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농소중학교 이틀째 출근입니다. 아침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찍 출근했습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차가 어제만큼 밀리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비가 왔지만 오히려 조금 더 빨리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오니 고등학생이 아닌데도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일찍 일어나 일찍 등교해서 자습하려고 하는 마음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어제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에게 부임인사 후 운동장에서 학생들에게 부임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울산여고 못지않게 운동장은 잘 정돈되고 관리되어 있었습니다. 운동장에는 트랙이 깔려 있고 인조잔디가 깔려 있어 보기가 참 좋았습니다. 울산여고의 복사판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고등학생들을 대하다 중학생들을 대하니 더 다정다감합니다. 더 귀엽게만 보였습니다. 운동장에 모여 듣는 태도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다음과 같이 부임인사를 했습니다. 마치고 나니 박수를 치는 모습도 너무 귀여워보였습니다. 참 좋은 학교에 왔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행복에 젖기도 하였습니다. “5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농소중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22일에 처
오늘은 새 학교 첫 출근이라 긴장된 탓인지 새벽 두 시 반에 잠이 깬 후 그 후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조금 늦게 출근하나 어쩌나 망설이다 평소 때와 같이 아침 6시 45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첫 출근길이라 길도 낯설어 운전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린애처럼 마냥 마음은 들떠 있었고 기분을 좋았습니다. 선생님들에게 아침인사를 몇 가지 머릿속에 정리한 것 말하나 아니면 메모한 것 읽어드리나 하다가 결국 메모한 것을 읽는 것으로 부임인사를 대신했습니다. 메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농소중 교장으로 부임하여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을 한없는 영광으로 생각하며 기쁘게 생각합니다. 부임하는 첫날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니 젊은 시절 연인을 만나는 듯 가슴이 벅차고 설레입니다. 평생 잊지 못할 오늘 아침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범서 구영에서 농소중학교까지 18km의 거리를 차를 타고 오면서 ‘선생님들이 학교생활에 만족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해 드려야지.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도와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출근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장실은 언제나 열려있습니
연수원 주변은 언제나 봐도 좋다. 눈만 뜨면 들을 수 있는 건 새소리고, 커텐을 열고 앞만 바라보면 온갖 나무며 풀이며 꽃을 볼 수 있다. 위로 눈을 높이면 볼 수 있는 건 높고 높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창문만 열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아침마다 진행곡을 들을 수 있다. 뒤로 돌아보면 푸른 소나무며 넓고 넓은 바다를 보게 되고, 바다하늘을 볼 수 있다. 흰 파도를 볼 수 있고 흰 구름을 볼 수 있으며, 떠있는 배, 떠가는 배를 볼 수 있다. 희고 검은 바위도 볼 수 있고 대왕암도 몽돌암도 볼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좋고 흐리면 흐린 대로 좋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좋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좋다. 봄이면 봄대로 좋고 여름이면....월요일이면 월요일대로 좋고 화요일이면 화요일대로.... 금요일이면 더욱 좋다. 아침이면 아침대로 좋고 오후면 오후대로 좋고 밤이면 밤대로 좋다. 오월이라 좋고 금요일이이라 좋고 아침이라 좋고 맑음이라 좋다. 5월은 푸른 달이라 좋고, 금요일은 집에 갈 수 있어 좋고, 아침은 밝으니 좋고, 오늘 날씨가 맑으니 깨끗해서 좋다. 오늘 아침과 같은 날을 청상(淸爽)한 날씨라 하지 않는가? 숙소의 앞뜰은 질서정
