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아침 7시가 채 되기 전에 교문을 들어서니 교실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교실마다 불이 켜져 있다고 하니 당직하신 오 주사님께서 아침 6시가 되기 전부터 문 열어 달라고 문을 두드린다고 하더랍니다. 학생들의 기말고사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는 아침입니다. 어제 시험 첫날 오후, 무용을 가르치시는 선생님께서 제9회 울산무용제 팜플렛과 초대권 두 장을 가져 왔네요. 토요일 오후 7시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해프닝’이라는 현대무용을 선보인다고 하면서요. 그리고는 따뜻한 녹차 한 잔을 가져와 차를 마시면서 ‘해프닝’에 관한 대화를 잠시 나눴는데 무용선생님의 진면목을 보는 듯했습니다. 무용의 전문가라 방학 때만 되면 강사로 초빙되고 전국체전 때 팔선녀 지도, 개막식 무대공연 지도 등을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이상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팜플렛에 ‘해프닝’ 제목 하에 선생님의 사진과 함께 ‘안무 정○○’라고 되어 있어 안무가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춤동작을 만들고 지도하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정 선생님께서 직접 춤 내용을 구상하고 16명의 무용수들에게 역할분담을 하고 춤을 가르치고 하면서 약 두 달 동안 연
2006-07-01 09:22자녀가 앉았던 책상에 어머니들이 다시 앉았다. 이렇듯 배움에 대한 열기는 나이와 장소의 장애를 훌쩍 뛰어넘는 마력(魔力)이 있다. 리포터가 근무하는 우리 서령고에서는 2000년도부터 학교 도서실을 지역주민들을 위한 평생교육원으로 전면 개방했다. 화요일에는 요리강습, 수요일에는 컴퓨터 활용능력반, 목요일에는 중국어 회화, 금요일에는 독서·문예창작반을 개설해 요일별로 짜임새 있는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들 강좌에 수강신청을 하여 완전 무료로 양질의 수업을 받을 수 있다. 본교가 이렇게 모든 수업을 무료로 실시할 수 있는 것은 장소와 강사 선생님을 학교측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컴퓨터반은 학교 멀티미디어실을, 요리반은 가사실습실을, 중국어회화반은 도서관의 영상정보실을, 독서·문예창작반은 도서관의 열람실을 사용하고, 강사 선생님으로는 본교의 유능한 각 과목 전공 교사를 초빙하기 때문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전혀 없다. 개설된 강좌들은 모두 지역주민들의 참여도가 매우 높은 인기 프로그램들로, 우리 학교에서는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을 위한 각종 지식과 정보 제공 및 삶의 질 개선 등을 위해 다양한 평생교육프로그램을 계속 증
2006-06-30 13:39선생님, 오늘은 마음이 좀 가볍지 않으십니까? 학생들은 기말고사로 인해 힘이 들겠지만 선생님들은 4일간 수업을 하지 않으니 그나마 부담이 적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학교의 꽃인 백합이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네요. 작년보다 키도 훨씬 크고 꽃도 더 하얗고 큼직하며 우리 학생들의 순결을 뽐내듯이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우리의 교목인 태산목도 함께 새하얀 꽃을 피우고 있으니 학생들의 무궁한 성장을 기대하고 있으니 더욱 볼 만합니다. 더위를 식혀줄 만큼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험기간이고 하니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시험을 앞두고 아름다운 모습과 안타까운 모습이 함께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시험기간 때는 학생들이 알아서 공부를 잘 하기 때문에 늦게 출근해도 될 법한데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시간이 일정함을 봅니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일찍 오셔서 교문지도를 하네요. 부장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출근하셔서 근무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아침 8시 교실을 둘러보니 2층에서 한 선생님께서 학생 한 명과 함께 골마루를 쓸고 있었습니다. 정말 보기가 좋네요. 보통 때보다…
