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느다’는 ‘무게가 좀 나가는 물건의 한쪽 끝을 쥐고 치켜들어서 내뻗치다’는 뜻이다. “창을 꼬나 쥐다”, “긴 칼을 꼬나 잡다”라고 할 때 ‘꼬나’의 기본형이 바로 ‘꼬느다’이다. 송기숙의 ‘녹두 장군’을 보면 “오기창이가 단점을 던질 듯이 꼬느며 소리를 질렀다”는 문장이 나온다. ‘꼬느다’가 ‘마음에 잔뜩 가다듬고 연필 따위를 힘주어 쥐다’는 뜻도 있다. “나는 연필을 꼬느고 시험지가 배부되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한편 ‘꼬나들다’는 ‘힘 있게 손에 들다’는 뜻이다. “그들은 도둑을 뒤쫓아 방망이를 꼬나들고 골목으로 달려갔다.” ‘꼬나들다’와 비슷하지만 ‘꼬나보다’나 ‘꼬나물다’는 낮잡는 뜻으로 전혀 다르게 쓰인다. ‘꼬나보다’는 ‘눈을 모로 뜨고 못마땅한 듯이 사람을 노려보다’는 뜻이고 ‘꼬나물다’는 ‘담배나 물부리 따위를 입에 물다’는 뜻이다. “하는 짓이 못마땅해서 한참 상대편을 꼬나보았다.” “그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담배를 한 대 꼬나물었다.”
2007-01-08 10:44시 부문에 비해 동시 부문은 응모자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응모된 작품들 가운데서도 눈에 번쩍 띄는 작품이 별로 없었다. 실상, 동시는 시 보다 쓰기 어려운 장르이다. 맨 먼저 어려움은 성인이 어린 사람의 마음을 복원하여 시로 써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그 다음으로는 일정 수준 시의 품격을 지닌 작품이어야 한다는 데에 그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대부분 동시를 쓰는 경우, 가성발성을 하기 쉬운데 이 또한 매우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까 어린이인 것처럼 가정해서 글로 써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하는 수 없이 이번에는 당선작 없는 가작을 내기로 했다. 조윤주 씨의 ‘첫눈’. 아주 귀한 작품이다. 표현이 단순 명쾌하고 시적 사유 자체가 맑고 소박하며 천진하다. 바로 어린이다운 특성을 고루 갖췄음이다. 허나, 작품이 워낙 소품이라 당선의 자리를 드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장점을 십분 살리고 모자란 점을 보완하여 이 땅의 좋은 시인으로 서 주기를 빈다. 이가림 인하대 교수, 나태주 공주 장기초 교장
2006-12-26 11:01‘해바라기 도둑’을 당선작으로 합의하며, 두 심사위원은 흡족했다. 이 흡족함은 정성스레 쓴 동화 한 편은 만난 데서 오는 것이다. 동화를 대하는 작가의 자세가 진지함을 느낄 수 있는 동화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엄마가 중국 옌변의 외가에 가고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난 동희네 가족 이야기인데,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나(동희), 엄마·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의 캐릭터를 적절히 살려놓았고,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이뤄진 적확한 묘사와 살아 있는 대화가 돋보인다. 여기에다 엄마가 떠난 뒤의 집안 분위기와 가족들의 변화를 뚜렷이 보여 준 점도 좋다. 또 엄마가 남다른 감정으로 길렀던 해바라기, 엄마가 ‘이만큼 크면 온다.’고 했던 그 해바라기를 먹똘이의 해찰로 부러뜨리게 되고, 동희가 이웃집 해바라기를 훔치기까지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구성해낸 동화적인 반전에서 작가의 역량을 신뢰했다. 아쉽게 가작에 머문 ‘물고기 활’은 국궁 신동의 첫 좌절과 부활을 그린 작품으로, 전통의 우리 것에서 찾은 색다른 소재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빈틈없이 짜여진 구성이 좋고, 당겨진 활줄처럼 팽팽한 긴장이 끝까지 유지하고 있는 점도 뛰어났다. 그러
2006-12-26 11:01지난 해 여름 방학 때였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운동장을 나오며 맑은 하늘을 보았다. 문득 해바라기가 보고 싶었다. 나는 태백시 구와우 마을의 해바라기 밭으로 차를 몰았다. 평창을 지나는 국도에 접어들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7시간 가까이 차를 몰아 다다른 해바라기 밭은 참으로 넓었다. 3만평정도의 해바라기 밭이 안개 속에 그윽하게 묻혀 있었다. 이미 어둠이 내려 먼 곳에 있는 해바라기는 보이지 않았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한참동안 해바라기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푸근했다. 나는 가슴 가득 해바라기를 품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두 시였다. 그 날 내 가슴으로 들어온 해바라기는 오랫동안 내 품 속에 있었다. 그 해바라기는 주인공 동희를 만나 동화로 태어났다. 난 동화속의 동희보다 엄마를 더 멀리 하늘나라로 보냈다. 동희가 엄마를 기다리듯 나도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립다. 해바라기 꽃이 활짝 피는 날,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부족한 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공부를 도와주신 선생님 정말 사랑합니다. 또한 그 동안 함께 공부한 동기들, 옆에서 많은 것을 도와준 남편, 딸 혜원이 정말 사랑
