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정채봉 님의 글을 읽다가 감동적인 우화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목은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로 혹여 좌절을 겪고 있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소개해 주면 좋을 것 같아 발췌해 올려봅니다. 상처를 입은 독수리들이 하나 둘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기 시험에서 낙방한 독수리부터 시작해서, 무리에서 버림당한 독수리, 힘센 독수리에게 할큄을 당한 독수리 등등 그들은 세상에서 자신들만큼 불행하고 상처가 많은 독수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는 것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래서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망루에서 파수를 보던 영웅 독수리가 날아와서 이들 앞에 앉았다. "왜 자살하려고 하느냐?" "괴로워서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어요." 영웅 독수리가 말했다. "나는 어떨 것 같으냐?" 상처가 하나도 없을 것 같지? 그러나 이 몸을 봐라." 영웅 독수리가 날개를 펴자 여기저기에 많은 상처자국이 나타났다. "이건 날기 시험 때 솔가지에 찢겨 생긴 것이고, 이건 나보다 힘센 독수리가 할퀸 자국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겉에 드러난 상처에 불과하다. 마음의 상처자국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영웅 독수리
8월이 다 가는데도 아직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계절은 어느새 가을로 치닫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래도 팔월 초보다는 조금 덜한 것 같지만 아직도 움직이면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덥군요. 어제는 등산을 하고 내려오다 농가 담모퉁이에 핀 채송화를 보았답니다. 문득 채송화를 보니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담모퉁이마다 붉게 물들이던 그 가녀린 채송화들을 말이죠. 그래, 선 채로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아, 참 예쁘더군요. 리포터의 눈동자에 새겨 넣듯 카메라 렌즈를 대고 접사촬영을 했습니다. 저는 채송화를 보면 뭔가 애절한 느낌이 들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꽃이 연약해서 그런가? 아무튼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채송화는 시들지 않았더군. 그 모습이 아주 강건해 보였습니다. 어제는 그 가녀린 채송화 때문에 행복한 추억에 잠겨 본 하루였습니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농가 울타리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감과 밤, 봉숭아, 달래꽃 등을 보았습니다. 달래꽃은 리포터도 어제 처음 본 꽃이었습니다. 우리 교육신문 독자 님들도 한번 보시고 가을을 느껴보시죠.
리포터가 '김영옥'이란 이름 석 자를 접한 것은 3월 초순이었다. 평소 자주 들르던 문학공모전 사이트인 '오즈'란 곳을 방문했다가 영웅, 김영옥 선생을 추모하는 독후감을 공모한다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김영옥? 누구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김영옥이면 여자 영웅? 여자 영웅 중에서 유관순 열사말고 또 유명한 영웅이 있었나? 이상한 공모전도 다 있군. 출판사에서 책을 팔아먹으려는 속셈이겠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이왕 내친김이니 성별이나 한번 알아볼 생각으로 소개된 웹사이트를 클릭해 보았다. 그러자 바로 공모전 홈페이지가 열렸다. 깔끔하고 세련된 화면 구성과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니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언뜻 우측 상단에 '영웅, 김영옥 추모 독후감 공모전'이란 광고가 보였다. 바로 그 배너를 클릭하자 공모전에 대한 안내문과 함께 하단에 주인공으로 보이는 흑백사진이 나타났다. 사진을 보니 남자였다. 그것도 아주 연로한 할아버지였다. 남자 영웅이라면 순간적으로 이순신 장군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군. 분명 '어떤 시답잖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제멋대로 분칠하고 과장해서 내놓은 자서전이겠지'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런저런 의구심을 품으며
럭비공과 청소년의 공통점을 분석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첫째,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둘째, 생각보다 잡기가 힘들다. 셋째, 그래도 잘 다루는 사람이 있다. 이 이야기 속에는 단순히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심각함이 숨어있다. 오죽하면 청소년을 질풍노도의 시기, 혹은 주변인, 경계인 이라고 했겠는가. 이것은 청소년기가 그만큼 심리가 불안정하여 언제든 예측 불가능한 행동과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상존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 대한 우리 기성세대들의 자상한 보살핌과 따뜻한 사회적 배려가 무엇보다 절실한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편히 쉬면서 학업과 입시에서 받는 각종 스트레스를 해소할 문화적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청소년은 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이며 예비 주역들이다. 어떤 나라의 장래를 보려면 그 나라의 청소년들을 보면 알 수 있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 것일 것이다. 청소년 정책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식민지를 통치할 때의 일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접수한 즉시 모든 학교에서 운동장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그
