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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英 소송 공포로 야외 학습만 위축

안전사고 시 손해배상 우려에 학교 적극적 활동 외면
정작 배상명령은 소수, 1교당 연 3000원꼴 지출
단위학교 책임경영, 다양한 가능성 충분히 검토해야

1988년 이후 영국 정부는 공립학교를 ‘단위학교 책임경영체제’로 전환하면서 학교의 자율성을 꾸준히 확대했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도 이전시켜왔다. 그 책임 중에는 ‘학교시간 중’에 일어난 아이들 안전사고의 사후 처리문제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학부모나 학생이 조금만 다쳐도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발생했고 이는 개별 학교와 교사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해 일종의 공포로 확산됐다. 결국 학교 자율성의 확대로 다양한 학습활동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했던 기대는 도리어 위축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전 발표된 지난 10년간의 실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발생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건수는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나 손해 배상 소송의 공포가 아이들의 학습활동만 위축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부터 지난 10년간 야외학습 안전사고로 법원에 제소당한 학교의 수는 364건이었으며, 이 중 절반인 156건 만이 학교의 불찰로 배상의 명령을 받았다. 그 10년간의 총 배상금은 40만 파운드(약 8억원)이었는데 이는 연간 1개교당 약 3천원 꼴이다.

1980년대는 영국의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공동체의 환상’을 철저히 와해시키던 시기였다. 당시의 대처 수상은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의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역설했고 이와 함께 ‘미국형 손해배상 청구 소송 문화’가 침투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경우 사실관계 증명의 책임이 제소자가 아닌 피소자에게 있었기 때문에 피소를 당하면 증명의 비용과 법정분쟁의 비용이 부담스러워 시시비비를 따지기 전에 ‘웬만하면’ 제소자와 합의를 보려는 경향이 많았다. 의료보험공단 예산의 23%가 의료사고 손해 배상으로 지출될 정도로 제소사건이 불어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자 언론은 야외 학습활동에서 일어난 안전사고의 손배 소송에 휘둘리는 학교들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이러한 ‘소문’들은 학교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약 학교가 의료보험 공단처럼 소송에 휘말려 학교 예산의 23%을 잃었다고 한다면, 그 학교는 ‘단위학교 책임 경영체제’ 이기에 폐교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구책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던 학교들은 입학 시 “학교는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러 저러한 안전수칙을 만들겠다”라는 문서를 만들어 학부모에게 보여준 뒤 학부모로부터 “학교가 위의 조건을 만족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학교에 추궁하지 않겠다”라는 각서를 받기 시작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필자가 학운위원으로 참여했던 학교의 경우 안전사고와 소송에 대비해 연간 100만원의 보험료를 보험회사에 지불했다.

문제는 강화된 ‘안전수칙’을 준수하려면 교사가 아주 번거롭고 부담스럽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지병이나 알레르기 상태를 모두 파악해야하며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처치할 것인지 계획서를 만들어 교장의 승인을 받아야한다. 해외 수학여행이라도 가려면, 준비하고 확인해야 안전수칙의 서류가 수 백 장을 넘는다. 정서 장애아들의 돌발행동은 예측이 안 되지만 정서장애아들을 학교 여행에서 제외시킬 수는 없다. 이러한 추가업무의 부담과 위험은 자연히 교사들이 야외활동을 외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했다.

이러한 영국의 경험은 ‘권한 하향 이동’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교육정책에 의미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보다 많은 학교의 자율권이 곧바로 다양한 학습 형태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생각이며, 자율성과 책임의 균형잡힌 분배, 그리고 학교 재원의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가능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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