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교육이 위기다. 학교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학부모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학생의 기대는 복잡해지며, 동시에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은 점점 늘어난다. 교사들은 교육적 신념과 판단보다 책임 회피와 위험 관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고, 결국 교사로서의 주체성을 잃어간다.
학교가 제 역할을 찾지 못할 때, 학생의 성장을 돕는 교사의 실천이 형식화될 때, 학교교육은 단순히 대입을 위한 수단 혹은 돌봄의 기능으로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것이 바로 이러한 상황이다. 이 교육의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외부의 새로운 정책이나 시스템만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교육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교사들의 주체적 실천이다. 그것이 바로 교사 리더십이다. 교사 리더십은 공교육을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핵심 동력이자, 학교를 신뢰의 공간으로 되살리는 중요한 길이다.
리더십은 모든 교사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질이다
교사 리더십이란 단순히 관리자나 보직 교사에게 한정되는 특수한 역량이 아니다. 이는 ‘교사가 교육활동 수행 과정에서 동료 교원과 학생·학부모가 교육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주도적으로 돕고, 지원하며, 안내하고, 촉진하는 영향력1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교사 리더십은 교사라면 누구나 가진, 혹은 가져야 할 자질이다. 과거에는 학교 리더십이 주로 교장이나 중간 관리자 중심으로 논의되었지만, 현대의 교육에서는 학생의 성장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든 교사가 학교 리더십의 중심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사들은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복잡한 행정업무, 학생 돌봄까지 학교 안의 모든 영역에 대한 과도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자로 존중받기보다 각종 민원과 책임 추궁, 심지어 소송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고립된 환경에 놓여있다. 이러한 현실은 교사들의 자존감을 크게 하락시키고 있으며, 젊은 교사들의 학교 현장 이탈을 부추기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OECD TALIS 2024 조사’2에 따르면, 한국 교사 10명 중 2명(21%)이 교직 선택을 후회하고 있으며, 이는 OECD 평균(11.1%)의 약 2배 수준이다. 주된 스트레스 요인은 ‘학부모 민원 대응’으로 56.9%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과 압박에 놓이면 먼저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많은 교사는 자신이 교육자로서 가졌던 소명을 잃고 ‘관성적 직업인’으로 머물게 된다. 관성적 직업인이 된 교사는 교육적 신념보다 ‘내 책임이 아닌 최소한의 선’을 지키려는 수동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구조적 문제를 학교 조직에 고착시킨다.
첫째, 교육의 질이 하락하는 결과를 낳는다. 앞선 조사에서3 한국 교사의 주당 행정업무 시간은 6.0시간으로 OECD 평균(3시간)의 두 배에 달한다. 문제는 단순한 업무량의 과다가 아니라, 수업 연구가 아닌 행정업무가 교사의 주된 일상 업무로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교사는 정해진 행정절차대로 행정업무·공문처리를 기계적으로 하면서, 학급은 최소한의 관리 위주로 운영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시킨다.
또한 학생의 성장을 돕고 수업의 질을 높이는 수업 연구는 ‘주된 업무’가 아닌 ‘추가 업무’로 전락한다. 교사가 수업을 연구하려면 업무 시간 외 별도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즉 수업 연구는 이제 의무가 아닌 ‘선택’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시간이 부족해지면 교사는 자연스럽게 익숙한 방식에 안주하게 된다. 수업은 학생의 삶과 괴리된 채 문제풀이식 암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는 질 높은 교육은 열정페이를 감수하는 소수 교사의 몫으로만 남겨진다.
둘째, 교사의 효능감 상실 및 학교 조직의 건강성이 저하되는 결과를 낳는다. 교사 리더십의 핵심은 교사가 자신의 교육적 영향력에 대해 갖는 신념, 즉 효능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관행과 이에 따른 행정절차들은 교육활동 위축으로 이어져 교사의 효능감을 약화시킨다.
‘OECD TALIS 2024 조사’4에 따르면, ‘학업에 관심 없는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하기를 잘할 수 있다’는 한국 교사의 응답률은 59.5%로, OECD 평균(83.5%)보다 24.0%P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교사들이 수업에 대한 동기 부여 영역에서 자신감을 잃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방해가 되거나 시끄러운 학생을 진정시키기를 잘할 수 있다’는 응답도 74.7%로, 한국 교사가 OECD 평균 대비(87.3%) 12.5%P나 낮게 나타났다. 교실 관리의 어려움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무력감은 교사들의 개인적·집단적 실천 의지를 꺾고, 궁극적으로 학교 조직의 건강성을 해치고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 된다.
