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에 나오는 양진(楊震)이란 사람은 평생 교육에만 종사하던 학자로, 당시 뛰어난 학식과 고매한 인품으로 ‘관서지역의 공자’라는 평이 있었다. 나이 50이 돼서야 태수라는 벼슬자리를 맡게 돼 임지로 가고 있는데, 때마침 전에 자신이 추천했던 왕밀(王密)이 현령으로 있는 고을을 지나게 됐다. 왕밀은 앞으로도 계속 양진의 덕을 볼 요량으로 깊은 밤에 양진을 찾아와 황금 열 근을 덥석 바쳤다. 그러자 양진은 “나는 그대를 알아주었는데, 그대는 나를 몰라주니, 이럴 수 있는가?”라고 힐난했다. 이때 왕밀은 “캄캄한 밤이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暮夜無知者)라고 대답하니, 양진은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알고 있다.”(天知, 神知, 我知, 子知)라고 일갈했다. 이 말은 들은 왕밀은 너무 부끄러워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양진은 사적인 만남을 일체 거절했으며 더욱 공명정대한 태도로 직무에 임했다. 양진은 이후에 고관이 됐으나, 그의 자식들은 늘 평범한 음식을 먹었으며 외출 시에는 그 흔한 가마도 타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 후손들도 좀 고려해야 되지 않겠냐며 재산을 모을 것을 권하자, 그는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내 자손이 청백리의
2010-05-06 17:41계포(季布)는 한(漢)나라 때 사람으로 신의와 정의로운 행동으로 명망이 높았다. 한때 항우를 도와 번번히 유방을 곤궁에 빠뜨렸었는데도, 유방은 승리를 거둔 후 그의 인품을 높이 사 그를 사면해주고 나아가 벼슬을 내릴 정도였다. 한 번은 유방이 죽고 그의 황후인 여후(呂后)가 정권을 쥐고 있었는데 흉노왕이 여후를 희롱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것은 ‘당신은 과부고 나는 홀아비이니 서로 잘 지내는 것이 어떠한가?’라는 매우 모욕적인 내용이었다. 이에 여후는 노하여 여러 장수를 불러 이 일을 논의했다. 그러자 상장군 번쾌가 십만 병의 병사를 이끌고 쳐들어가서 흉노를 혼내주겠노라며 큰소리쳤다. 여러 장수들이 여후에게 아부하느라 번쾌의 말대로 하자고 서로 거들었다. 그러나 계포는 “이전에 고조는 흉노와의 전투에서 사십만의 병사를 이끌고도 평성에 갇힌 적이 있었는데, 번쾌는 십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하니 이는 거짓입니다. 황후의 면전에서 아첨하느라 천하를 동요케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순간 모든 사람이 계포가 이번에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두려워했으나, 여후는 곧 회의를 끝내고 다시는 흉노를 공격하는 일을 꺼내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의 국세가 흉노만 못하였는데,…
2010-04-26 11:50전국시대에 노중련(魯仲連)이라는 고사(高士)가 있었다. 그가 조(趙)나라에 머물고 있었을 때 진(秦)나라가 쳐들어와 조나라의 수도를 포위했다. 진나라를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진나라 임금을 황제로 받드는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의 후환의 두려운지라 조나라와 친한 다른 나라들조차 조나라에 사신 보내어 그리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이때 노중련은 본래부터 흉악한 진나라가 황제국이 되고나면 천하에 끼쳐질 그 폐해가 더욱 클 것이라는 점을 조목조목 논증하고는, 만약 진나라가 황제국이 되면 자신은 그러한 세상에서 굴욕적으로 사느니 차라리 바다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노중련의 말에 크게 깨달은 각국은 진나라의 칭제를 허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며 군대를 보내어 조나라를 도왔다. 그러자 진나라는 할 수 없이 조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에서 벗어난 조나라는 감사의 표시로 노중련에게 천금을 주고자 했다. 이때 노중련은 “진정한 선비는 남을 위하여 환난을 풀고 반란을 해결하고도 보상을 받지 않습니다. 만약 보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장사치의 도(道)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조나라를 떠났다. 이와 같은 고사에서 나온 성어 ‘사금도해’(辭金蹈海)는 의를 위해 재물을
