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인 우리 아이가 친구를 때렸는데 운이 없었던지 코뼈가 부러졌어요. 피해자 부모님이 오백만원의 보상비를 요구하며 합의하자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아이 장래를 위해서도 빨리 합의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입장이고, 피해자 엄마가 교무실에서 우리 아이를 구타한 사실 때문에 아이가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평소 남을 때리고 피해주는 아이가 아닌데 한번 때린 것으로 이렇게까지 상처를 받아야하는지요?” 학교폭력법 시행과 자진신고기간의 여파로 학교폭력 가해자 부모들의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 피해자 측의 강력하고, 때론 과한 요청 때문에 가해자부모가 상담을 해오는 경우이다. 피해자부모는 다치고 멍든 아이를 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테고, 정신적인 충격까지 보상받으려면 얼마를 요구해도 부족할 듯한 심정이다. 게다가 가해학생을 발견하면 그냥 두고 싶지 않다. 맞은 아이 대신 때려서라도 분함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다. 반면, 가해자의 부모는 우선 아이들 크면서 싸울 수도 있다는 인식이 전반적이다. ‘우리 아이도 피해를 당할 때가 있었고 이번엔 피해를 좀 주게 되었다’는 정도이다. 물론 다친 아이 부모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요즘 학교
1962년 국경전쟁으로 인도군 1400여명 사망 지난 4월분쟁접고 ‘전략적동반자’관계 합의인도“서북부 인도 영토 중국이 강점” 주장중국맥마흔선 남쪽, 근거 없이 인도 지배해 중국의 고등학생들이 사용하는 인민교육출판사의 ‘세계근대현대사’에는 1962년 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서술이 없다. 다만 1947년 인도의 독립, 1955년의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1961년의 비동맹운동 등에 대해서는 기본 내용을 비중 있게 서술하고 있다. 중국교과서에서 중국과 인도의 영토 문제를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교재는 ‘전국 중-소학 교사 계속교육 교재’인 ‘세계정치 다극화와 지연정치’(인민교육출판사 2001)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0년 중국과 인도는 국교수립 50주년을 맞이했다. 쌍방관계는 최근에 호전되었지만, 양국 사이에는 변계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1960년 저우언라이의 인도 방문 시기에 인도는 변계문제에 대한 담판을 거절했다. 1962년 인도는 변계충돌을 도발하였고, 중국은 자위를 위해 반격해야 했다. 1987년 인도는 맥마흔선 이남의 인도통제지역에 아루나찰 프라데시를 세워 중국의 주권을 엄중히 침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
壽만이라도 누릴 이름은 바로 “선생” 大學之道란 뜻은 우리 전통 우스개 이야기 가운데 훈장은 모르는 것이 없어야하는 기대와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무지 틈에서 발생하는 모순이 하나의 유형을 이루고 있다. 두 사람의 도학 선생이 서로가 자신의 주장이 참 도학이요, 상대의 도학은 위선이라며 싸웠다. 아무리 싸워도 승부가 나지않아 공자님을 찾아가 판정을 내려주길 바랐다. 이에 공자는 계단을 내려와 ‘나의 도리는 너무 커 일치한다는 법이 없다. 두 선생의 도리는 진정한 도학으로 평소에 존경해 온터로 양편다 위선이 없다’ 두 선생은 좋아라하고 돌아가자 공자의 제자들이 ‘시비를 가려야지 둘다 맞는 도리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묻자 공자는 ‘너희들 말도 옳다’고 했다. 어느 한 스승이 수업을 하는 도중 한 제자가 대학지도(大學之道)가 무슨 뜻입니까고 물었다. 스승은 술에 취한 척하며 ‘너희들은 내가 술에 취했을때만 골라서 묻는다’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물었다. ‘대학은 책 이름이요 대학지도는 그 책속의 도리입니다’하자, 이튿날 서당에 가서 ‘어제 누가 뭣을 물었더라’하고 아내가 일러준대로 대꾸해주었다. 이어 한 제자가 일어서 ‘재명명덕(在明明德)이란 무슨 뜻
충북대 교육대학원 동문회(회장 김전원 청주교육청 교육장)는 19일 청주중앙초등교 강당에서 2005년도 정기총회 및 친선 배구대회를 개최했다.