요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이하 자립형 사립고) 추진을 두고 학부형들 사이에 말들이 많다. 올 초 교육부가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자립형 사립고의 확대 방안을 발표했고,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도 단체장후보들이 자립형 사립고의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자립형 사립고는 학생 선발을 비롯, 등록금 책정과 교과과정 운영 등이 일반학교와 비교할 때 비교적 자유로운 학교다. 대신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립형 사립고는 민족사관고를 필두로, 상산고, 현대청운고,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 해운대고 등 전국에 총 6개교가 시범운영 중에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 제도가 공교육을 내실화 하는 동시에 평준화의 문제점도 보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또 글로벌 시대에 맞는 각계 각층의 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고 사학만의 장점인 특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 교육에 대한 질적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고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우선 자립형 사립고 제도는 고등학교 서열화를 부추겨 학벌중심 풍토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잖아도 지금 일부 외국어 고등학교 및 과학고등학교와 일반고등학교
요즘은 초·중·고를 가릴 것 없이 학교들마다 시설이 매우 잘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실습실과 멀티미디어실, 가사실습실, 영어회화연습을 위한 랩실, 미술실, 음악실, 과학실, 생물실, 지구과학실, 물리실을 비롯한 각종 교과교육연구실, 최첨단 시설로 리모델링 된 학교도서관, 체육관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설들은 대도시에 있는 여느 전문시설들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처럼 훌륭한 시설들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아이들 수업에만 잠깐 이용될 뿐 나머지 시간에는 사장되고 있어 아까운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러한 시설들을 지역주민들을 위한 평생교육장으로 개방하면 아주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부요리반', '컴퓨터활용반', '영어회화반', '주부문예창작반', '독서토론반', '배드민턴반' 등을 개설한 뒤, 주부요리반은 학교의 가사실습실을 이용하면 될 것이고, 컴퓨터활용반은 컴퓨터실습실을, 영어회화반은 랩실을, 주부문예창작반은 도서관 열람실을, 독서토론반은 국어교과연구실을, 배드민턴반은 학교 체육관 등을 이용하는 식이다. 강사 확보 문제도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평생교육이 개설된 학교의 해당 교과목 선생님을 강사로 모시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초․중․고 학교들의 졸업앨범은 전국 어디를 가나 모두 천편일률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판에 박힌 듯한 딱딱한 편집과 단조로운 사진만 배열된 앨범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생각마저 든다. 요즘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와 혁신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도 오직 졸업앨범만큼은 아직도 변화를 거부한 채 요지부동이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3년 동안 학교 선생님들이나 전문 사진관에서 촬영한 필름을 졸업앨범 제작사에 넘기면 제작사에선 불과 한두 달만에 편집을 거쳐 가제본 형태로 만들어서 다시 학교로 가져온다. 그러면 학교에선 제작사에서 편집한 것을 간단하게 검수만 하는 정도로 앨범제작을 끝내게 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전국의 모든 학교의 앨범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들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좀더 재미있고 다양한 추억을 담은 선진형 졸업앨범을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 바로 학교 교지와 졸업앨범을 통합한 '교지형 앨범'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선진 외국에선 오래 전부터 모두 이런 '교지형 앨범'을 제
얼마 전 같은 아파트의 위 아래층에 사는 주민들끼리 한밤중에 난투극을 벌이다 손가락까지 잘렸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싸움의 원인은 아파트의 층간소음 때문이었다. 위층의 시도 때도 없는 쿵쾅거리는 소리에 아래층에 살던 주민이 쫓아 올라갔고, 위층은 위층대로 아래층의 계속되는 항의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라 그만 평소의 사소한 앙금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폭력행사로까지 번진 것이었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배려의 정신이 얼마나 필요한 덕목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위층과 아래층에 살고 있다면 분명 가장 가까운 이웃사촌간일 텐데, 손가락 절단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하고 만 것이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아래층을 배려해 조금만 조심하여 정숙하게 생활하고, 아래층도 위층을 배려해 약간의 소음 정도는 참아가며 듣기 좋게 부탁했더라면 그런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사회가 점점 각박해져간다고 걱정들이다. 남의 체면이나 처지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스퍼거(Social Asperger-사회생활 속에서 남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들이 점차
