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 와 [무지하다] 와 [무지무지] 와 [무지막지] “호박이 무지 크구나.” “그 사람 무지하게 잘 생겼잖니?” “난 무지막지 배가 고픈걸.” “어린이들을 너무 무지무지하게 다루어선 안돼요.” 위의 예문처럼 우리는 [무지]란 말을 자주 쓴다. 그러면 여기서 그 뜻을 좀 더 확실히 알아보자. [무지(無知)] : 아는 것이 없음. 미련하고 우악스러움 [무지(無知)하다] : ‘무지’의 형용사형 [무지무지(無知無知)] : 몹시 놀랄 만큼. 대단히 (副詞) [무지막지(無知莫知)] : 몹시 무지하고 상스러우며 포악함. 물건 따위가 지나치게 큼 그러므로 위의 예문은 다음과 같이 고쳐야 맞는 말이 된다. “호박이 무지무지 크구나.” “그 사람 대단히 잘 생겼잖니?” “난 무지무지 배가 고픈걸.” “어린이들을 무지막지하게 다루어선 안돼요.” ▶ [따다] [뽑다] [캐다] [뜯다] [꺾다] [털다] 김장철이 되자 농촌에서는 ‘배추를 따고’ ‘무우를 뽑기’ 에 바쁘다. 그런데 예전에는 배추를 ‘딴다’ 고 하지 않고 ‘뽑는다’ 고 말했는데 당시에는 대개 배추의 밑동(굵은 뿌리부분)도 버리지 않고 먹었기 때문에 그 밑동까지 뽑아서 채취하였던 것이나 오늘날에는 칼이나 낫으로
사람을 ‘만물의 영장’ 이라고 하는 까닭은 사람이 두뇌․ 사고․ 언어․ 손재주 등 여러 면에서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월등한 능력을 소유함으로서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까닭의 하나는 사람은 다른 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일가 친척관계를 이루고 이를 아주 중요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이다. 만약에 사람만이 유지하고 있는 이 친척관계를 그 구성원들이 잘 모르거나 망각하고 살아간다면 그래서 정상적인 일가친척의 관계가 허물어져 버린다면 만물의 영장은커녕 다른 동물과 다를 게 없을 것이며 아니 오히려 그 뛰어난 지능으로 다른 동물보다 더욱 타락한 존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의 우리 어린이들이 알고 있는 친척관계에 대한 지식은 어느정도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촌수로는 ‘아저씨’ 인데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야,자’ 하지를 않나, 분명히 자기 조카 항렬(行列)인데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아줌마’ 로 부르기도 하고 ‘고모’ 를 ‘할머니’ 로 ‘외삼촌’ 을 ‘형’ 으로 부르는 등 친척관계와 그 호칭법을 몰라서 범하는 오류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어린이들이 잘
▶ [단백] 과 [담백] “계란의 흰자위는 고담백 식품이다.” “이집의 음식 맛이 아주 담백해.” 위 예문에서는 ‘단백’ 과 ‘담백’ 을 모두 [담백]으로 발음함으로서 그 뜻을 혼동하고 있다. [단백] 은 [단백질(蛋白質)] 로서 ‘사람의 3대 영양소중의 하나’ 를 말하며 [담백] 은 [담백(淡白)하다] 의 어근(語根)으로서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는 뜻이며 ‘담담하다’ ‘담박하다’ 와 비슷한 말이다. 요즘 흔히 나오는 맛 자랑이나 먹을거리를 다루는 TV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음식 맛을 평할 때 아무 때나 [담백] 을 남발하고 있어 도무지 [단백] 과 [담백] 의 뜻이나 확실히 알고 구분해서 하는 말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 [삼촌] 과 [삼춘] “난 우리 삼춘이 제일 좋아.” “삼촌의 아들은 나와 사촌간이지.” 위의 예문은 언뜻 보기에 틀림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계촌법(計寸法)에서 [삼촌(三寸)] 은 ‘아버지의 형제 특히 결혼하지 않은 남자 형제’ 를 이른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형제가 결혼하기 전일 때는 [삼촌] 이라 부르다가 결혼 후 그리고 자녀가 있을 때는 [숙부(叔父)] 혹은 [작은 아버