2010-04-05 11:54일상에 찌든 우리에게 참 지혜의 글로 오랫동안 깨우침을 주셨던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 스님은 마지막의 순간까지도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하셨다. 자신의 사리는 찾지도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고 하셨다. 더 이상 자신의 책을 출간해 세상에 말빚을 지게 하지도 말고, 또 자신의 머리맡에 있는 책은 신문배달부에게 전해주라고 하셨다. 아울러 자신에게 소유한 것이 있다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일에 쓰라고 하셨다. 열반 뒤에도 무소유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신문을 통해 스님의 일생을 돌아보니, 공자의 말 한 마디가 떠오른다. “선비는 마음을 크게 하고 굳세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어짐의 실천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으니 막중하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할 일이 끝나니 먼 길이 아니겠는가?”(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이 말에서 나온 하나의 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은 막중한 임무를 오랫동안 실천해야 함을 비유한 말이고, 또 하나의 성어 ‘사이후이’(死而後已)는 어떤 일에 죽을 때까지 온 힘을 기울임을 가리킨다. 불자에게 유가의 말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2010-03-18 13:52북송시대의 화가 문동(文同)은 대나무 잘 그리기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문동은 자기 집 앞뒤 마당에 여러 종류의 대나무를 가득 심고서, 춘하추동 흐리거나 맑거나 바람 부나 비 오나 항상 대숲에 가서 대나무의 성장과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하여 대나무의 길이와 굵기, 댓잎의 모양과 색깔 등을 음미해보고 새로운 느낌을 얻으면 곧 방으로 돌아와 지필묵을 준비하여 마음 속의 대나무 이미지를 그렸다. 이렇게 하기를 날이 가고 달이 흐르자, 다른 계절, 다른 날씨, 다른 시각의 대나무 형상이 모두 그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게 됐다. 그리하여 그는 붓을 들고 종이 앞에 서기만 하면 즉시 평소에 관찰했던 각종 모습의 대나무를 생생히 재현해내곤 했다. 그가 대나무를 그릴 때면 매우 침착하면서도 자신에 차있었고, 그가 그린 대나무는 마치 실물인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그는 늘 겸손히 “나는 단지 내 마음속에 이루어진 대나무를 그려낼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성어 ‘흉유성죽’(胸有成竹), 즉 ‘마음 속에 이미 완성된 대나무가 있다’는 말은 ‘어떤 일을…
2010-03-08 14:02중국 속담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장돌림이 강을 건너다 배에서 떨어졌다. 다행이 한 어부가 근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장돌림은 그에게 소리쳤다. “나는 큰 부자요. 나를 구해주면 금 백 냥을 주겠소.” 어부는 그를 구하여주었다. 그러나 그 장돌림은 어부에게 금 열 냥만을 주었다. 어부가 약속과 다르다며 항의하자 장돌림은 말하였다. “당신은 물고기를 잡아 하루에 얼마를 버시오? 잠깐의 수고로 금 열 냥을 벌고도 만족하지 못한단 말이오?” 어부는 실망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떴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이 장돌림이 탄 배가 이번에는 암초에 걸려 뒤집어졌다. 이때 마침 전에 이 장돌림을 구해주었던 어부가 그곳에 있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은 왜 저 사람을 구해주지 않는 것이오?” 어부가 대답했다. “저 사람은 금 백 냥을 주기로 약속하고서는 주지 않은 사람이오.” 어부는 서서 상인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국시대 정(鄭)나라의 어떤 사람이 신을 사기위해 먼저 끈으로 자기 발의 크기를 재고 나서 시장에 갔다. 그가 마음에 드는 모양의 신을 골랐는데 그제서야 그 끈을 집에 두고 온 것을 알았다. 그가 집에…
2010-03-02 09:09요즘 장안의 화제는 단연 밴쿠버 올림픽의 스피드 스케이팅이다. 모태범, 이상화 선수는 500m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승훈 선수는 5000m에서 동양인의 체력한계를 극복하고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은메달을 땄다. 그런데 이들 세 선수는 본래 이렇게까지 성적을 내리라고는 기대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물론 세계가 “도대체 이들이 누구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이럴 때 쓰는 고사성어가 ‘일명경인’(一鳴驚人)이다. '사기'의 ‘골계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전국시대 때 제(齊)나라 위왕(威王)은 처음에 정사를 돌보지 않아 결국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됐다. 신하들은 왕의 진노가 두려워 아무도 간언을 올리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때 순우곤(淳于髡)이라는 신하가 나서서 왕에게 “나라에 큰 새가 있는데 삼 년 동안 대궐에 머물면서 울지도 날지도 않습니다. 왕은 이 새를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왕은 이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날았다하면 하늘 끝까지 치솟고, 울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울었다하면 사람을 놀라게 한다.”(此鳥, 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