바야흐로 인터넷시대다. 관공서를 비롯한 기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가정에도 인터넷이 생활 깊숙이 침투해있다. 생필품 구입은 물론이요, 각종 정보의 조회 및 금융업무까지도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 그 편리함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하다. 아이들은 인터넷으로 게임은 물론이고 학습까지도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 못지 않게 부작용 또한 심각한 편이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이 인터넷 채팅 중에 특수문자를 조합하거나 우리말을 이상하게 변형시켜 사용하는 까닭에 한글이 파괴되고 있으며 심지어 그 의미까지도 뒤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면 요즘 인터넷 용어 중에 '안습'이나 '캐안습'을 분석해 보면 '안구에 습기가 차다. 즉 슬퍼서 눈물이 난다.(캐안습은 안습을 강조하는 개안습이 거친 발음으로 인해 캐안습이 됨)'라는 문장을 재미있게 압축·변형시켰을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변형 속에는 우리말을 가볍게 여기는 잠재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세종대왕께서 자주정신, 애민정신, 실용정신 등을 한글창제의 3대 정신으로 내걸고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불철주야 연구하여 만들어낸 한글을 우리 후손들이 이렇게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큰 문제
개학이 일주일 앞으로 닥쳤는데도 만사 태평인 딸아이가 걱정되어 여름방학 숙제를 살펴보게 되었다. 바다생태체험을 비롯해 박물관견학, 봉사활동하기,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기 등 다양한 숙제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유독 내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독후감 쓰기 숙제였다. 학교에서 제공한 열 권의 도서목록 중, 여섯 편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는 것이었는데 열 권의 도서목록 중에는 리포터가 아직 읽지 못한 책도 한 권 끼어있었다. 그 책은 구로야나기 테츠코가 쓰고, 김난주 씨가 번역한 '창가의 토토'란 책이었다. 딸아이의 독서지도도 할 겸 마침 시간이 있었기에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 찬찬히 읽어보았더니 의외로 우리 교사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창가의 토토'는 수업시간에 떠들고 늘 산만하게 행동하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토토'란 일본 초등학생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토토의 엄마가 토토를 다른 학교에 재입학 시키기 위해 여러 날 동안 수소문을 해서 어렵게 찾아낸 학교가 바로 '도모에'라는 학교였다. 도모에 학교는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대안학교에 해당될 것 같았다. 왜냐하면 개성이 너무 강해 일반학교에서는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요즘 '革新'이란 말이 학교현장에 새롭게 휘몰아치고 있다. 주로 교육이란 단어와 맞물려 '교육혁신'이란 합성어로 등장한 혁신이란 단어는 학교현장에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의 바람은 공교육을 정상화시켜 학교 본연의 역할을 정립시키는 동시에 학부모들의 사교육을 경감시켜주자는 대전제와 맞물려 있다. 공교육을 살릴 수 있는 길이 혁신밖에 없다면 우리 교사들 모두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혁신의 본질과 시행과정은 그리 녹록치가 않아 보인다. 엄격하게 말해서 우리의 일상은 어느 한 순간도 혁신과 변화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교단에 생뚱맞게 혁신(革新)이라는 강력한 물결이 휘몰아치면서 위기감과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혁신이란 원래 동물의 가죽을 벗기듯 완전히 자기 자신을 환골탈태하는 것을 뜻한다. 즉 지금까지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운 모습의 자신으로 재 탄생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처 자신을 어떻게 혁신해야할지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혁신이란 단어는 은근한 긴장과 부담을 안겨 줘 혁신에 대한 거부감까지
