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보지도 않고 돈부터 내는 특이한 시스템, 선분양 청약은 새로 공급되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신청하는 제도이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주택에 대해 계약을 먼저 맺고,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 입주하는, 설계도·입지·분양조건을 보고 미래의 주택을 선택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를 ‘선분양’이라고 하는데, 물건의 완성본을 보지 않고 설계도와 모형만 보고 돈을 내게 되는 방식이다. 언뜻 보면 물건도 안 보고 구매를 하는 독특한 시스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택시장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이러한 선분양 제도는 일반적인 분양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선분양 방식이 자리 잡은 결정적 계기는 1962년 「주택건설촉진법」 제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가 주도의 대규모 택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막대한 건설 자금이 필요했는데, 은행 대출이나 공공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민간 수요자의 ‘미리 돈을 모으고 계약하는 예약금’을 끌어모으는 선분양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이후 1970~8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 서울 및 수도권으로 주택 수요가 폭발하자 선분양은 더욱 공고해졌다. 건설사는 분양 대금을 미리 확보해 사업을 신속히 추진할…
2026-02-04 10:00
천만 감독 류승완이 돌아왔다 … 조인성·박정민 격돌하는 휴민트 설 연휴를 여는 한국 영화 최고 기대작은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다. ‘휴민트’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 ‘human’과 정보를 뜻하는 ‘intelligence’의 합성어로 스파이와 같은 정보요원 또는 내부 협조자를 통해 얻은 인적정보를 의미한다. 팬데믹을 통과하는 한국 영화 침체기에도 베테랑2(2024, 752만 명), 밀수(2023, 514만 명), 모가디슈(2021. 361만 명)로 연타석 홈런을 기록 중인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341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2015) 이후 10년 만에 홈런을 칠 수 있을지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다뤘다.국정원 블랙요원 조 과장(조인성)이 국제 범죄의 정황을 추적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되고, 현지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와 접선한다. 여기에 지난해 청룡영화상 수상식에서 화사의 축하공연에 여유 있는 눈빛을 선보여 순식간에 ‘국민 전남친’으로 등극한 박정민 배우가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 역을 맡아 조인성과 충돌…
2026-02-04 10:00
프롤로그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구입한 차종 중 하나로 ‘산타페’가 있다. 그래서 ‘산타페’가 주도인 미국 뉴멕시코주로 떠나는 여행은 출발 전부터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뉴멕시코주는 면적 31만 5천㎢로 남한의 세 배가 넘는 광대한 땅으로, 고원과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 지역이다. 주 대부분에 건조기후가 분포하여, 기후가 만들어낸 지형은 황량함과 쓸쓸함, 그리고 적막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땅을 더욱 새롭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뉴멕시코주는 드넓은 면적만큼이나 깊은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거룩한 믿음(Holy Faith)’이라는 뜻을 지닌 산타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도이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남아있는 도시다. 나바호족을 비롯한 원주민 자치지역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이곳은, 동시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사랑했던 땅이자, 맨해튼 계획의 핵심 거점이었던 로스앨러모스가 자리한 장소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열기구 축제가 열리는 앨버커키와 UFO·외계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로스웰 역시 뉴멕시코의 다층적인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공간이다. 라틴아메리카와 앵글로아메리카의 경계가 되는 리오그란데강이 흐르는 이…
2026-02-04 10:00
