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를 마치면 급식실 옆으로 나있는 소로(小路)를 따라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을 거니는 맛이 일품이었다. 제 아무리 속 끓이는 일이 있어도 숲이 뿜어내는 향기로운 평화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속의 격랑도 슬그머니 가라앉게 마련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시작한 교직 생활이 떠오른다. 당시만 해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던 시절이라, 점심시간이면 가끔 마음 맞는 선생님들과 함께 본관 뒤편에 있는 숲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가난한 찬이지만 풍성하게 나누던 그 인정이 아직도 새삼스런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모성의 품에 안긴 아기처럼 양지바른 산비탈에 둥지를 틀었던 학교도 서서히 그렇지만 아주 거칠게 몰려오는 문명의 손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에 석유화학단지가 속속 입주하면서 학교 오른편에도 대규모 사원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바람이 불면 도란도란 속삭이던 대나무 군락도 이때 사라졌다. 본관 바로 뒤편부터 이어지던 산등성이도 도서관, 체육관, 기숙사 등 각종 교육시절이 들어서며 산허리가 잘려 나갔다. 이제 학교 왼편에 위치한 숲만이 유일하게 남아 교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절마다 색다
올해부터 대입전형에 통합논술이 도입됨에 따라 학생들의 관심이 무척 높다.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학생들이 수강하는 특기적성과목에 ‘신문을 활용한 통합논술’이라는 강좌를 개설했다. 학생들은 인터넷 수강신청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과목과 선생님을 선택하면 해당 강좌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통합논술 지도교재나 교수방법이 아직은 일반화되지 않은 탓인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했다. 필자도 처음 진행해보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긴장감 속에서 첫 시간을 맞았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신문을 읽고 관심있는 기사를 스크랩하여 내용을 요약하고 교과서와의 관련성을 따져본 후, 자신의 의견을 서술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서로 돌려가면서 의견을 달아준 후, 모둠을 대표하여 발표한 내용을 선정한다. 모든 과정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진행되지만 특히 본인이 선택한 기사와 교과서와의 관련성을 심층적으로 따져보도록 주문하는데, 처음에는 잘 안됐지만 시간이 흐르며 차츰 내용적인 깊이를 더해감에 따라 지식의 활용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사의 내용도 과학, 문화,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2007학년도 정시 논술고사가 마무리되면서 2008학년도부터 새롭게 도입되는 통합논술이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사교육 못지않게 공교육에서도 교사들이 논술 동아리를 조직하거나 논술 연수에 참여하는 등 신학기부터 시작될 통합논술 지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만큼 학생들도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비 고1, 2]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예비 고1과 2학년으로 진급하는 학생들은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준비하되, 통합논술에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즉 통합논술이란 개별 교과의 지식에 한정되지 않고 쟁점을 중심으로 교과 간의 지식 전이를 통한 통합적 사고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존의 주입식․암기식 학습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의문을 품어보며 다양한 상황에 적용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실천해볼 수 있는 내용을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교과서는 최적의 논술학습서이다. 학생들 가운데는 논술이란 교과목이 없기 때문에 별도의 교재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새해 벽두부터 언론사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대선 후보들의 여론 조사 결과를 쏟아내고 있다. 대선까지는 아직 많은 기간이 남아있기에 당장의 지지율이 큰 의미는 없겠지만 후보자들 간에 서로 이해득실을 따져보느라 분주하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국민들도 이번 대선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기에 후보자들의 역량을 파악하기 위하여 촉각을 곤두세운 채 지켜보고 있다. 국민 각자가 어떤 위치와 상황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후보들을 평가하는 관점은 다를 수 있다. 다만 이번 대선에서 공통적인 관심사는 경제와 교육 분야가 아닐까 싶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을 송두리째 앗아간 아파트값 거품을 꺼뜨리고, 가계(家計)에 깊은 주름을 남긴 사교육 광풍을 잠재울 수 있는 후보자들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파트값 상승 이면에는 지역을 불문하고 우수한 교육 환경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더욱 대선 주자들의 교육 정책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언론에서도 대선 주자들의 정책 방향과 전문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인터뷰를 하거나 정책 간담회를 여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흡족하지는 않지만 교육 분야에 대한 소신과 비전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대선주자들의 교