▶ [사랑은 아무나 하나] 와 [교육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교육은 아무나 하나 교육은 아무나 하나...” 위 첫 번째 예문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불리어진 유행가 가사이다. 이 노래의 제목은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인데 제목으로만 보아서는 사랑을 하는 주체의 자격이랄까 자질이랄까 아니면 능력이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므로 누구든지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뜻으로 해석이 된다. 그런데 이어지는 가사내용을 보아서는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주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따라 가능과 불가능이 결정된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눈이라도 마주쳐야’되는 것이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살펴보면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대상이 어떤 사람이냐, 어떠한 반응을 보이느냐가 관건이란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노래는 제목을 [사랑은 아무나 하나] 가 아니라 [사랑은 아무 하고나 하나] 혹은 [사랑은 아무한테나 하나]로 해야 맞는 게 아닐까? 두 번째 예문은 어느 교원단체의 연수회에서 위 유행가를 가사 바꿔 부르기 한 노래이다. 여기서는 교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 [양친] 과 [남친/여친] “자네 양친께서는 시골에 계시는가?” “내 남친이 곧 군대에 간단다.” “내 여친은 여행을 좋아해.” [양친(兩親)] 은 부친과 모친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이 [남친(男親)/여친(女親)]이란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고 있다. 물론 ‘남자친구’‘여자친구’ 의 약자임이 분명하고 그런대로 간단하고 신선한 맛이 있기는 한데 어딘가좀 듣기가 거북한 면이 있는 것은, 그 ‘친(親)’ 자 때문이다. 아무리 약자(略字)의 시대이고 간편 제일주의 시대라 하지만 어쩐지 ‘부親’ 과 ‘모親’ 과 ‘남親’ 과 ‘여親’ 을 동렬로 놓고 부르는 말 같아 민망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지나친 걱정일까? 바라건대 남친이든 여친이든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유롭게 쓰되 부모님이나 웃어른 앞에서는 삼가는 것이 우리말의 공손함을 살리는 태도 일 것 같다. 정이나 글자를 줄이고 싶으면 [남친구] [여친구] 정도로... ▶ [0촌] 과 [1촌] “너는 나의 1촌이야” “우리들 사이 1촌 만들기” 요즘 흔히 들어보는 말이다. 여기선 [촌]을 과연 우리사회에서 ‘삼촌’ ‘사촌’ 등으로 쓰고 있는 친척간의 [촌수(寸數)]의 의미로 쓰
▶ [친족] 과 [친지] “친족들만 모인 가운데 조촐하게 예식을 치르려고 해.” “친지들이나 불러서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게 좋겠어.” [친족] 과 [친지]도 구별해서 써야 하는 건 당연하다. [친족(親族)] 은 ‘촌수가 가까운 일가, 배우자의 혈족, 인척’ 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니 일가와 친척 중에서도 비교적 가까운 촌수를 뜻하며 [친지(親知)] 는 ‘서로 잘 알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 을 이른다. 그러므로 친척이외에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나 친분 있는 선후배나 직장동료등이 이에 해당한다. ‘친지’ 를 일가친척과 친분 있는 사람들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해야 할 것이다. ▶ [외척] 과 [인척] “저의 외척 중에는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저의 인척들은 키가 큰 분이 많아요.” 앞에서 [친척]에 관하여 언급한 바 있지만 [친척]도 [외척]과 [인척]을 구분해서 알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들은 다 아는 사실을 가지고 뭘 따지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보통 [친인척]이란 말로 뭉뚱그려 말하는 예가 많은데 이럴 때 우리의 어린 세대들에게는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으면 혼동을 하기 쉬우므로 학교에서 지도할 때 이를 주의해야 한다. .