사회 전반에 혐오가 넘쳐난다. 인터넷에서는 ‘젊은 척하는 영포티’, ‘라도인임? 긁혔나 보네?’, ‘이러니까 맘충소리 듣는 거임’, ‘딸피· 틀발진쉴 새 없이 사고 치는 노인’, ‘딸배거지극혐, 나만 그럼?’, ‘너네 아빠 200충? 300충?’등 특정 집단을 향한 조롱과 혐오가 담긴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익명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천 개씩 댓글이 달린다. ‘여자 혹은 남자라서’, ‘어리거나 젊거나,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기득권 세대여서’, ‘키가 작아서’. ‘내가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국적이 달라서’, ‘특정 직업·지역이라서’, ‘정치 성향이 달라서’….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내가 속하지 않은 누군가(혹은 집단)’를 향해 불편함·분노·적대감을 서슴없이 표현하며, 서로 헐뜯고 조롱하고 비난한다. 우리는 ‘혐오가 일상화된 사회’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토록 서로를 죽도록 미워하게 되었을까? 왜 혐오 표현을 즐기는 걸까? 혐오는 어디에서 자라고, 어떻게 전염되며, 무엇을 먹고 커지는 걸까?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밈과 신조어 속에 숨겨진 혐오의 심리학을 통해 혐오 표현의 기원, 확산 메커…
2026-01-06 10:00
위험한 과학책(10주년 기념판)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장연재 옮김, 시공사 펴냄, 420쪽, 2만 5,000원) 세계적 밀리언셀러 ‘위험한 과학책’이 더욱 풍성한 유머와 최신 정보로 10년 만에 돌아왔다. 이 책은 NASA 출신 웹툰 작가가 독자들에게 받은 기상천외한 질문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미분 방정식, 기밀 해제된 군사 문건까지 동원해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해결한다. 이번 10주년 기념판에는 기존 내용의 수정·보강은 물론, 한국 독자를 위한 특별 서문과 사인, 보너스 페이지가 수록됐다. 공짜로는 알 수 없는 아들 설계 비법 0~12세 (김준수 지음, 여의도책방 펴냄, 204쪽, 1만 7,500원) 10년 동안 축구 클럽과 학교에서 2,000여 명의 아이들을 밀착 지도한 ‘아들 특화’ 스포츠 심리 코치가 소개하는 아들 양육법. 스마트폰 중독을 막는 도파민 관리법, 평생 건강을 좌우하는 식습관과 운동 루틴, 그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칭찬의 기술까지 바로 실천 가능한 매뉴얼을 담았다. 특히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기조절력’과 ‘관계력’을 꼽으며, 이를 길러주기 위한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모두
2026-01-06 10:00
우리나라에서 ‘부촌’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어디일까? 사람마다 떠올리는 지역은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용산의 동부이촌동, 서초의 반포·잠원지구, 강남구 압구정동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 지역들이 처음부터 부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부이촌동은 군사시설과 철도 창고가 자리하던 변두리였고, 반포·잠원 일대는 한강의 모래톱과 습지가 넓게 펼쳐진 황량한 지역이었다. 압구정동 역시 배밭과 농경지가 이어지던 서울 외곽의 조용한 마을에 불과했다. 지금의 부촌은 결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도시 확장과 경제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두리였던 지역들은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최상급 주거지로 도약하게 되었을까? 그 과정에는 단순한 도시 확장 이상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국가의 개발 전략, 대규모 공유수면1 매립사업, 건설사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한강이라는 자연적 자원이 지닌 잠재적 가치가 서로 맞물리며 새로운 주거 축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 건설사에는 사업권과 용지 제공 등 다양한 형태의 특혜가 돌아갔고, 이는 곧 해당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부촌의 탄생은 자연적으로 형성…
2026-01-06 10:00
20년 만에 복귀하는 김민종 그리고 최지우의 3년 만의 신작 영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1989)에서 단역으로 시작해 드라마 신사의 품격(2012)의 순정남 최윤 역할로 사랑받았고, 가수로 하늘 아래서와 손지창과 2인조 그룹 ‘더 블루’의 너만을 느끼며를 히트시키며 일약 청춘스타로 등극했던 김민종이 피렌체(감독 이창열)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는데, 2005년 관객 1만 4천여 명을 동원한 종려나무 숲(감독 유상욱) 이후 꼭 20년 만이다. 피렌체는 권고사직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삶의 방향을 잃은 중년의 ‘석인’(김민종)이 상실의 끝자락에서, 젊은 시절 자신의 열정이 숨 쉬었던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드무비다. 시간이 멈춘 듯 여전히 아름다운 피렌체 곳곳을 걸으며 석인은 그 시절 단짝 친구의 연인 ‘유정’(예지원)과 재회해 과거 자신이 버리고 떠난 기억과 감정을 마주한다. 범죄도시 4와 공조의 이성제 촬영감독이 피렌체 특유의 빨간 지붕들이 한눈에 보이는 전경과 광장 명소에 인물의 내러티브를 대입해 한 편의 무성영화 같은 웰메이드 로드무비로 완성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한국적 감성