“도대체,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지” “아무리 철이 없어도 이럴 수는 없는거 아냐”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아 이제 곧 교단을 떠나야할 원로 선생님의 장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평생을 아이들 가르치는 데 힘써왔지만 요즘처럼 어려웠었던 적은 없었다며, 애틋한 사제지간의 정은 고사하고 아예 가르치는 것 자체가 곤욕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한다. 일부 학생들 가운데는 교사들의 관심을 간섭이라 여기며 선생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학교의 존립 목적 중 가장 중요한 수업 시간이 진지하기는커녕 일부 학생들의 고장난 인성으로 인하여 난장판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부분의 교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언제부턴가 학생들이 일탈 행위를 해도 그들의 잘못을 꾸짖고 엄하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인내하고 용서하며 포용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그럴듯한 교육관이 팽배하고나서부터 생긴 현상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수업으로 인한 교사들의 스트레스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수업을 하다 보면 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코를 골며 자거나 옆 사람과 잡담을 나누고 시간 내내 핸드폰을 조몰락거리는 아이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교사가 자는 아이들을 깨우거나
주말 저녁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컴퓨터를 끼고 살아야 한다. 도교육청에서 논술 첨삭위원으로 위촉받아 매주 두세 명의 아이들 글을 다듬어줘야 한다. 늘 그렇듯 컴퓨터를 켜고 메일부터 확인했다. 첨삭을 해준 학생들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을 활용하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확인창을 누르자 벌써 서너 개의 편지가 쌓여 있었다. 굴비처럼 엮인 발신인 명단 가운데서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영호예요. 매일 뵙지만 막상 편지를 쓰려니 쑥스럽네요. 그렇지만 꼭 상의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우리 반의 꽃미남 영호의 사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실 이런 고민을 해서는 안 되는데…. 선생님, 저 기타 배우고 싶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혼날 것 같고….” 담임 경력이 십수 년쯤 되면 학생들을 처음 만날 때 직감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아이를 알 수 있다. 대개 그런 아이는 반항적 기질로 똘똘 뭉친 경우가 많다. 영호가 그런 녀석이었다. 야생마같던 영호를 순한 양으로 길들이는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와~우리 영호 멋있는데. 이렇게 머리도 짧게 자르고 복장도 단정하고 더군다나 수업 태도까지 좋아졌으니 말이야.” 경험상, 아이에게 조
지난 5월 급식 문제로 교사가 학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이번에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담임교사를 주먹으로 때리는 일이 벌어졌다. 병원으로 실려간 교사는 무려 다섯 바늘이나 꿰매는 상처를 입었고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교단을 천직으로 삼고 있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것이 정녕 교육입국을 표방하는 나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지 그저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먹먹할 따름이다. 이는 인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스승보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스승을 벌거벗겨 무력화시킨 교육 초보들의 무모한 실험이 빚은 참담한 결과에 다름아니다. 폭행을 당한 교사는 오히려 ‘아이에게 잘못이 없으니 처벌하지 말고 잘 보살펴 주기 바란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제자의 흉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아름다운 스승상을 보는 것같아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틈만 나면 수요자 중심 교육을 강조하며 교사들을 몰아세우기 바쁘던 그 잘난 단체들은 왜 지금 이 시점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지 궁금하다. 누구보다도 교권 수호에 앞장서야할 교육 당국도 수수방관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교권 추락에 따른 교사들의 사기 저하를 심히 우
모든 사람들이 가슴 설레이며 기다렸던 새천년을 한 해 앞둔 1999년쯤의 일로 기억된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하에서 교육 수장으로 임명된 이해찬 전 장관은 교육 개혁을 내세워 ‘방과후 학습’(이 글에서는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말함)을 폐지했다. 서로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한 이기심이 과도한 교육열을 초래했고, 급기야 학교마다 경쟁적으로 강제적 ‘방과후 학습’을 시행함으로써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학생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논리였다. 이해찬식 교육정책은 특유의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교육 현장을 강타하며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금지하고 특기적성교육을 내세워 한 가지 분야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공수표를 남발하기에 이른다.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교과 수업을 배제한 특기적성교육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 만무했고, 결국 정규수업이 끝난 학생들은 아무런 대책없이 학교 밖으로 내몰리기에 이르렀다. 당장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금지하면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학습 환경을 만들어 적응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사교육 인프라가 취약한 지방의 학생들은 마땅히 갈 만한 학원도 없었고 그