바다 주변이나 산 속 깊은데 연수원을 세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2박 3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바다를 접하거나 산을 접하면 마음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말 속이 넓기보다 좁기만 하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속이 좁아 자주 화를 내게 된다. 속된 말로 뚜껑이 자주 열리게 된다. 화를 내거나 분노하게 되는 건 자신의 미숙함을 드러내는 결과가 되고 만다. 자신의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낼 뿐 아니겠는가? 열 번 잘해도 한 번 화를 내면 열 번 잘한 것을 기억하지 않고 한 번 잘못한 것 그것만 머릿속에 그리면서 그 사람을 증오하게 되지 않는가? 사람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산다. 관계가 좋으려면 그 사람과의 맺히는 것이 없어야 한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직장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관계가 좋아야 할 것 아닌가? 특히 공동체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보다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한다. 특히 성품관리를 잘해야 한다. 여러 가지 성품 중 화를 내지 않는 것,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하면 그 때부터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선생님, 오늘은 날씨가 참 좋습니다. 화창한 봄날 같습니다. 벌써 봄을 맞이한 듯 마음은 앞서 갑니다. 길게만 느껴진 겨울은 지나간 듯합니다. 올 봄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밖에 없는 봄이기에 귀한 손님맞이하듯 맞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울산여고를 4년 만에 떠나게 되었는데 교장 승진 소식을 종업식이 끝나고 나서 듣게 되어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지면을 통해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4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기쁨도 함께 나누고 슬픔도 함께 나누며 형제자매처럼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 너무나 저에게는 좋습니다. 큰 추억거리입니다. 큰 자랑거리입니다. 그 동안 선생님들께서 저에게 베푸신 따뜻한 정은 평생을 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함께 근무하면서 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으신 선생님이 혹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합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다 용서하시고 나쁜 것은 다 잊어버리시고 좋은 것만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좋지 않은 것을 머릿속에 떠올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좋은 것만 늘 기
연수원은 바다 곁이라 운무로 인해 제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운무(雲霧)가 전혀 없는 날이면 참 좋다. 비가 오고 나면 운무(雲霧)도 체면이 있는 모양인지 맑고 깨끗한 날씨 속에 산책을 할 수 있게 해주어 기쁨이 배가 된다. 5월이 되면 산책로는 온통 신록(新綠)으로 가득 찬다. 나뭇잎은 아침이슬을 머금은 채 굴절 없는 햇살에 더욱 윤기를 더한다. 예쁘고 고운 아가씨의 얼굴처럼 빛난다. 햇살은 오랜만에 찬란하게 비추며 용기를 북돋운다. 운무(雲霧) 없는 동해의 아침 바다를 본 적이 있는가? 운무 없는 동해 아침 바다는 잔치 한마당을 방불케 한다. 붉은 태양이 창공(蒼空)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비춘다. 바다는 온통 축제분위기로 휩싸인다. 물새는 그윽이 해상을 날고, 짐 실은 화물선(貨物船)은 일찌감치 뒤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수석(水石)실은 길다란 배는 조심스레 놓을 자리 찾는다. 강태공들은 잔치상에 올릴 고기를 잡을 양 이른 새벽부터 여기저기 바위에 걸터 위험을 무릅쓰고 낚시에 몰두하고 작고 귀여운 새는 쌍쌍이 자리를 차지한다. 젊은 부부, 늙은 부부 찾아와 인사하고 대화한다. 바다는 한창 바쁘다. 부글부글 끓는다. 빙글빙글 돈다.
5월 하순 경에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부는 다음날 새벽에는 새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 아마 비바람에 시달렸기 때문이리라. 몸살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창문을 여니 그제야 새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새가 공중을 난다. 몸살 앓은 흔적이 역력함을 알 수 있다. 바깥을 나가보면 1년초(一年草)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수 있다. 쓰러진 것도 있고, 떨어진 것도 있고, 흙 범벅이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다시 제 모습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비바람이 불지 않았더라면 좀 더 예쁜 모습 더 지녔을 것인데 안타깝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건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못다 핀 꽃의 한(恨), 같은 뿌리 속에서 자란 다른 꽃이 대신해 풀어줄 것으로 생각하니 조금 위로가 된다. 바다 쪽을 바라보니 어제 비바람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뚜렷이 알 수 있다. 바닷물은 흙탕물인가 하면 정신없이 부딪치고 있다. 물결도 어지럽게 울렁댄다. 바닷가의 물거품을 보면 속에 있는 온갖 더러움을 다 쏟아낸 듯하다. 비를 뿌린 검은 구름도 체면이 있는 듯 거의 사라지고 한 구석에만 조금 남아있고, 대부분의 하늘에는 많은 피해를 끼쳐 미안한 듯 엷은 미소를 지닌 채
