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나른함이 흐르는 강마을은 완전 여름의 초입이다. 앞산에는 뭉게뭉게 밤꽃이 피어나고, 보리타작을 끝낸 들판에는 모심기가 한창이다. 뒷곁의 뽕나무 아래에는 농익어 떨어진 오디 열매에서 까만 과즙이 흘러 벌과 나비와 파리를 모으고 있다. 학교 뒷밭에 올해 처음으로 블루베리 나무를 스무 주 정도 심었다. 행정실장님과 주사님께서 두둑을 높이 올리고 3년생 정도의 나무를 봄에 이식하였는데 5월을 지나니 동그란 열매가 모양새를 완전히 갖추고 열리더니, 어제 보니 보랏빛이 선명해 진다. 참 신기하다. 마트에서 비싸게 주고 사 먹은 서양과일이 농촌의 뒷밭에서도 열리는 것이다. 여름과일하면 예전에는 원두막 아래 수박과 참외가 매달린 장면을 연상하였지만, 지금은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에 자라는 수박과 참외를 시골에서도 볼 수 없다. 수박은 모두가 지난 겨울 추수가 끝난 자리에 세워졌던 하이얀 비닐 하우스 안에서 겨울내내 자라서 초봄 무렵 출하가 시작되고 두어 번 따낸 수박밭은 하지가 지나면 철거하고 그 자리에 물을 잡아 늦은 모심기를 한다. 이곳은 의령은 수박의 산지로 유명하다. 남강과 낙동강이 교차되는 곳으로 강을 끼고 있어 물사정이 좋고 농토가 수박을 심기에 적당하여
갑자기 여름이 찾아온듯 더운 날입니다. 보리밭 위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누릇누릇 배어난 세월은 곧 봄보리를 베어야할 것 같습니다. 물잡은 논에는 개구리 울음이 들려옵니다. 하이얀 찔레꽃이 가는 봄의 뒷모습을 보면서 배웅을 합니다. 민화를 보다가 더워서 해어도를 그려보았습니다.
아침 수업에 들어가서 1학년 학생들의 과제를 검사했습니다. 한 사람과 면담하여 그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 중 몇 명이 숙제를 하지 않았기에 왜 하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하니, '그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답이 아닐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기 싫었다든지 잊었다든지가 답일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그냥이라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특별한 이유없이 그냥이라든지, 우연이라든지 이런 말을 잘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냥과 우연이란 것은 없습니다. 어쩌면 꼭 필요해서 나에게 온 일이고 무엇이나 나와의 인연으로 이곳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은 분명 우리와 전생에 인연이 얽혀 있으므로 해서 이곳에 나와 같이 만나서 말하고 웃고 밥을 같이 먹을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도 아버지 어머니의 하룻밤 실수가 아니라 내가 우리 부모님과의 인연의 씨앗으로 태아난 것입니다. 내 몸 속을 흐르는 생각은 어쩌면 내 할아버지의 꿈과 할머니의 삶 속에서 발원된 샘물에 솟아 오르는 것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생명의 주최는 DNA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진정한 생명의 주최는 살아서 숨쉬고 짝짓기하고 죽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대
올 봄 제가 맞이하는 봄의 색감은 노랑입니다. 노란 좀씀바귀꽃을 그려 봄엽서를 보내고 노란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강마을 화단을 날아다닐 노랑나비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의 봄은 어떤 색깔인가요?
새해 모란을 다양하게 엽서에 그려서 벗들에게 보내었습니다. 모란꽃의 의미는 부귀를 상징하는 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꽃송이 크고 색이 화려하여 꽃중의 왕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모란그림은 모란꽃만 그리면 부귀도 모란꽃을 크게 그리면 대부귀도 모란꽃과 바위를 그리면 부귀장수 모란꽃과 장닭을 그리면 부귀공명도 모란꽃과 병(유리병, 꽃병)을 함께 그리면 부귀평안 모란꽃과 백두조를 그리면 부귀백두조도-머리가 하얗게 셀때까지 부귀하다, 이 때 백두조는 반드시 두 마리를 그린다. 부부가 함께 해로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란꽃과 목련, 해당화를 함께 그리면 부귀옥당 -귀댁에 부귀가 깃들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모란은 이렇게 부자가 되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해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고 합니다. 엽서에 모란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름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강마을 중학교 화단에는 뜨거운 햇살 사이로 붉은 칸나의 눈부신 붉은 꽃이 당당히 피어납니다. 요즘의 학교는 참 조용합니다. 방학 중 보충수업도 끝나고 이따금 도서실에 책을 대출하러 오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아이들 그림자를 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학교에 나와 있으면 시간은 많은데 책도 잘 읽히지 않고 편지도 써 지지 않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가도 이렇게 갑자기 횡재처럼 주어진 시간을 유용하게 쓰기는 힘든 모양입니다. 학교 화단에는 보랏빛 맥문동꽃이 무성하게 기다란 줄거리를 올리고 자잘한 꽃이 다닥다닥 피어있습니다. 0.5센티 정도의 작은 꽃은 여섯 장의 꽃잎과 노란 수술이 참 어여쁩니다. 멀리서 보면 보랏빛 꽃 무더기처럼 맥문동꽃을 꺾었습니다. 손으로 힘을 주어 꽃줄기를 뽑으면 아래까지 쑥 뽑아져 나옵니다. 기다란 꽃줄기를 유리병에 꽂았습니다. 참 예쁩니다. 여름의 뜨거움 때문인지 맥문동꽃이 주는 보랏빛이 시원합니다. 맥문동꽃은 우리 산하 어디에나 피어나는 야생화지만 유용하고 고마운 풀입니다. 그래서 그 구체적인 효능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맥문동(麥門冬) : 맥문동초,소엽맥문동,세엽맥문
봄빛이 눈부십니다. 강마을에는 자잘한 풀꽃이 참으로 참으로 어여쁜 모습으로 내 앞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남강이 보이는 언덕배기 강변 횟집의 남새밭에 핀 매화꽃은 바람에 분분히 날리고, 그 옆자리에 몇 그루 선 산수유는 그 노오란 웃음이 싱그럽습니다. 봄볕이 간지럽습니다. 볼이며 이마며 옆구리를 자꾸 건드리는 듯 느껴집니다. 눈에 장난기가 흐르는 아이처럼 손가락으로 무딘 허리를 슬쩍 찔러서 바람 빠지듯 웃게 만들고, 향긋한 박하향이 나는 입김으로 머리칼을 불어버립니다. 봄은 봄은 이렇게 향기롭고 나른하고 아름답게 다가섭니다.