2006-06-30 13:39도서관 뜰 감나무 아래에 심어놓은 나팔꽃이 어느새 가녀린 덩굴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덩굴손과(科) 식물들은 한결같이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 가녀린 식물이랍니다. 며칠 전, 큰비가 내릴 때까지도 미처 부목줄을 마련해 주지 못했더니, 살짝 스치는 바람에도 그만 길고 가녀린 손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참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드랬습니다. 그런데 오늘 점심때 산책을 하다 보니 천사 같은 정원사 아저씨가 얼기설기 실사다리를 설치해 놓고, 나팔꽃의 여린 덩굴손을 가져다 살며시 사다리 위에 얹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아침에 얹어놓았는데 점심때쯤엔 벌써 앙증맞은 여린손이 그새 탄탄한 사다리줄을 힘차게 부여잡고 하늘나라 구경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니 비로소 후유~하는 안도의 한숨이 다 나오더군요. 문득 진한 보라색 나팔꽃을 감상하자니, 이 세상에는 저 덩굴손처럼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꼭 필요한 경우가 참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 사랑을 잃어버린 채 빈 껍질로 살아가는 사람, 마음이 허허로운 사람. 사람, 사람.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저 나팔꽃처럼 탄탄한…
2006-06-29 17:54우리 반 승현이와 아웅다웅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인터넷 매체에 올렸다가 마음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엄청난 댓글에 쏟아지던 비난과 격려, 누리꾼들끼리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오히려 더 성숙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리라. 3월 첫날부터 지금까지 그 아이로 인해 겪었던 어려움으로 병원에 가기도 하고 두드러기까지 발병한 요즈음이다. 적지않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체벌을 범죄시 했던 나의 교육관을 송두리째 뿌리뽑게 만든 그 아이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내 생애의 아이'임에 분명하다. 4권의 교단일기를 쓰며 아이들과 살아가는 내 일상을 참 감사하게 살아왔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거라는 자부심으로 아이들만을 보고 살아온 내 삶속에서 교실을 빼놓으면 남는 게 별로 없을만큼. 나를 거쳐간 어떤 아이들에 비해 유별난 아이를 만나 날마다 홍역을 치르는 일상을 보낸지 벌써 4개월째이다. 아직도 그 아이는 뛰고 달리고 친구를 때리며 소리지르고 울며 안하무인이다. 칭찬 스티커를 사용하며 달래기도 하고 좋은 말로 꾸지람도 해보지만 순간에 그치고 다시 반복하는 아이. 일분만 교실을 비워도 금세 난리를 피워서 친구들과 싸우고 때리던 모
2006-06-29 15:382학년 O반 5교시 영어시간. 오랜만에 교실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로 활기가 넘친다. 사실 지난주까지 교실은 몇 명의 아이들이 강원도 도민체전 강릉시 대표로 참가한 탓에 썰렁하기까지 했다. 며칠만에 나타난 아이들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건강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것은 며칠 동안의 수업결손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자칫 시험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따라서 조금은 마음을 추슬러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훈화라도 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도민 체전에 참가한 아이들 중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유난히 학급에서 몸집이 큰 탓일까. 씨름 선수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한 녀석이었다. 하여 모교의 명예를 높였기에 기특하기도 하였다. 우선 은메달을 딴 것에 축하를 해주고 난 뒤 손을 든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래,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니?” “선생님,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무슨 시간을 말이니?” “제가 저희 반 아이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이야기인데 그러니?” “사실 이번 도민체전에 다녀오고 난 뒤 느낀 바가 있습니다. 그 느낀 점을 아이들에게
2006-06-29 15:21잔인한 5월이 지나갔다. 올해 스승의 날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재량휴업일’로 지정하여 교사와 학생이 모두 떠나 학교 스스로 문을 닫았다. 스승과 교직사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불신’을 넘어 상호이해의 단계로 나아가보자는 고심의 산물이었다. ‘경찰의 날’에 경찰을,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을 생각하듯이 ‘스승의 날’에도 교사들에 대해 일년에 한번쯤만이라도 왜곡된 시각이 아닌 호의적인 관심을 가져보는 날 정도로만 생각해도 족하겠다는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촌지 문제가 사라지기는커녕 언론에서는 오히려 이날이 마치 ‘선물이나 촌지 따위를 주고받는 날이었음’으로 더 왜곡되게 편향된 시각으로 보도함으로써 교직사회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잖아도 해마다 5월이면 때 맞춰 붕괴된 공교육, 촌지나 바라고 성추행이나 일삼는 교사 등 해묵은 이야기를 들춰내 교직에 대한 질타를 빼놓지 않을 터였는데 스스로 학교 문까지 닫았으니 ‘오죽했으면 학교 문을 닫겠느냐’는 교육현실에 대한 암울함까지 비춰져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많은 날로 두고두고 기록될 것이다. 유네스코가 1994년 ‘세계 스승의 날’로 선포한 10월 5일을 현재 100여 개국이 기념하고 있건만 스승