▶ [증조] 와 [종조] “오늘은 증조할아버지 기일(忌日)이시다.” “너의 종조할아버지 생신일은 다음달이지.” ‘증조할아버지’ 와 ‘종조할아버지’ 를 잘 분간하지 못하고 쓰는 예가 많다. [증조(曾祖)]는 할아버지의 아버지이고 [종조(從祖)]는 할아버지의 형제분을 일컬음이다. 흔히들 ‘증주할아버지’ ‘종주할아버지’ 등으로 사투리를 씀으로서 그 발음상 어린세대들이 혼동하기 십상이므로 지도에 주의를 요한다. ▶ [일가] 와 [친척] “일가가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친척들을 모두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지.” “일가친척들이 뿔뿔이 헤어져 살게 되었어.” 우리가 굳이 그 뜻을 구분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일가] 와 [친척]은 그 뜻이 엄밀히 구분됨을 알고 써야겠다. [일가(一家)] 는 ‘한집안 또는 동성동본의 겨레붙이’ 를 말하며 [친척(親戚)] 은 ‘친족과 외척을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성이 다른 일가, 내종(內從), 외종(外從), 고종(姑從), 이종(姨從) 따위’ 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일가친척] 은 ‘일가와 외척 인척(姻戚)의 모든 겨레붙이’ 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앞으로] 와 [앞에] “전체, 앞에 나란히!” 언제부터인가 초등학교의 아동조회나 체육시간 같은 집단모임에서 교사들의 이런 구령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아마도 특정지역의 사투리인 것 같은데 이와 같은 구령용어는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라면 잘 못된 말임을 금세 알 수 있을 텐데 여전히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 물론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구령이 꼭 군대의 제식훈련처럼 격식에 맞아야 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구령의 통일은 있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와 [앞에]는 둘 다 ‘위치’와‘방향’ 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지향하는 목표로서의 방향’ 을 나타내는 의미가 강한 반면에 [앞에]는 그저 ‘존재하는 방향과 위치’ 를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위의 구령은, 대열이 앞쪽을 향하여 나가기를 지시하는 구령임으로 [앞으로 나란히!] [앞으로 가!] 가 맞는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좌우로 나란히!]를 [옆에 나란히!],[앞으로 가!]를 [앞에 가!]로 해야 할 것이며 [뒤로 돌아가!]를 [뒤에 가!]로 해야 하는 넌센스가 벌어진다. 모든 구령은 예령(豫令)과 동령(動令)으로 이루어진다. [앞으로 가!]와 [앞으로 나란히!]에서 ‘앞
▶「동네」와「동내」와 「동네방네」 “우리 동네가 제일 살기 좋은 곳이야.” “저 동내는 물 사정이 아주 나쁘대요.” “동내방내 소문난 말썽꾸러기.” 「동네」는 ‘자기가 사는 집의 근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을 뜻하고 「동내(洞內)」는 ‘동네 안(洞中)’ ‘마을 안’ 을 뜻하며 「동네방네」는 ‘온동네’ 또는 ‘이동네 저동네’ 를 뜻한다. 그러므로 위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다음과 같이 고쳐 써야 한다. “저 동네는 물사정이 아주 나쁘대요.” “동네방네 소문난 말썽꾸러기.” ▶「메다」와「매다」 “배낭을 등에 매다” “총대를 매다” “콩밭에 김을 메다” “허리띠를 메다” 위에서처럼 「메다」와「매다」를 구분하지 않고 쓰는 예를 자주본다. 「메다」는 ‘어깨에 걸치거나 올려놓다’ ‘어떤 책임을 지거나 임무를 맡다’ 이며 「매다」는 ‘끈이나 줄 따위로 동이거나 마디를 만들다’ ‘ 논밭에 난 잡풀을 뽑다’ 이다. 그러므로 위를 바르게 쓰자면 “배낭을 등에 메다” “총대를 메다” “콩밭에 김을 매다” “허리띠를 매다” 로 적고 발음해야 한다.