2006-12-26 10:59봄을 시샘하듯 꽃샘추위가 차가운 눈보라를 몰고 왔다. 껍질 모자를 삐뚜름하게 쓰고 뾰족뾰족 올라오던 해바라기 싹이 까맣게 얼어 죽었다. “우리 옌변 집 마당에는 해바라기가 참 많았는데.” 엄마가 죽은 해바라기 싹을 매만지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엄마가 해바라기 씨를 뿌리던 날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는 바보처럼 한참이 지난 뒤 식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장독대에 해바라기 싹 하나가 살아남았다. 한 달 가까이 비가 오지 않았다. 햇살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따갑게 내리쬐었다. 장독대의 해바라기는 할머니처럼 허리가 꼬부라졌다. 엄마는 틈만 나면 물뿌리개를 들고 해바라기에게 물을 주었다. 물을 줄 때마다 엄마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옌변 마당가의 해바라기가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전화 소리에 화단에 물을 주던 엄마가 깜짝 놀랐다. “아흠, 엄마 전화! 중국인가봐요.” 동만이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며 방에서 나왔다. 엄마가 허겁지겁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이 덜 깬 동만이가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방안에서는 중국말이 나직나직 들렸다. 엄마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머리를 푹 숙
2006-12-26 10:58예년에 비해 그다지 적지 않은 시편이 응모되어 현장교원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읽을 수 있었다. 밥이나 명예도 되지 못하는 시 창작을 위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성을 보이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아련한 그리움이 살아서 숨쉬기 때문일 것이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작품을 읽을 때 여러 편의 좋은 글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었다. 가운데서도 박수호, 구민숙, 추영희 씨 등의 작품이 월등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위 세 분의 작품은 한결같이 좋은 면모를 지니고 있어서 어떤 작품을 앞세우고 어떤 것을 뒤세우기가 쉽지가 않았다. 박수호 씨의 ‘솔안말 찾아가는 길’은 힘이 실린 시적인 어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정서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구민숙 씨의 ‘뒤란’은 현실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솜씨가 빛나 보였다. 그런가 하면 추영희 씨의 ‘사과가 부화하여’는 상상력의 전개와 확산이 화려하면서도 발랄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요구했다. 많은 논의 끝에 결국은 ‘사과가 부화하여’를 당선작으로, ‘뒤란’을 가작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장단점이 있어서 선후를 가리기가 아주 많이 어려웠음을 여기 밝힌다. 그리고
2006-12-26 10:57오전에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지역번호 02로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이 광고성 안내이었던 기억으로 해서 무시하고 지났다. 오후의 빈 시간에 교무실 내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에서 진동음과 함께 다시 같은 번호가 떴다. 빨리 끊을 요령으로 폴더를 열었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교육신문사의 기자라는 말에 순간 당선소식임을 감지했다. 생각보다 마음이 너무나 침착하고 담담해지는 게, 이 마음이 뭘까. 그건 아마도 나의 시에 대해 스스로 엄격하고자 하는 절제가 아닌지. 내가 이 땅에 오면서 부여받은 시의 길이 과연 나의 몫인가에 대해 고뇌하면서 절망할 때가 많았다. 겁도 없이, 부끄러움도 없이 내가 이런 시를 다 쓰다니, 그리고 이렇게 외롭게 될 줄도 모르다니, 이런 반성과 갈망의 세월을 오래 데리고 살았다. 시로 인해 만난 시간과 삶과 사람들이 내게 위안이 되기도 했고 그로 인해 절망과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시가 엉터리가 아니라는 것에서 나의 시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다. 변방에서 울던 내 외로운 시들이 따뜻한 방을 가지고 발을 녹였으면 한다. 뽑아주신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시와 그와 동시에 좋은 삶의 모습으로 보답
