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하와이 빅 아일랜드 화산국립공원에서 용암 분출을 직접 볼 행운을 누렸다. 이번에는 두 개의 분화구에서 용암이 동시에 분출되었는데, 첫 높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높았다. 밤늦은 시간에 도착해보니 영화와 TV에서 보던 장관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도 세차게 내리는 깜깜한 밤하늘은 붉다 못해 선명한 핏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폰의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것도 잠시, 사진 찍는 것도 잊은 채 대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한동안 넋을 잃고 서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경외감이 나를 감쌌다. 불기둥 속에서는 신의 모습이, 그리운 얼굴들이 일렁거렸다. 위대한 자연의 불기둥을 거대한 파노라마로 보노라니 아이맥스 영화관은 조그마한 화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맥스 화면이 아무리 정교하다 한들 발밑으로 전해지는 지각의 진동과 공기의 열기, 그리고 높이 솟아오른 불기둥의 위용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순간의 체험은 폰 갤러리에 저장된 이미지보다 더 선명하게 내 안에 남았다. 사진은 장면을 저장하지만, 경외감은 사람을 바꾼다.
관찰자와 체험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확산 이후 아동·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도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여행길 차 안에서, 식당 음식 앞에서, 심지어 눈앞에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 순간에도 우리는 무심코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감동을 누리기 전에 기록부터 하려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SNS와 인터넷이 10대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분석한 <불안세대>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혹시라도 수면에 반사된 햇빛이나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실려 오는 벚꽃처럼 뭔가 아름다운 것을 접하면, 사람들이 즉각 보이는 반응은 어딘가에 올리기 위해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것이다. 그 순간에 취해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은 드물다(Haidt, 2024: 317).
사진과 영상의 가치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망각의 수면 아래로 깊이 가라앉은 이미지와 감동을 삶의 어느 순간에라도 낚아 올릴 수 있는 낚싯바늘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기록이 감동의 체험을 대신할 때이다. 카메라는 세상을 담아내는 도구이지만, 때로는 세상과 나 사이에 놓인 얇은 유리벽이 되기도 한다. 렌즈를 드는 순간 우리는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구도를 계산하는 관찰자가 되기 쉽다.
스마트폰의 작은 프레임을 치울 때 비로소 우리는 거대한 파노라마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패키지여행처럼 시간이 빠듯한 상황이던 혹은 현장체험학습처럼 일정이 촘촘한 날이든 간에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앞의 풍경과 전율을 느끼기 위한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야만 훗날 낚아 올릴 경외감이란 대어가 우리 안에 숨어들게 될 것이다.
경외감이 바꾸는 뇌와 몸
경외감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지식 체계로 설명하기 힘든 거대한 것을 마주하는 경험이다. 인간은 광활한 자연, 위대한 예술품, 혹은 압도적인 도덕적 행위를 마주할 때 경외감을 느낀다. 경외감을 느끼면 우리 몸의 부교감 신경계, 특히 미주신경(vagus nerve)이 활성화되어 뇌의 명령 체계와 몸의 반응 시스템이 물리적으로 바뀐다. 심박수가 낮아지고 몸이 휴식 및 회복 상태에 들게 된다. 단순히 편안하다는 느낌을 넘어, 몸의 긴장도가 생물학적으로 낮아진다(Monroy & Keltner, 2023).
또한 몸의 면역 체계가 강화되고 자기중심적 사고에 머무는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의 활동을 줄여 주어 잠시 ‘나’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의식에 매몰되어 있던 시선이 외부로 확장되면서 자기중심적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작은 자기(small self)’ 경험을 촉진한다. 내가 작아진다는 것은 초라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더 큰 세계와의 연결을 자각한다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경외감은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협동심·감사와 연민 같은 친사회적 정서를 키우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자신을 압도하는 현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삶의 본질적인 목적이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불안증세를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경이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이 효과적인 치료법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장엄한 자연 앞에서 휴대폰을 내려놓는 시간을 최대로 늘려야 한다. 우리가 수업 중에는 휴대폰을 꺼두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상에서 경외감 느끼는 법
경외감은 반드시 멀리 여행을 떠나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곤충의 날개를 확대해 관찰하는 순간, 오래된 나무 기둥의 결을 손으로 더듬으며 시간을 상상하는 순간, 주변 환경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동반하는 경외감 산책 등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경외감 산책법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Greater Good Science Center).
준비 단계는 연결 끊기 단계이다. 눈앞의 풍경에 집중할 수 있게 휴대폰을 끄거나 아예 두고 나가야 한다. 자신의 감각과 외부 세계와의 연결에 집중하기 위해 가능하면 혼자 걷는 것이 좋다. 시각의 확장을 위한 산책 단계에서는 광활함 포착, 미시적 발견, 그리고 새로움 탐색의 세 가지 관찰법을 순차적으로 적용한다.
광활함 포착을 위해서는 높은 나무의 꼭대기, 넓게 펼쳐진 하늘, 지평선이나 수평선 등 시야를 멀리 둔다. 이를 통해 사물의 거대함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가 전체의 일부임을 느껴본다. 다음으로 발밑의 이끼, 나뭇잎의 정교한 맥, 돌의 질감 등 아주 작은 것에 집중하는 미시적 발견을 통해 자연의 설계가 가진 복잡성과 정교함을 깨닫는다. 새로움의 탐색이란 매일 걷는 익숙한 길이라도 ‘처음 온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건물의 그림자나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에도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신경생리학적 몰입이다. 위의 활동을 할 때 걷기 명상을 하듯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쉰다. 이어서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 흙냄새, 먼 소리와 가까운 소리, 빛의 방향과 그림자의 변화 등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여 본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잘 느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그저 알아차리는 태도다.
버지니아 대학교와 UC 버클리의 공동 연구(Sturm et al., 2022)에 따르면 8주간 주 1회 15분씩 경외감 산책을 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다음과 같은 변화를 보였다. 첫째, 감사·연민·기쁨의 감정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정서 변화이다. 둘째, 자신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고 타인과의 연결감 강화되는 심리적 상태 변화이다. 셋째, 표정이 밝아지고 미소가 증가하는 미소 빈도 증가이다. 경외감 산책은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의 초점을 ‘나’라는 좁은 프레임에서 ‘세계’라는 더 넓은 파노라마로 옮기는 연습이라 할 수 있다.
나오며
교육자로서, 부모로서 우리 자신이 먼저 스마트폰의 작은 프레임을 치우고 자연의 거대한 파노라마 속으로 들어가는 의식적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경험과 깨달음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학생에게, 자녀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더 넓은 렌즈를 선물할 수 있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휴대폰을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오래전 광고 카피는 인공지능과 디지털에 포위된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충고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