▶「반전(反戰)」과「반전(反轉)」 “요즈음 방영되는 반전 드라마가 재미가 있더군.” “반전 시위대가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어.” 물론 ‘전쟁반대’의 뜻인 「반전(反戰)」과 ‘’일의 형세가 뒤바뀜’을 뜻하는「반전(反轉)」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 첫 번째의 말은 한자를 병기(倂記)하거나 그 드라마 내용을 보기 전에는 ‘反戰드라마’인지‘反轉드라마’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한자 표기 없이 한글만으로 그 뜻을 올바로 전하기 어려운 말들은 수 없이 많다. ‘강도(强度/强盜)’‘우수(優秀/憂愁)’‘종자(種子/從者/宗子)’‘상제(上帝/喪祭)’등. 그러므로 최소한 기본한자의 교육이 꼭 필요하며, 위와 같은 경우 처럼‘한글사랑’이라는 명목으로 한자 병기에 너무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와「노력하다」 “열심히 노력하면 안 될 일이 없지.” “시험에 합격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돼.” ‘열심히’는 부사로서‘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몰하게’라는 뜻이고 ‘노력하다’ 는 동사로서‘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쓰다’ 이다. 위의 두 글에서는 ‘열심히’와‘노력하다’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서 어떤 일에 ‘
▶「삼수갑산」과「산수갑산」 “나중에 삼수갑산에 갈망정 우선은 먹고나보자.” “태봉산 자락에 있는 산수갑산 식당 도토리묵이 일품이야” 위 첫 번째 예문은 「삼수갑산」의 본 뜻을 알고 바르게 사용하고 있다. 「삼수갑산(三水甲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난하기로 유명한함경도 산골지방의 지명으로 조선시대는 유배지로 이름난 곳이기도 했었다. 그러므로 나중에야 어떤 곤경에 처하더라도 당장 하고픈 일은 하고보자는 뜻으로 많이 써온 속담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번째의 「산수갑산」은 아마도 「삼수갑산」의 뜻을 잘못 알고 썼거나, 아니면 그저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산’이라는 뜻으로 식당이름을 내걸은 것이 아닌가 싶지만 잘 못쓴 말임에는 틀림없다. ▶「굴밥」과「굴속」 “굴-밥은 언제 먹어도 맛이 있거든.” “굴-속에서 일주일을 숨어있던 간첩이...” 위에서는 먹는 ‘굴(石花)’과 땅굴의 ‘굴(窟)’을 똑같이 길게 발음하고 있다. 먹는 ‘굴’은 짧게 발음하여야 하고 땅굴의 ‘굴’은 길게 발음하여야 하는데 아마도 먹는 ‘굴’을 길게 발음하는 것은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가고.... ’라고 부르는 동요에 익숙하다 보니 ‘굴-’이라고 길게 발음하는 게 아닌가 싶다.
A시에 있는 B초등학교.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소리가 그치고 나자 바로 교내방송이 울린다. “5학년 3반 C선생님 교무실에 전화 와있습니다.” 휴대전화가 보급되어있지 않은 시절이고 일반전화도 각 교실 까지는 설치되지 않고 인터폰시설도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이렇게 시도 때도 없는 전화를 이런 식으로 받아야 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서둘러 달려와 수화기를 드니 “여기 D파출소인데 요. B초등학교 C선생님 맞습니까?”하는 약간은 퉁명스러우면서도 사무적인 말투의 경찰관의 말이 들려온다. “네 그렇습니다만...” “지금 곧 D파출소로 오셔야겠는데요. 여기에 학생을 한명을 보호하고 있거든요” C선생은 오늘로 벌써 사흘째 결석을 하고 있는 훈이를 퍼뜩 떠올렸다. “그 아이가 혹시 김용훈 아닌가요? 그런데 무슨 일로...” “아무튼 와 보시면 아니까 빨리 오세요.” 수화기를 놓자마자 학교 오토바이로 달려간 C선생이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쪽 구석 소파에 훈이가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있고 그 옆에는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서너명이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다. 훈이는 4학년때 어머니가 생활고 때문인지 훈이 아버지와의 불화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가출한
▶「학꽈」와「꽈대표」와 「관껀」 “대학은 학꽈 선택을 잘해야 돼” “그 친구가 꽈대표가 됐다는군”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느냐 못주느냐가 관껀이야” 위의 두 대화에서 첫번째「학꽈」는「학과(學科)」의 발음으로서 틀림이 없다. 한글 표준 발음법 제23항에 의하면, 받침 ㄱ,ㄷ,ㅂ뒤에 연결되는ㄱ,ㄷ,ㅂ,ㅅ,ㅈ은 된소리로 발음하도록 되어있다. 학교→학꾜, 국밥→국빱의 예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두 번째 「꽈대표」는「과대표(科代表)」를 아무 근거도 없이 된소리로 발음 하고 있으니 역시 습관에 의한 오류라 하겠다. 세 번째 「관건(關鍵)」도 마찬가지로 된소리 발음의 오류임을 알고 바로 써야 하겠다. 창고→창꼬, 독후감→독후깜 등이 같은 예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그 친구가 과대표가 됐다는군”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느냐 못주느냐가 관건이야”로 발음해야 한다.