이번 설날에 큰집에는 특이한 손님이 왔다. 5남매의 딸린 식구만 해도 많지만 ‘앤드루’라는 캐나다인과 양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두 명의 6학년 초등학생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두 번째 만나는 구면이었지만 나는 처음이었기에 ‘앤드루’라는 캐나다인에게 관심이 많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앤드루’에게 나이가 몇 살이냐? 결혼을 했느냐? 무슨 목적으로 한국에 나왔느냐? 등등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보았다. 그리고 형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두 애를 가리키면서 이런 애와 같은 애들이 양육원에서 일정 나이가 되면 독립하기 위해 나가야 하는데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애들이 많은데 그들이 독립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보살펴 주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이런 데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하루 지나고 마산에서 울산으로 돌아오면서 딸로부터 생각 없이 말과 행동을 한다고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 없이 ‘앤드루’에게 던진 질문과 애를 가리키면서 ‘이런 애’라고 한 것을 두고 딸은 자기가 어쩔 줄 모를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외국인에게 나이가 몇이냐? 결혼했느냐? 라고 묻는 것은 실례라고 했다. 또
이번 설날도 나에게는 유익했고 남달랐다. 88세의 건강한 어머니를 만나 뵐 수 있은 데다 경기도에 사시는 누님을 제외한 5형제가 한 자리에 모여 따뜻하고 아름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조카와 질부를 축하해 줄 수 있어 좋았고 딸이 서울초등임용고시에 합격해 떳떳했고 또 조카 한 명이 사범대에 합격해 기쁨이 배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릴 때에 자녀들이 선생이 되는 것을 소원하셨고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셨기에 어머니의 6자녀손 중 딸린 식구까지 10명이나 교직을 길을 걷고 있으며 이번에 시험에 합격한 조카까지 포함하면 11명이나 된다. 명절 때마다 마산에 있는 큰집에 오게 되면 언제나 기쁨이 배가 된다. 왜냐하면 큰형님, 큰형수님께서 48평이나 되는 넓은 아파트에서 어머니를 평생 모시고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둘 다 교직생활을 하시면서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계시는 것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게 된다. 자녀들도 잘되어 있다. 두 자녀가 있는데 딸은 부부교사이고, 아들은 부부의사이다. 아들은 정신과 전문의이고, 며느리는 소아과 전문의이다. 동생들에게 조금도 부담을 주지 않고 한 마디도
어제는 종업식이 있었다. 종업식이 있기 전 교무실에서 떠나시는 27명의 선생님의 발령장과 친목회에서 전별금을 드리고서는 떠나시는 선생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김 부장선생님께서는 평소와는 달리 눈물을 흘리시며 이임인사를 하셨다.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떠나시는 모든 선생님이 그러하셨지만 특히 김 부장선생님에게서는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지막 메신저를 김 부장선생님께 보냈다. 감성, 지성, 외모, 사람됨이 탁월하신 선생님과 같은 분을 며느리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교무실에서 아침조례를 끝내고 운동장에서 종업식이 있었다. 종업식이 시작되기 전 우리학교의 자랑 중의 하나인 조례대 등나무 위에는 수십 마리의 작은 새들이 떠나시는 선생님과 함께 하였다. 정말 보기 좋았다. 떠나시는 선생님들과 남아있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아는 듯 계속 슬픔을 함께 하였다. 아쉬운 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함께 아쉬워했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함께 가슴을 쓸어내기도 했다. 입을 열지 못하고 떠나며 보내는 선생님들 대신 입을 열어 아쉬운 석별의 정을 전해주니 정말 고맙다. 가시는 곳곳마다 함께 가서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며 용기와 힘을 실어주기 바란다. 외로워할 때
오늘은 종업식을 하는 날이다. 차를 타고 오면서 한 해를 되돌아보았다. 선생님들이 지난 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자기 맡은 분야에 책임을 다해 주셨다. 그러하기에 좋은 결실도 보게 되었다. 서울대 3명을 비롯하여 서울 지역에만 86명이나 합격하였고 모두 461명의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들의 노고가 결실로 다가와 아름답기 그지없다. 정말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올해 우리학교 선생님 중 인사원칙에 따라 만기가 되어 30명 가까운 선생님께서 이동하게 되셨다. 한 분 선생님께서 건강상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 면면이 살펴 볼 때에 한 분도 보내기가 아까운 성실하고 유능하신 선생님들이다.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본을 보여 주신 분들이다. 다른 학교에 가서도 우리학교에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으면 한다. 선생님께서몸은 떠나 울산여고에 없지만 선생님들께서 남기신 땀과 수고와 인내와 정성과 사랑과 아름다운 발자취와 그윽한 향기는 오래도록 남아 있어 온 교정을 윤택하게 하며 학생들을 살찌게 할 것이다. 선생님들에게 앞앞이 인사를 올리지 못하지만 이 글에서 간단하게나마 용서와 감사의 인사말씀을 올린다. 함께 근무한 여러 선생님들은 평생 잊지