2006-12-26 10:56어느 날 겨울 노점에서 산 한 봉지 사과가 그날 저녁 그 사과 장수 아저씨 집 아기에게 따슨 우유를 물린다 불 지핀 방 몽글몽글 사과를 굴리는 아기가 아빠의 찬 사과만큼이나 아삭아삭 잘 자라서 그도 추운 겨울 노점에서 찬 사과 한 봉지 사서 집으로 가면 그날도 동그란 옹알이 이불위로 굴러다니고 따슨 우유살 밤사이 탱글탱글 사과같이 여물겠다 사과가 열리고 익어가는 동안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젖소를 키우고 집을 짓고 집으로 가는 겨울 노점에서 또 한 봉지 사과를 사면 사과가 사과에게 오물오물 젖을 물리는 저녁 노점 아저씨의 사과는 없어지지도 않고 날마다 주렁주렁 새끼친 사과가 사과를 물고 담마다 얼굴 내민 사과나무 웃음들 사과를 먹는 집마다 하얀 사과 꽃밭 되어서 멀지 않은 곳, 겨울저녁 아늑히 두르는 울타리가 돋아나고 온 세상이 사과 같이 둥근 저녁 맛있게 드세요
2006-12-26 10:55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제재도 다양해 즐겁게 심사 했다. 문장을 다듬으려 노력하는 이들이 많은 점도 바람직한 현상이었는데, 사고의 밀도가 받쳐주지 않거나 수필이란 이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여 참신성이 떨어지는 게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을 살펴본다. ‘심천역’은 사회비판적 주제가 자신의 정서적 체험과 어울린 점이 좋았다. 하지만 앞뒤가 괴리되며 좀 더 입체적인 사색이 필요해 보였다. ‘오렌지 데이스’는 대상을 보는 감각이 개성적이나 다소 감상적이고 내용이 단조로워 무게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호피석’은 제재를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는 열정이 느껴지는 글이다. 하지만 관념이 승하고 작위적이라 정서적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게 흠이다. ‘청학동 가는 길’은 필자의 필력이 돋보인다. 내면적인 것과 외면적인 것, 전체적인 것과 부분적인 것을 적절히 결합하여 리듬을 조성하면서, 일관된 흐름과 의미를 형성해내고 있다. 대상을 파고드는 힘이 엿보이고, 필자가 함께 낸 글들의 수준도 고르므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글은 혼자 쓰지만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자는, 자기의 글을 독자가 어떻게 읽을까, 어떻게 써야 독자에게 적절히 읽히고 바
2006-12-26 10:53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낙엽은 도로를 가득 메우다가 이리저리 흩어진다. 하늘은 회색이고 바람은 스산하다. 안간힘을 다해 떨고 있는 남은 잎들, 가슴 깊은 곳에서 짙은 슬픔이 밴다. 가을을 지독히도 타는 탓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지 않고서는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릴 것만 같다. 그 절박한 11월의 끝자락에서 주머니속의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을 한다. ‘교원문학상’ 당선소식이다. 청천벽력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이다. 내가 사랑하는 지리산. 그리하여 내 젊은 날의 대부분을 헤아릴 수도 없이 오르고 또 오른 그리운 지리산. 그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어 20여년의 밤을 지새워 가며 쓴 나 혼자만의 산행기. 제도권 문단은 나의 글에 별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나는 늘, 인문학이 죽고 문학이 죽어간다는 이 시대, 강력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이 같은 글이 어쩌면 새로운 시대, 문학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기나긴 인고의 세월 끝에, 커다란 지면을 통하여 꿈에서도 상상해 보지 못한 당선이라는 분에 넘치는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지리산은 나에게 참으로 소중한 선물과 과제를 동시에 주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깊이 고개를 숙이며, 한번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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