용이가 사는 동네는 P시에서 이십리쯤 떨어진 바닷가 마을이고 용이는 그곳에 소재한 H초등학교 2학년1반 이다. 용이네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소규모 어업을 생계로 하고 있지만 용이 아버지는 P시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용이 담임 A선생이 무심코 한 시내버스를 탔는데 운전석에 앉아 있던 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A선생에게 다가오더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용이 아버지입니다. 용이 공부를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한번 꼭 찾아뵙겠습니다.”하며 정중히 인사를 한 적이 있기에 용이 아버지 직업을 비로소 알았지 가정환경조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었다. 용이 아버지 말마따나 용이는 반에서 발표력도 가장 좋고 성적이늘 우수하였으며 특히 씨름을 뛰어나게 잘해서 씨름 좋아하는 A선생의 주목을 받아 경기 테크닉을 틈날 때마다 전수 받았고, 그래서 학교나 동네에서는 꼬마장사로 소문이 난 용이는 장차 천하장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자랑삼아 말하곤 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고쳐야 될 점이 있다면,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한데다가 기운이 무척 센 편이어서 자기 고집을 꺾으려는 친구에게는 곧잘 폭력을 휘둘러 피해자(?) 어린이의 어머니가 찾아와 야단
▶「감자(甘蔗)」와「감자(減資)」 어느 방송의 경제뉴스에서 방송기자가 어느 회사의 ‘감자설(減資說)’을 보도하는데 그 발음을 짧게 ‘감자설’ 이라고 하니, 신문이라면 괄호를 써서 한자를 표시해줌으로서 여기서의 ‘감자’ 가 ‘먹는 감자’ 가 아니라 자본감소의 ‘감:자’ 임을 구분 할 수 있었을 텐데, 방송이라서 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 물론 보도 내용으로 보아 그 뜻은 혼동될리 없겠지만 발음만큼은 방송기자로서 틀려서야 되겠는가? ‘감자(甘蔗)’는 가짓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인데 그 땅속줄기의 일부가 덩이모양을 이룬 우리가 흔히 먹는 농작물이며 그 발음은 짧게‘감자’로 해야 하고 ‘감자(減資)’는 회사의 공칭 자본금의 액수를 감소하는 일을 말하며 그 발음은 길게 ‘감:자’로 해야 한다. ▶「와중(渦中)」 “조용히 사색에 잠겨있는 와중에 전화가 걸려왔지 뭐야” ‘와중’은 소용돌이치며 물이 흘러가는 가운데나 일이나 사건 따위가 시끄럽고 복잡하게 벌어지는 가 운데라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많은 사람이 전란의 와중에 가족을 잃었다” “태풍과 홍수의 와중에도 이웃사람을 구조하기 위하여” 등의 경우에 쓰이는 말인데, 위의 예처럼 ‘-하는 도중’ ‘-한 상황’ 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