하루는 연수원 숙소에서 고산(孤山) 윤선도에 관한 글을 읽었다. 고산(孤山) 윤선도는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조 시가(詩歌)문학의 대가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윤선도의 뛰어난 문학기질을 말하고자 함도 아니고 그분의 대쪽 같은 성품을 말하고자 함은 더구나 아니다. 그분의 삶이 주는 의미 나에게 각별하기에 그분의 인생 발자취를 대강이나마 더듬어보면서 고귀한 삶을 추앙(推仰)하고 싶다. 고산은 서른 살에 시작된 귀양살이는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배소(유배지)에서 보낸 기간만 해도 20년이 된다고 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연수원에 온 지 2개월 겨우 지냈는데 그걸 못 참고 안달을 내다니! 아 부끄러워라. 20년의 기화요초(琪花瑤草) 어우러진 섬에서의 생활에서 얽어낸 것이 그의 시가(詩歌)문학이 아닌가? 어린 몸으로 급제하여 어주(御酒)까지 하사받았던 둘째아들의 죽음에 이어 귀양에서 돌아오던 마상(馬上)에서는 막내아들의 죽음마저 접하였다고 하니 그 슬픔 어디에다 비기리오. 그분은 막내아들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눈물보다 앞서 가슴이 부들부들 떨리고 두려웠다”고 썼을 정도였으니 그 고통이 어떠했겠는가? 그 동안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그리워하고 사
연수원에서 어제, 오늘처럼 이른 봄기가 내리는 날이면 보통날보다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하루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는 아침 6시 체조 시간에 현관 앞마당에서 체조를 하고 나서 현관에 서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그러나 바다의 검은 물 너머에 보이는 작은 불빛 하나가 희망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대왕암도 그 자리에 외로이 지켜있으면서 그래도 나는 내 자리를 지키노라 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준다. 그러면 생각나는 대로 읊조리게 된다. ‘봄비는 촉촉이 마당 적시고 둘러 선 소나무 눈을 가리네. /듬성듬성 사이로 눈-빛 주니 구름은 먹물 머금어 입으로 토해 내고 바다도 순식간에 먹물 되었네./ 자그마한 불빛 하나 희망을 싣고 먹물로 얼룩진 天海사이로 한 줄기 힘이 되어 비추고 있네./ 대왕암 발(廉)에 가리어 윤곽만 희미하나 제 모습 지닌 채 자리 지키네./머리 녈 구름 먹물 지우니 작은 불빛 하나 삼형제 되었네./‘ 하루는 연수원 숙소에서 신석정의 시 ‘산수도(山水圖)’를 읽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날 아침 산책길이 이 시와 너무 흡사하여 여기에 옮겨 본다. 숲길같이 이끼 푸르고/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어....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연수원 숙소 생활에서 나에게 관심거리가 하나 생겼다. 정성을 쏟을 만하다. 마음을 집중시킬 만하다. 객지생활에 외로움을 달래주기에 안성맞춤이다. 99년 5월 10일 함께 근무했던 행정실 직원 한 분이 선물로 준 ‘라벤더’이다. 지금까지는 식물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조그만 화분에 심겨져 있는 라벤더에는 관심이 많이 갔다. 사랑을 하게 된다. 정을 주게 된다. ‘라벤더’는 햇빛을 잘 받는 남향 모래땅에 비옥하지 않는 알칼리성 땅에 잘 자라는 다년생이다. 색깔은 연두색 보단 진하고 녹색보다 약간 연하다고 할까? 내 숙소에 있는 ‘라벤더’는 뿌리가 넷이고 한 뿌리에 서너 줄기가 나 있고, 줄기마다 양 톱니처럼 생긴 잎이 여남은 개 나 있고, 귀엽게 생긴 새끼 잎이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어린 잎 줄기 끝은 고기요리, 찌개, 소스에 쓰이며 허브차, 방향제, 정유는 화장품, 향유, 비누, 향수, 목욕제, 포푸리로 옷장, 방안에 두면 곰팡이가 잘 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 좋은 ‘라벤더’를 아리따운 이로부터 선물로 받았으니 얼마나 좋으랴? 한편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도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 손에 든 식물을 제대로 살려낸 적이 없기
연수원 숙소에서의 밤은 더욱 쓸쓸하다. 보통 집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TV도 없다. 전화도 없다. 컴퓨터도 없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나 전축도 없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책 읽는 것밖에는 없다. 아니면 누워서 이것저것 생각만 하게 된다. 정말 외로운 곳이다. 정말 답답한 곳이다. 정말 한심한 곳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곳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지금은 돈 주고 그런 곳에 가려고 해도 힘들다. 그곳만큼 생각을 깊게 해준 곳은 없다. 그곳만큼 자신을 다듬어줄 수 있는 곳도 없다. 나처럼 그곳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좀 더 빨리 그런 곳이 좋은 환경이라는 깨달음이 있었으면 한다. 하루는 박두세(朴斗世)의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를 읽었다. 읽다가 산책을 갔다 온 후 마무리하여 읽었다. 그 중에 아홉 가지 생각하는 글자를 써 항상 눈에 보고 외운다고 하는 박 선생님의 내용이 공감이 되었다. 이분처럼 이 아홉 가지 글자를 가슴속에 심어두고 항상 외우고 생각하면서 행동에 옮기면 위대한 사람, 인품이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 선생님의 삶이 어떠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