오전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 몇 분과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던 중 선생님 한 분이 지인으로부터 들었다는 효자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도 먼 조상들의 얘기인가 싶어 크게 개의치 않았으나 설명을 듣다보니 바로 얼마전 일이었다. 세상에 이런 효자도 있나 싶어 식사를 마치자마자 혹시 인터넷에 관련 내용이 올라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교무실로 향했다. 컴퓨터를 켜고 ‘지게 효행’이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관련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독자의 제보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은 사연은 이랬다. 인천에 사는 이군익씨는 시골(충남 서산)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92세)가 노환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 이씨는 평생 농사짓느라 쉬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위해 틈나는 대로 전국의 명소를 찾아 함께 여행을 다녔다. 아버지께서 흡족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이씨는 항상 더 좋은 곳을 보여드릴 수 없는 지 고민하였고, 마침내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을 떠올렸다. 지체없이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으나 험한 등산로를 오를 일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지게의자를 만들어 아버지를 태우는 방법이었다. 지게 자체와 아버
2008학년도 대입전형의 핵심 요소인 통합논술을 두고 교육현장뿐만 아니라 학부모 더 나아가 사회적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통합논술이 ‘변형된 본고사’라는 주장과 함께 가뜩이나 내신과 수능 준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더 큰 부담을 얹어준 것은 물론이고 사교육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하는 등 그야말로 교육 난맥에 휩싸여 있다. 일선 교사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수능이 끝난 뒤부터 예비 고3이 되는 2학년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불만섞인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통합논술을 통하여 구현해야 할 교육목표와 방안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 선발과 관련된 평가 기능에만 집중함으로써 학교를 더욱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의미있는 모임이 이뤄졌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등 전국 23개 대학 입학처장과 18개 고교 진학담당 교사로 구성된 ‘고교-대학간 대학입학관계자 상호협의회’ 출범식이 열렸다. 필자도 협의회 위원으로 위촉받아 교사 대표로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고교와 대학의 입학 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여 전형
새로운 대입제도에 따라 2008학년도부터 도입되는 통합 논술을 두고 고교마다 비상이 걸렸다. 내신 반영률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실질 반영률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등급화되는 수능도 변별력이 약화됨으로써 사실상 통합 논술이 당락을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싫든 좋든 통합 논술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은 기존의 논술과는 다른 유형이라는 점에서 걱정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왜냐하면 통합 논술이 내세운 통합 교과적 의미는 이미 수능을 통하여 충분히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대학이 삼불정책을 피하기 위하여 내세운 새로운 형태의 본고사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게다가 예시문항의 수준을 보면 고교 교육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는 점에서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염려한다. 물론 이같은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걱정만 하고 있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필자는 통합 논술이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고질적 병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통합 논술을 단순한 입시제도의 개념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교육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교육혁명으로 받아들이자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통합 논술이 성공하기 위한 몇 가지 전제 조건을 살펴보고자