셋째, 아무리 훌륭한 교육정책이라도 교사들의 주체적인 해석과 실천이 부재하면 현장에서 힘을 잃고 교육적 효과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 OECD Education 2030, WEF Education 4.0 등 세계적 교육혁신의 흐름 속에서, 그리고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허주 외, 2020)5에서도 미래지향적 역량교육의 성공적 실행이 결국 교사의 전문적 역할 수행 능력과 역량에 달려있음을 확인하였다. 교육정책은 교사의 손에서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교육으로 전환된다. 교사들의 적극적인 해석과 재구성, 실천이 없으면 정책은 형식적인 공문과 행정 절차에 그칠 뿐, 학교 변화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없다.
학교의 관성을 깨는 교사 리더십의 세 가지 핵심 역할
이러한 학교의 관성을 깨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은 교사 리더십 회복에 있다. 교사 리더십은 ‘실천적 철학과 책임 의식’에서 발원하며, ‘관계적 실천’을 통해 학교 전체를 움직이는 힘을 발휘하는 역동적 동력이다. 학교 안에서 교사 리더십을 발휘한 교사의 사례를 보면, 교사 리더십은 학교 안에서 세 가지 핵심 역할을 해낸다.
첫째, 철학 기반의 ‘배움 재설계’를 주도한다. 교사 리더십을 발휘하는 교사는 교육을 학생의 삶 전체를 책임지는 과정으로 인식한다. 그들은 학생을 점수로 선별하거나 판단하는 관행에 저항하고, 학생 개개인의 성장 잠재력을 믿으며 ‘배움 재설계’를 주도한다. 수업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학생의 삶과 가치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격적 만남’의 장으로 재정립하며, 학생을 평가의 대상이 아닌 성장의 주체로 단호하게 세우는 힘은 바로 교육철학과 책임 의식에 기반한 교사 리더십에서 나온다.
둘째, 신뢰 기반의 ‘관계적 실천’을 통해 협력을 이끌어낸다. 교사 리더십이 이끈 변화는 고립된 개인의 헌신에 기반하지 않는다. 동료 교사들과 학생과의 연결을 통해 정서적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실천하면서 집단적 변화의 동력을 확보한다. 비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이나 교육문제, 수업 등 학교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동료들과 공유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용기는 교사 간의 깊은 신뢰와 공동체적 연대에 기반할 때 가능한 실천이다.
셋째, 성찰을 통한 ‘실천의 지속성’을 확보한다. 교사 리더십은 ‘지속적 성장과 발전 지향’을 기반으로 할 때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과거의 실수나 타인의 충고와 지적 지극을 자양분으로 삼아 ‘깊이 있는 자기성찰’을 실천하며, 자신의 지식과 감각이 낡지 않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학문을 탐구하게 한다. 교사 리더십을 발휘하는 교사들에게 리더십은 일회적인 성과가 아니라, 학생과 학교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끈기 있는 실천의 지속성 자체인 것이다.
교사 리더십 정착을 위한 제도적 존중과 구조적 지원
급변하는 시대에 교사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교육의 안전망이자 학교 변화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교사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교사의 리더십이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요소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째, 교사에 대한 제도적·사회적 존중이 필요하다. 교사의 교육적 판단이 정당하게 존중받고, 혁신적인 시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실패나 문제에 대해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지 않는 심리적·제도적 안전망이 구축돼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보호는 교사들이 두려움 없이 창의적인 교사 리더십을 발휘할 용기를 줄 것이다.
둘째, 협력과 실천을 위한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 교사 학습공동체 활동을 교사 리더십 함양의 핵심 과정으로 인식하고, 과도한 필수 연수를 축소하며, 교사들이 수업과 성찰, 배움을 위한 실제적인 시간과 자원을 확보하도록 공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질적인 지원은 교사들이 협력과 실천을 통해 성장하고 효능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셋째, 민주적 학교문화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학교의 경직된 문화와 비효율적인 관행은 교사들의 자발적 리더십 발현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이다. 따라서 관리자 리더십 교육을 강화하고, 학교 조직 전체가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수평적인 협력 문화를 갖추어 교사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환경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학교문화의 근본적인 혁신이야말로 교사 리더십 발휘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된다.
넷째, 자기 철학 내면화와 성찰을 통한 끈기 있는 성장 기회가 필요하다. 교사들은 자신의 교육철학을 깊이 내면화할 때 교육자로서 내적으로 단단하게 무장할 수 있다. 또한 끊임없이 자신의 교육활동을 성찰할 때 그것이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는 동력이 된다.
교사의 교사 리더십은 학생의 삶과 학교의 미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다. 우리 사회가 교사들의 주체적인 리더십 발휘에 주목하고, 그들의 실천을 존중하고 지지할 때, 학교는 비로소 변화를 수용하고 희망을 만들어 가는 살아있는 교육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다. 결국 교사의 교사 리더십이야 말로 교육의 위기에 맞서 공교육의 근본을 다시 세우는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