2010-02-18 14:29후한(後漢) 초에 두융(竇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때 광무제(光武帝)는 아직 천하를 다 통일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두융은 처음에 하서(河西)지역 장액군(張掖郡)의 한 곳에서 도위(都尉)라는 작은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선정을 베풀어 얻은 민심을 바탕으로 주변 다섯 군(郡)의 태수들과 두터운 친교를 맺고 난 후 그들을 잘 설득하여 다섯 군의 십만 병사를 지휘하는 하서오군대장군(河西五郡大將君)으로 추대될 수 있었다. 그는 추대될 때 한 약속을 지키고 정치를 관대하게 하여 점차 세력이 강대해졌다. 이때 감숙 지역에서 외효(隗嚣)라는 사람이 황제를 참칭하고 촉 지역에서는 공손술(公孫述)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황제라고 하면서 후한의 광무제와 대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무제는 두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깨달아 사신을 보내어 말하였다. “외효와 공손술이 스스로 황제라 부르며 나와 대립하고 있는데 당신은 저울을 가지고 있는 격이다. 당신이 발을 어느 쪽으로 옮기는가에 따라 가볍고 무거운 쪽이 결정될 것이다.”(擧足左右,便有輕重)라고 하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두융이 광무제의 신하가 되어 십만 병력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자 과연 후한이
2010-02-08 10:12작년 한 해도 교육계는 많은 굵직한 이슈들로 어수선했다. 학업성취도평가 공개, 외고입시 개혁, 교육세 폐지, 입학사정관제 확대, 미래형교육과정 제정, 교원평가제 실시, 학원 심야교습 단속 등이 그것이다. 작년에 이루어진 이러한 정책의 초점은 대부분 사교육 억제에 맞추어져 있다. 즉 망국적 사교육의 뿌리를 뽑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람직한 교육을 위한 건설적인 조치라기보다는 교육외적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조치였다.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교육의 근간을 건드린 적이 없다. 다만 기존의 교육 틀로 인해 나타나는 그때그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새 정책으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옛 책에 “한 쪽으로 휜 것을 똑바로 잡으려다가 다른 쪽으로 휘게 하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벌어진다.(矯枉過直, 古今同之)”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현재의 우리 교육정책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정권과 교육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이러한 느낌을 갖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논어'에서 유약(有若)이라는 공자의 수제자는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쓴다. 왜냐하
2009-12-31 09:21온 나라가 세종시 문제로 벌집을 쑤신 듯이 시끄럽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선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도 옳아서 도대체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이 문제가 모두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 혹은 경제적 이익과 중차대하게 연관돼 있어 첨예한 대립과 논쟁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과 논쟁 속에 우리가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어느 읍의 수령이 되어 공자에게 정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을 빨리 이루려고 하지 말라. 작은 이익을 보지 말라. 일을 빨리 이루고자 하면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 작은 이익을 보면 큰일을 성취하지 못한다(無欲速. 無見小利. 欲速, 則不達. 見小利, 則大事不成.)." 이 말에서 나온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성어는 어떤 일이든지 철저한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추진하지 않으면 미처 생각지 못한 변수에 적절히 대응을 할 수 없어 도리어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뜻이다. 세종시 건설 원안에 대하여 찬성하는 쪽의 ‘지방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화해소
2009-11-25 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