. 텅 빈 외양간, 몇 달간의 빈집 마당엔 지푸라기와 낙엽, 나동그라진 빈 병들이 지키고 있다. 시골집 대청마루를 두른 샷시문은 자물통을 매단 채 침묵이 흘러내리고 있다. 빈집이라 하여 문이란 문은 죄다 자물통으로 채워져 낯선 이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 혼자 계신 장모님께서 지난 추석 때 뇌졸중으로 쓰러져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몇 주 전 병원을 찾았었다. 언어 기능이 돌아오지 않아 의사 표현이 안 되는 장모님을 대신하여 옆을 지키는 처남이 시간 되면 집에 들러 방아 찧은 쌀과 왕겨 속에 파묻은 무며 된장, 양념 등속을 챙겨가라 하였다. 한해 농사가 마무리될 쯤 쓰러지셔서 거의 다 지은 농사를 내버려둘 수 없어 도회에 사는 처남이 주말을 이용하여 갈무리한 모양이었다. 정적이 흐르는 대문 앞. 성하실 때 같으면 차 소리만 듣고도 굽은 허리를 반쯤 펴며 자네오나 하며 몇 개 남지 않은 숭숭 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달려 나오셨을 것이다. 눈앞이 흐려진다. 덩달아 아내의 얼굴도 어둠이 가득하다. 주인 없는 집의 형세를 아는지 대문간에서 집을 지키던 절굿공이 두께만 한 엄나무도 밑동이 썩어져
손바닥만 한 부소암 뜨락에 늦가을 햇살이 얇아져 간다. 산 아래 두모마을의 다랑논이 아지랑이처럼 얼룩져 보이고 멀리 소치섬과 노도가 떠 있고 고개를 돌리면 망운산과 호구산이 가까이 다가선다. 늦가을 금산! 복곡 저수지 부근은 아직도 단풍이 붉음을 토해내고 있지만, 산허리 부근 위로는 겨울 색이 완연하다. 그 가을의 끝자락 부소암에서 그리움과 회상이 불사를 기다리는 기왓장에 깃들고 있다. 금산의 가을! 화보에서 본 가을 경치를 직접 셔터에 담아보기 원했지만 시원찮은 다리로 무리라는 생각에 가을 내내 미뤄왔다. 이런 기다림의 반전은 찬 바람이 더 해지고 앵강만 물빛이 진한 파랑으로 변하는 십일월의 마지막 주말 몸을 곧추세우게 한다. 금산의 참모습을 보려면 산행을 해야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문명의 이기인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정상부근까지 오른다. 산을 오르는 임도 부근 골짜기 여기저기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단풍들이 화려한 가을을 토해내며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조금 더 일찍 왔어야 하는데……. 이번에 금산을 찾은 목적은 부소암을 보는 것이었다. 금산을 여러 번 올랐지만, 그 숨은 비경인 부소암을 찾을 기회는 그리 쉽지 않았다. 어떤 해는 휴식년재로, 산불
봄이 파스텔톤의 연분홍으로 아래에서 위로 번져간다면 가을은 소슬함과 깔끔함을 더한 다홍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물들어 온다. 남해의 가을! 옥색으로 물든 하늘을 닮은 바다와 야트막한 산과 언덕을 물들이는 단풍의 합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을날 바래길을 걸어본 사람은 도심 속 고궁의 가을보다 청순함과 자연미를 담고 있는 남해의 가을 색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속해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하여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다른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자신이 속한 환경이 얼마나 좋은가를 다시 알게 된다. 서울! 그곳은 인구 천만이 넘는 우리나라 제일의 도시이다. 잠시 일이 있어 찾았다가도 빼곡한 고층건물과 차량 행렬 그리고 무수한 인파와 숨이 막힐 듯한 공기로 인해 누가 붙잡지도 않았는데 종종걸음으로 도망쳐 나오기가 일수였다. 이런 서울에 싫든 좋든 이틀 동안 포로가 되었다. 그것은 전교생 서른 명 남짓한 시골아이들과 함께한 한려해상 퓨전 서울탐방 국립공원 생태나누리 행사였다. 서울방문에 아이들은 잔뜩 기대에 차 있지만 왠지 출발하기 전부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남해의 바다를 뒤로 북으로 향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속도로변의 가
이른 봄 잎이 피기 전 길을 밝힌 벚나무 잎이 발갛게 물들고 있다. 만개한 꽃보다 더 깔끔한 붉은 색의 조화에 가까이 잎을 보니 군데군데 까만 반점과 벌레에 먹힌 구멍들이 지나온 몇 달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십일월의 초입 초겨울을 향해 밤낮 기온이 반전을 거듭하자 나무들은 겨울 채비를 한다. 돌아보는 시간! 생활이 녹록지 않았던 시절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하는 일이 겨울용 땔감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깻단, 솔가리, 나무 그루터기, 솔방울 등 불 땔 수 있는 것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렇게 나무를 하는 일이 일상이 되다 보니 인가 근처 산은 비로 쓴 듯이 깔끔하여 땔감을 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저마다 도끼, 낫, 갈퀴를 바작에 짊어지고 먼 곳의 산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자기 소유의 산이 있는 집은 그나마 낫지만, 그것도 나무를 누가 해 가는지 산지기 노릇도 해야 하는 가진 자의 불평도 있었다. 몇 년 전이었다. 망운산 망운사로 아이들과 늦가을 산 오르기를 하였다. 높은 곳에서 남해읍이며 강진만을 내려다보며 경치 좋다고 하자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은사님께서 철들어서부터 대학교 다닐 때까지 이곳까지 지게 지고 나무하러 온 일이 수십
가을이 되면 종종 혼자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시월중순 아침의 원천마을 바닷가. 앵강만 너머 호구산 정상은 가을 색이 묻어난다. 며칠 반짝 차가운 날씨로 대기가 불안정해서 인지 바람에 일렁이는 잔물결이 방파제에 부서진다. 아침 8시를 지난 수협원천위판장 방파제 안쪽에 방금 닻을 내린 고깃배들이 물결에 심하게 요동친다. 평소 같으면 잘 보이지 않던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시퍼런 하늘을 가른다. 방파제 덕분에 앵강만 깊숙이 걸음을 옮겨본다. 그 안쪽에는 정박한 뱃전에 남정네들이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흔들림도 개의치 않고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에 삶을 나누는 모습이 풋풋하다. 시간의 기다림은 변화를 가져온다. 금산 줄기 위로 솟아오른 아침 햇살이 양털 구름 사이에서 푸른 하늘을 빛나게 하고 바다를 조명한다. 햇살 따라 푸른 잉크가 에메랄드빛 바다를 한 붓 그린 것 같다. 가을 그 결실의 끝자락 시월의 하루는 참 짧다. 마늘을 심고 비닐을 씌우고 시금치를 뿌리고 싹을 틔운 마늘밭에 비닐을 덮고 구멍을 뚫는 촌부의 손끝은 바쁘기만 하다. 찬 바람이 옷깃을 한 번 더 스칠 때마다 자꾸 고개를 들어 서산으로 떨어지는 해를 살펴본다. 이렇게 땅의 가을은 바다에도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