혈액형 맞아 보이는 건 바넘효과 때문 복잡한 것 단순화시키는 것, 인간특성 작년 말 지방의 한 금융회사가 직원을 모집하면서 특정 혈액형으로 지원자를 제한하다 물의를 빚었습니다. 이 회사는 취업알선사이트에 “신용결격 없고 성실한 분. □형과 ☆형만 지원해 주세요. 다른 형은 지원 삼가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채용공고를 냈습니다. 이를 한 네티즌이 다른 사이트에 올려 널리 퍼지게 되었고 항의의 글이 잇따랐습니다. 혈액형 채용공고가 큰 파문을 일으키자 채용공고 담당자는 공고내용 중 혈액형 부분을 삭제하는가 하면 사죄의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따금씩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혈액형을 제목으로 한 노래가 있었는가 하면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몇 달 전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75.9%가 상관관계가 밀접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과연 혈액형과 성격은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원래 혈액형은 1901년 오스트리아 빈 병리학 연구소에서 일하던 세균학자 란트슈타이너가 수혈할 때 피가 엉기는 것을
학교폭력이 지속되고 있는 기간 중에는 언제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존재한다. 그런데 폭력사실이 알려지고 난 후에 학교나 경찰이 손을 대서 사후처리를 할 때 쯤 되면, 가해자는 숨어버리고 오로지 피해자만 분명하게 남는다. 피해자는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지만 가해자는 숨어 버리거나, 밝혀져도 일단 부인을 하기 때문에 가해자로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에는 시간도 걸리고, 힘도 든다. 특히 이렇게 가해학생을 분명히 가려내는 일을 교사가 하게 될 경우 그들은 십중팔구 딜레마에 빠진다. 교사로서 가해학생을 분명하게 가려내서 학교 내에 정의를 세워야한다는 생각과, 가해학생도 결국 내 학생인데 가급적 그의 잘못을 숨겨주고 약화시켜서 처벌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 스승의 도리가 아닐까하는 딜레마이다. 결국 이런 이유들 즉, 가해학생을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것과 가해학생도 내 학생이니 집요하게 파헤쳐 잘못을 구태여 밝혀낼 필요가 있을까하는 온정주의 때문에 대다수 학교에서 폭력에 대한 대처는 가해학생에 대한 처분 보다는 피해학생에 대한 처분 쪽으로 이루어졌다. 즉 가해학생은 숨어있어서 찾지 못하거나, 설사 찾았더라도 학생과 학부모의 부인과 항의 등에 부딪쳐 효율적인 처분
俗人과 달라야 한다는 인식 스승 풍자한 ‘호질’ 우리 옛 전통사회에는 스승에 대한 곱지않은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 시각 가운데 하나로 공자 맹자를 내세워 도학자연 하면서 위선적인 생활을 한다는 허점을 들 수 있다. 곧 가르치는 내용과 행실이 일치하지 않은데 대한 공감대가 여염에 형성 돼 있었던 것이다. 이 스승의 허점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 박연암의 소설 ‘호질(號叱)’이다. 도학자연한 훈장 북곽선생이 동리자라는 이웃 동네의 청상과부집에 가서 몰래 데이트를 하는데 그 과부의 아들들이 그 밀회의 말소리를 엿듣고 의논을 했다. 북곽 선생같은 도학자가 그러할리는 만무한지라 뒷산에 여우란놈이 북곽 선생으로 둔갑해서 과부 어머니를 꼬시는 것으로 판단, 작당을 해서 몽둥이질을 하며 여우를 쫓았다. 도망치다 오줌독에 빠졌고, 간신이 빠져나오자 호랑이가 앞을 막고 으르릉거린다. 이에 호랑이의 인격을 찬양하고 목숨을 구걸하자 호랑이는 북곽 선생의 위선적인 생활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우리 여염에 떠도는 우스개 이야기도 도학군자이길 기대하는 서당 훈장의 당위성과 그러하지 못한 실제 행실을 두고 하나의 유형을 형성하고 있다. 훈장이 글을 가르치다 문득 잠이 들었다. 눈을 깨고
공동책임, 무책임과 같아 타인의 존재가 그 이유 한 여인이 밤늦게 직장에서 귀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집에 들어서려는 순간 노상강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칼을 들고 그녀를 습격했습니다. 놀란 그녀는 도망가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습격자는 그녀를 쫒아가 칼로 찔렀습니다. 인근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몰래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출동도 없었습니다. 결국 30여분의 저항 끝에 그녀는 살해당했습니다. 인근에 살고 있던 주민들 중 38명은 나중에 자기들이 그녀의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러 나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경찰에 전화 건 사람조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경찰에 신고된 것은 그녀가 사망한 지 20분이 지나서였습니다. 