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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창가에서>맑고 순수한 아이들에게 빠지다

언제부터인가 ‘몇 학년을 맡았니?’라는 질문은 ‘업무가 뭐니?’라는 말로 바뀌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년보다 맡은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인사는 학년보다는 업무 때문에 얼굴을 붉힌다. 3월 신학기에 형평상 저학년을 맡게 되었다. 저학년은 수업이 적은 대신 학교의 큰 업무를 맡게 돼 무거운 짐을 지고 출발했다.

웬만한 선생님의 목소리에도 끄떡없는, 큰 덩치에 고집이 잔뜩 영근 고학년 아이들에게 익숙한 눈은 2학년 아이들을 보면서 잠시 당황스러웠다. 작은 몸, 가녀린 체격, 큰소리 한 번에 우르르 쓰러질 것 같은 연약함이 갑자기 낯설게 다가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왠지 저학년을 대할 때는 필자도 목소리와 몸짓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익숙한 간결체 대신 습관화되지 않는 나풀거리는 몸짓, 민들레 깃털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연습하는 연극배우처럼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맞춘 행동(?)을 했다.

‘귀엽다’, ‘순진하다’, ‘착하다’, ‘순수하다’. 고학년에서 상실당했던 아름다운 단어들의 체험이 행복하다. 내 이야기에 기쁨 넘치는 눈망울로 목젖 젖혀 웃어 주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내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었던가. 분명 별 내용이 아닌데 대단한 이야기를 해준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 웃음이 또 보고 싶어서 괜히 점잖은 이야기에도 다양한 목소리와 몸짓을 자꾸 넣게 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큰 꾸중이라도 한 것처럼 발표 차례가 되자 눈물 졸졸 흘리는 소심함에 내가 더 미안하고 당황스러워서 “괜찮아, 울지마.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돼”하고 달랜다.

신학기, 한껏 2학년의 순수함에 빠졌다. 마치 다른 인간의 세계에 들어선 것처럼 내 마음, 긴장의 둑을 거침없이 허문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해맑은 행동과 웃음이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이 순수함이 학년이 끝날 때까지도 익숙해지지 않길 기도한다. 성장하면서 잃어버리고 마는 순수함과 귀여움에 일 년 동안 감동받고 싶다.

화이트데이, 모두 집에 돌아간 텅 빈 교실에서 민수가 말 한마디 못하고 새빨개진 얼굴로 내민 것은 초코파이 하나. 수줍은 어린 총각에게 초코파이 하나 받고 내 마음도 수줍어서 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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