내년부터 적용되는 2008학년도 입시제도로 인하여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교육부는 내신의 비중이 높아짐으로써 상대적으로 사교육의 비중이 축소되리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허수가 반영된 내신반영률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다. 이는 내신제도가 근본적으로 지역간, 학교간 격차라는 모순을 안고 있어 공교육 정상화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대학을 평준화시키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그런 면에서 실력있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대학 나름의 고뇌를 일정 부분 이해할 필요도 있다. 어찌됐든 대학들은 교육부의 권고대로 ‘3불(不)정책’(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 금지)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내년 입시부터 내신반영률을 50%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멍석을 깔았다. 문제는 내신 비중이 높아도 실질반영률이 미흡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7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의 내신 반영률은 표면적으로는 40%에 달했으나 실질 반영률은 고작 2.28%에 그치는 등 수도권 주요대학의 실질반영률은 9.4%로 2006학년도의 10.2%에 비해 오히려 하락했다. 게다가 수
“2008학년도부터 교원평가제 전면 실시”, 지난 금요일(20일) 교육부가 삼청동 교원소청심사 소위원회에서 발표한 ‘교원능력개발평가 안’의 핵심이다. 이 자리에는 직접 이해 당사자인 학부모와 교원 단체 대표가 참석했다. 명칭은 공청회였지만 사실은 교원평가제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예상했던 대로 회의 시작과 더불어 단상 점거 등 극단적 대치 양상으로 치달았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자리에서 대화는 실종되고 삿대질과 고성만이 오갔다. “2008학년도부터 주요대학 통합논술 실시”, 바로 몇 시간 전에 ‘교원평가 실시’라는 메가톤급 태풍이 교육계를 강타했지만 서초구 우면동 한국교총 소회의실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새로운 대입제도의 핵심으로 떠오른 통합논술에 대비하기 위하여 현장의 의견을 듣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삼청동 공청회에서 막 돌아온 한국교총 이원희 수석부회장의 사회로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함께 세미나에 참여했던 분들은 대부분 초면이었지만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의사를 개진했다. 통합논술을 시행할 수밖에 없는 대학의 입장과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점에서 시행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고교
서울 노량진 시장에서 젓갈장사를 하고 있는 류양선 할머니(74). 1998년 상가와 임야를 포함해 시가 10억원 상당의 재산을 한서대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내놓은 데 이어 또다시 제주도 금싸라기 땅(1500평)을 같은 대학에 기증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체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군자 할머니(82). 과거 일본군 종국 위안부였던 할머니는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받는 월 85만원의 생활안정 지원금을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재단’에 고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6.25 참전 후유증을 앓던 남편을 먼저 보낸 뒤 폐지 수집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잇고 있는 정성란 할머니(82). 할머니는 고작 몇 천원을 벌기 위해 점심까지 거르며 하루 종일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수집하여 모은 돈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며 장애인 단체에 기부했다. 모두 황금 벌판처럼 넉넉하고 풍성한 이야기다. 기부는커녕 자식에게 편법으로 재산을 증여하거나 값비싼 명품만 찾는 일부 부유층의 사치풍조 등 세상이 온통 이기적 욕망으로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선행이야말로 실로 가뭄속의 단비처럼 시원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3년 내내 괴짜라는 별칭을 달고 살았던 주홍이가 찾아왔다. 터미널에서부터 학교까지 걸어오느라 힘들었는지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졸업식날 본 후, 꼭 8개월 만이다. 오동통했던 몸매는 독수리처럼 날렵해졌고 밤송이처럼 까칠했던 머리는 사자 갈기처럼 휘날렸다. 짙은 청색 면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것이 꼭 영화 ‘폴링 다운’에서 딸을 만나러 가는 마이클 더글러스 같았다. “선생님, 여전하시죠.” “나야 늘 그렇지. 그래 너는 좀 어떻니.” “부모님 일 도와드리며 틈나는 대로 글쓰고 사진 촬영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어요.” 예의 그 서글서글한 눈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 좋은 웃음은 전과 다름없었다. 녀석과의 인연은 피천득님의 수필 제목처럼 각별하다. 신입생 때 만나서 3년간 국어를 가르치고 두 번이나 담임을 맡았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얌전해 보이던 녀석이 반골(?) 기질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학년 여름방학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녀석은 방학만큼은 혼자서 보낼 테니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서 빼달라고 떼를 썼다. 말이 좋아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지 사실상 반강제적이었던 상황에 비춰보면 녀석의 주장은 일종의 항명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