경찰이 출동하고 앰뷸런스가 그녀를 실어갈 때조차 누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1964년 뉴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희생자의 이름을 따 키티 제노베스 사건이라고 하는 이 사건은 일반인의 상식과 너무나 어긋나서 당시의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회문제 전문가들은 도덕적 타락과 소외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타인들의 존재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했거나 그 조짐이 보이면 신속하고 적절한 대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학생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알리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상황을 주변에 알리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상황이 많이 악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러한 경우에도 학생들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주변에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러므로 학교폭력의 조짐이나 진행상황이 감지되는 경우에는 이미 학생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는 전제 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학교폭력의 문제는 그 원인이나 진행과정, 결과가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그러므로 대처과정도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피해학생을 위한 정신적·신체적인 의료 조치부터 시작해 피해학생을 위한 보호 조치로써의 경호지원과 피해·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 재활 및 지속적인 학습여건확보 등 복잡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이뤄져야 한다. 학생들 간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다툼 정도로 상황을 잘못 판단하여 미온적으로 대처하면, 사후에 법률적인 책임을 지
中대륙 사회주의, 홍콩・대만 자본주의 ‘一國兩制’ 원칙 대만 독립이나 영토 중국과의 분리, 용납될 수 없어臺灣대륙 역사 배제, 역사만 독립과목으로 다뤄 ‘일국양제’ 주장으로 관계 파탄, 중국측 책임 강조 2005년 3월 14일 중국의 제10회 인민대표대회 제3차 회의에서는 ‘반분열국가법(反分裂國家法)’을 제정・통과시켰다. 중국과 대만(臺灣) 사이(즉 兩岸關係)에서는 이 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그동안 치열한 논쟁과 비판이 이어졌다. ‘반분열국가법’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대만독립을 주창하는 분열세력의 국가분열을 반대하고 저지하며 조국의 평화통일을 촉진하고, 대만 해협(海峽)지구의 평화안정 및 국가주권과 영토의 완결 그리고 중화민족의 근본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에 근거하여 본법을 제정한다.” “(제2조): 세계에는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륙과 대만은 모두 하나의 중국에 속하며,…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다. 국가는 절대로 ‘대만독립’을 주창하는 분열세력이 어떤 명분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제3조): 대만문제는 중국 내전에서 비롯된 미해결 문제이다. 대만문제를 해결하고
‘삼장마을’ 남긴 연산군 스승 제자위해 목숨 바쳐 명나라를 건국한 태조 홍무제(洪武帝)는 정비에서 낳은 다섯 아들을 비롯 26명의 왕자를 두었었다. 이 왕자들은 당시 봉건제도에 따라 전국에 나라를 갈라 주어 사병을 거느리게 했다. 다섯 정비 소생의 아들들이 변방 왕으로 나가기 전에 홍무제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소문난 지행일치의 거유(巨儒) 方孝孺(방효유)를 한림원 시강으로 삼아 자신을 비롯 황태자와 이 왕자들에게 제왕학을 가르치게 했다. 글이 짧았던 홍무제 자신도 틈을 내어 이 스승의 말을 듣곤했던 것이다. 곧 방효유는 명나라 건국의 문치적 역할을 담당한 제왕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홍무제의 손자 건문제(建文帝)가 즉위하면서, 삼촌들인 변방 왕들의 세력이 커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핑계를 대어 처형을 일삼았다. 이에 불안을 느낀 연왕(燕王)은 선수를 쳐 남경의 왕궁을 불사르고, 조카인 건문제를 추방해 죽이고 군신의 추대 형식으로 제위에 오른다. 이사람이 바로 수도를 북경 자금성으로 옮긴 영락제(永樂帝)다. 당시 건문제가 스승으로 곁에 받들고 있던 방효유는, 영락제에게도 스승이다. 건문제 측근들을 무참히 살해 제거했지만, 방효유는 스승이기도 하려니와 명성 높은 대