다음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산타클로스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하던 소녀가 신문사 편집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올해 여덟 살 된 소녀예요. 저는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는데 친구들은 저에게 자꾸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합니다. 산타클로스는 정말 없는 건가요?" 이런 난감한 편지를 받고 고민하던 신문사의 편집장은 소녀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단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보이는 푸른 들판과 하늘. 그리고 사랑스런 엄마, 아빠의 얼굴. 이런 것들은 우리 눈에도 보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란다. 하지만 정의, 사랑, 존엄, 용기, 신(神)적 존재 같은 것들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들이란다. 그러므로 산타클로스 또한 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한단다." 위의 글은 창의력 교육을 논할 때 흔히 드는 예화 중의 하나이다. 편집장의 창의적인 답장처럼 사람들 중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 보이지 않는 것도 보는 사람이 그들이다. 이처럼 창의력 교육이란 아이들에게 통합교과적 이해
리포터는 요즘 공주에 있는 충남교원연수원에서 논술연수를 받고 있습니다. 목요일인 어제는 논술연수의 막바지 과정으로 전북 고창에 있는 선운사(禪雲寺)로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답니다. 선운사는 가수 송창식이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란 애절한 노래를 지어 부를 정도로 유명한 사찰이고 또 미당 서정주 선생께서 아름다운 시심(詩心)을 기르던 곳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 곳입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흔히 산딸기로 잘못 알고 있는 복분자(覆盆子)가 선운사의 특산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선운사로 올라가는 가로수 그늘마다 장사꾼들이 거무튀튀한 색깔의 복분자를 좌판 위에 잔뜩 벌여놓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복분자와 산딸기는 같은 과실인줄 알았거든요. 제가 알고 있는 산딸기는 분명 밝은 선홍색이었는데 선운사에 있는 산딸기는 전부 진한 검은빛을 띠고 있더군요. 그래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 상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산딸기와 복분자는 전혀 다른 과실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아, 그래서 여행을 해야 견문이 넓어진다고 말들을 하나봅니다. 설명을 끝낸 주인장이 직접 현장에서 복분자 즙을 짜서 시음을 시키는데 사실 맛은 별로였습니다. 도솔산 남쪽 기슭에 위치해있다는
"제 아이를 회초리로 때려서라도 올바르게 가르쳐주세요"라는 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람을 어떻게 매로 다스릴 수 있느냐는 신성한 인권에 기초한 것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금지옥엽처럼 귀한 우리 자식의 몸에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맹목적인 자기자식 사랑이 그 원인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단순히 시대와 교육 환경이 변해서 그렇다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자고로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귀한 자식 매 하나 더 때린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제 자식 귀한 줄을 몰랐을 리가 없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귀한 자식에게 매 하나를 더 안긴 것은 다 까닭이 있어서였다.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고 강인하게 길러야 나중에 성장해서 제 몫을 다할 수 있으며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생존력이 생긴다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청주 기계공고에선 학부모들이 손수 회초리를 만들어 학생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선생님들께 전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학생을 체벌한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교권 추락 상황에서 읽은 기사였기에 더욱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리포터는 요즘 공주에 있는 충남교육연수원으로 논술연수를 받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다녔으니까 벌써 일주일이 다 되었네요. 순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자원한 중·고등학교 선생님들로만 구성된 논술연수팀으로 모두 37분이 학생들과 똑같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하루 일곱 시간씩 매우 강도 높은 논술 수업을 받고 있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미처 몰랐는데 막상 피교육자 입장이 되고 보니 학생들의 심정을 알겠더군요. 숙제와 글쓰기가 이렇게 귀찮고 어려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항상 아이들에게 수행평가로 숙제만 내주다가 제가 직접 수행평가를 하려니 얼마나 힘이 드는지... 같이 연수를 받던 어떤 선생님 왈, "앞에 피(被)자가 붙으면 항상 괴로운 법입니다. 피교육자, 피지배자, 피해자, 피의자 얼마나 괴롭습니까?" 정말 그 선생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역시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논술 수업을 받는 연수원의 분위기는 지금 열기로 후끈후끈합니다. 무더운 한여름철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배워서 아이들에게 양질의 논술을 가르쳐야겠다는 선생님들의 눈물겨운 향학열 때문입니다. 하루에 두 분씩 전국의 유명한 논술 강사 선생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