2006-06-29 15:16오늘 저녁 '야자'시간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볍습니다. 내일은 놀토인데다가 스위스와의 경기 자체가 승패를 떠나 신나는 볼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녁시간도 좀 즐거워리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1학년 '야자'감독을 하시는 네 분 선생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으면서 너무나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이렇게 학생들로부터, 학부모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낭패를 당하고 봉변을 당하다니! 오늘 기간제 음악선생님께서 수행평가를 하고 나서 학생들에게 점수를 공개했는데 나중에 보니 채점시에 한 학생의 결시로 인해 점수를 잘못 기재한 것을 알고는 다시 수정해서 불러줬더니 처음보다 점수가 낮은 학생 5,6명이 와서 교무실 골마루에서 선생님에게 찾아와 눈을 부릅뜨고 팔짱을 끼고서는 내 점수가 적게 나왔는데 왜 그런지 증거를 대라, 평가기준이 뭐냐고 따지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평가기준이 있다. 내가 성악전공자다. 정확하게 채점했으니 그리 알고 돌아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더랍니다. 심지어는 나도 선생님만큼 평가할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개는 나보다 더 노래를 못 불렀는데 왜 나보다 점수가 높느냐?고 따지더랍니다. 착하고
2006-06-29 15:15최근에 교육부 일환으로 각급 학교 도서관 꾸미기가 한창이다. 기존에 있던 도서관을 최신식의 정보기기와 장서를 구비해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쉽게 찾고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변모시키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존의 있던 우리 초중고 학교의 도서관은 대부분이 책을 보관하는 장소이거나 혹은 학생들이 교과 공부를 하는 독서실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고등학교로 올라 갈수록 도서관은 제 기능을 상실하고 대부분이 독서실 대용이거나 혹은 일명 특수반 아이들의 공부 장소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올해 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도서관을 새롭게 정비하게 되었다. 예전의 도서관은 말 그대로 의자와 책상, 그리고 철 지난 옛날 책들만이 먼지가 쌓인 채 꽂혀 있었다. 공간 리모델링에서부터 장서 구입, 그리고 정보 기기 구입까지 완전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데 무려 몇 개월 시간이 소요되었다.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짜내 완성시킨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공간과 장서를 구입하고 나서 문제는 발생했다. 학교 도서관의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사용 용도를 두고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도서관 담당자로서…
2006-06-29 15:14한 주의 반환점을 막 돌아설 즈음이면 평지를 걷던 소가 둔덕을 오르듯 헐떡이게 마련이다. 월요일부터 쌓인 피로가 목요일쯤 되면 보따리 풀리듯 슬그머니 밀고 나오는지라 자칫하면 수업도 늘어진 테이프처럼 탄력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서 목요일 수업은 일부러 아이들의 발표를 유도하거나 아니면 관심을 끌 반짝 이벤트를 준비하던지 그도저도 아니면 긴장의 끈이 풀리지 않도록 수업 분위기를 바짝 조일 필요가 있다. 오늘따라 밀린 업무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수업 시간에 활용할 이벤트를 준비하지 못했다. 이럴 때면 내키지는 않더라도 활시위를 들고 목표물을 겨냥하듯 수업 분위기를 팽팽하게 당기는 것이 상책이다. 내심 아이들을 닦달할 생각으로 교실문을 열고 교단에 올라섰다. 출석부를 펴고 출석 점검을 하려던 순간, 교탁 한 귀퉁이에 배를 깔고 누워있는 여인네가 자석처럼 시선을 끌어 당겼다. 탁상용 달력인데 비키니 차림의 서양 미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요염한 자태를 흘리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미 저녁 노을처럼 붉게 물든 얼굴은 그렇다 쳐도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누구야, 이런 그림을 올려놓은 사람이
2006-06-29 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