귀인은 행동의 원인 파악하는 것 동기부여는 내적요인을 강조해야 한 학생의 성적이 예상과 달리 아주 좋게 나왔습니다. 이럴 때 아마도 선생님은 그 학생이 어떻게 그렇게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실 겁니다. 이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인지, 아니면 시험이 쉬웠는지, 혹은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그 원인을 따져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거나 아니면 부정행위를 했다는 등 어떤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와 같이 행동의 원인을 찾는 것을 귀인(歸因, attribu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에는 다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 많습니다. 가령 학교장면에서만 하더라도 그 학생이 왜 다른 학생과 다투게 되었는지, 왜 이번 시험에는 성적이 엉망으로 나왔는지, 왜 오늘 지각하게 되었는지…. 그러한 원인들에는 성격이나 태도, 기분, 체력 등과 같은 내부의 것일 수도 있고, 운이라든가 주위의 압력, 돈, 날씨와 같은 외부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시험을 잘 봤을 때 ‘공부를 많이 해서’라고 말하면 내부귀인이지만, ‘문제가 쉬워서’라든가 ‘운이 좋아서’라고 말
“왕따로 찍히면 학교생활은 끝장이에요. 친구 모두에게 ‘생까’당하기 때문에 죽기보다 싫어요.” 지난해 6월 서울 S중 조모양(15)이 집단괴롭힘 끝에 집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뒤, 참고인 조사를 받은 조양의 친구들이 경찰에 진술한 내용이다. 학교폭력의 많은 유형 중 제일 무서운 것이 바로 ‘왕따’, 즉 따돌림이다. 왕따는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대화거부, 모함, 약점 들추기, 공개적 비난, 시비 등의 방법으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소외시키고 괴롭히는 일체의 행위다. 6개월에서 1년 이상 진행되면 정신적 손상을 입게 되는데 20대가 되어서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한다. 잘난 척하거나 친구들을 무시하는 아이, 교사에게 고자질하는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 튀려고 하거나 돈을 안 쓰는 아이도 왕따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물론 모자라는 아이도 표적이다. 4년간 법정 소송 중이던 어느 왕따 사건을 맡은 적이 있다. 아이는 고1때부터 반 친구 전원에게 왕따를 당하다 2학기때 학교와 해당 교육청을 상대로 민·형사재판 14건을 진행했다. 그 결과 민·형사소송에서 일부 승소를 얻어냈지만 소송과정에서 친구와 학교, 교육청으로부터 다시 한번 왕따를 당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어야
10년 유배형…고을수령도 쫓겨나 문묘臺石의 의미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을 모시고 후학을 가르치는 전통 배움의 전당 문묘(文廟)에는 뜰방 양곁에 커다란 대석(臺石)이 놓여 있음을 이따금 볼 수 있다. 맷돌 또는 편대(鞭臺)라 하여 이곳에 올라 앉아 자신이 스스로의 등에 매질을 하는 현장이다. 곧 향시(鄕試) 이상의 과거에 급제한 선비로써 삼강오륜에 어긋난 짓을 했거나 도덕적인 사안으로 양심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으면, 야밤에 몰래 이 맷돌을 찾아 웃옷을 벗고 올라앉아 등에 피가 서리도록 가죽매질을 하여 속죄하고 자책을 하여 가책에서 벗어나곤했다. 문묘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도 교육상 잘못이 있거나 자책거리가 있으면 이 맷돌을 찾아 매질을 했다. 물론 자신의 잘못뿐 아니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삼강오륜에 위배되는 일을 했거나 적지않은 사람들로부터 지탄 받을 일을 저질렀을 때도 스승은 맷돌을 찾았다. 이때에는 매질할 회초리를 한묶음 꺾어들고 과오를 저지른 제자를 대동하고 든다. 그리고서 스승은 문묘의 선현에게 큰절을 하고 자신이 잘못 가르쳐, 슬하의 제자가 이런저런 못된 짓을 저질렀으니 스승으로써 선현앞에 뵈올 낯이 없다 사죄를 하고 응분의 벌과를 받겠나이다고
나쁜 소식은 본인에 가장 늦게 전달 돼 부정적 감정 전달자와 연결꺼리기 때문 다음은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외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들의 합격여부가 궁금해졌다. 학교를 나서기 전에 교장 선생님은 자기 집에서 전화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선생님들에게 하면서 메모를 남겨 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간 터였다. 그러나 아무도 전화메모를 건네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벌써 합격자 발표가 났을 텐데, 집에서 전화가 안 온 줄 알고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 보았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부인은 메모를 남겼는데, 전화를 받았다고 나서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들은 아마 학생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것이 선생님에 대한 흉이라든가 악의적인 별명 혹은 학생들 사이의 불미스런 사건처럼 선생님이 듣기 싫은 이야기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나중에 듣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영원히 듣지 못하고 학생들을 떠나보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쁜 소식을 전달하지 않으려 합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위 사례에서처럼 교장 선생님의 아들이 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