2026-01-06 10:00
팽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자라지만, 남부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제주도나 남해안에 가면 정말 멋진 팽나무 고목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소금 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도 잘 자란다. 세월호 아픔을 간직한 팽목항도 주변에 팽나무가 많아 생긴 이름이다. 느티나무는 어느 정도 크면 나무껍질이 타원 모양으로 벗겨지지만, 팽나무는 벗겨지지 않아 매끄러운 점이 다르다. 2022년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엔 팽나무가 거의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경남 창원시 동부마을 뒤편 언덕에 큰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팽나무 추정 수령은 500살로, 높이는 16m, 나무 둘레는 6.8m에 달하는 나무다. 나무 아래 서면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이 마을 한가운데로 도로가 뚫릴 위기에 처하자, 마을 주민들과 변호사가 이 팽나무를 보여주면서 설득해 재판에서 이기는 줄거리였다. 팽나무라는 이름은 열매를 대나무 총에 넣고 쏘면 ‘팽~’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어릴 적 팽나무 열매를 모아 열심히 총을 쏘았다. 열매가 불그스름해지면 따먹기도 했는데, 살짝 단맛이 도는 것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가을엔 나무 전체가 노랗게 단풍…
2026-01-06 10:00
영화 중경삼림을 보았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홍콩이라는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일까? 하여 홍콩으로 떠나기로 했다. 일정은 5박 6일. 여행을 가기 위한 사전 조사를 해보면 정말 많은 사람이 3박 4일, 홍콩과 마카오를 묶어서 여행한다. 주변 지인에게 “홍콩에 5박 6일로 여행을 가려고요”라고 하면 “거기 뭐 볼 게 있어? 그렇게 오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5박 6일도 짧고 아쉬웠던 여행.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일단 걷자. 홍콩의 길거리. 골목은 더 좋고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홍콩 여행지는 바로 홍콩의 길거리, 골목이다. 홍콩에 왔다면, 이곳의 분위기에 흠뻑 젖고 싶다면, 일단 걷자. 숙소 주변부터 차근차근 걷는 것이다. 홍콩의 길거리는 낮이고 밤이고 좋다. 특히 간판들과 건물들을 보는 것이다. 1990년대에 아주 흥했던 도시. 그리고 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물들과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한자로 쓰여있는 간판들을 보면서 길거리를 걷는 것이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다. 밤은 또 어떠한가. 반짝반짝 네온사인 간판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너무 화려하고 번잡스러운 것이 아닌, 약간의 따뜻한 빨간빛…
2026-01-06 10:00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던 정홍래(鄭弘來, 1720~?)가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매(Hawk at Sunrise)에는 거친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붉게 타오르는 아침 해를 의연하게 바라보는 매 한 마리가 보인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1월이다. 한 해의 시작과 끝은 인간이 만든 시간의 인위적 경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무엇인가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강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없지만, 달력의 첫 장을 넘기는 우리 마음속에는 설렘과 막연한 두려움이 교차하곤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학기이지만,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우주이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파도는 매년 다른 높이로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 오래된 회화 한 폭을 꺼내어 천천히 들여다보면 어떨까.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Hawk at Sunrise라는 제목의 조선 회화 한 점이 걸려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아침 해를 맞이하는 매이다. 거친 바다와 파도 위, 기암괴석, 떠오르는 붉은 해, 그리고 바위 끝에 홀로 선 한 마리 매가 화면을 채운다. 메트는 이 작품을 조
2026-01-06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