초겨울 아침은 화장을 한 듯 그렇게 저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처음 화장한 소녀의 모습처럼 살짝살짝 희고 고운 박가분을 바른 들녘은 그대로 눈부신 아름다움 그 차체입니다. 빈들에 레이스 자락을 펼친 듯 그렇게 얼음가루가 반짝입니다.그래서 저는 겨울아침을 좋아합니다. 지난 목요일에 우리 학교 평생 교육 프로그램 수료식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시와 문학반]이라는 강좌로 두 달 동안 수업을 하였습니다. 열세 분의 학부모님과 지역민들께서 늦은 밤시를 읽고 문학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투명한 영혼이 부딪히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작은 면지역에서 과연 문학반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처음 시작한 분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수료증을 받으셨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주시는 수료증을 받을 때면 아주 큰 상장을 받는 듯 소중하게 볼을 붉히는 모습이 마치 소녀처럼 곱고 아름다와 보였습니다. 시를 읽는 것이 좋다는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그동안 얼마나 아름다운 글에 목말라하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농촌의 연세가 많으신 분은 시를 쓰기 어렵다는 제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름답
강마을 학교에는 긴 침묵이 붉은 칸나와 노오란 멕시코해바라기로 가득한 화단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따금 나나니벌 몇 마리와 검은 제비나비가 날아다니고, 매미 소리는 트럼펫처럼 쏴쏴 울려댑니다. 학생들이 방학을 하니, 학교는 비어 버립니다. 꽃도 벌레도 나무도 그대로인데, 왜 그런지 무겁고 가라앉아 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빈 학교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었습니다. 한비야의 세계여행기도 읽고, 공간에 대한 글과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는 가슴뛰는 메시지를 던지는 어느 유명 강사가 쓴 글도 읽었습니다. 몇 장의 엽서에 연꽃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한 잔 들고 현관에서 멀리 융단처럼 펼쳐진 초록의 논도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던 지난 학기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 좋은 하루입니다. 뜨거운 햇살과 더 뜨거운 지열 이따금 나뭇잎을 팔랑거리는 은사시나무의 훌쩍한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길고 길고 침묵이 감싼 학교에서 하루종일 수업도 없이 다른 업무도 없이 근무를 하면서 행복해합니다. 하얀 모시 치마 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앉아서 책을 읽은 참 좋은 좋은 여름날입니다. 치열했던 지
남쪽의 여름은 벌써 다가서 있습니다. 마늘과 양파 수확은 끝이 났고, 모심기도 거의 다 하였습니다. 물잡은 논에 갓 심은 연초록의 어린 모들이 줄을 서서 뜨거운 여름볕을 기다리고 며칠 지난 모들은 땅내를 맡아 제법 의젓하고 반듯하게 몸을 곧추고 있습니다. 강마을의 여름이 시작되면 개구리 울음이 요란합니다. 산개구리의 '오로로록.... 오로로록.... ' 이렇게 예쁜악기소리 같은 소리며, 혹 비가 오려면 가장 먼저 들려오는 꽉 꽉 짖어대는 듯한 청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참 요란합니다, 마치 비 온다. 빨리 장독 덮어 라고 소리치는 시어어니의 호된 꾸지람 같습니다. 참개구리는 개굴개굴 이렇게 참 평범한 소리로 무논 어디에서나 넘치도록 울어댑니다. 이런 무수한 개구리 울음 소리는 한여름 내내 강마을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저는 이런 개구리 울음소리가 좋습니다. 그냥 사람들은 개구리 소리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개구리소리 역시 다 같지 않습니다. 눈을 감고 들으면 저마다 다른 소리로 우는 개구리 소리를 가려내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저마다 다른 모습과 향기가 있듯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도 제각기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매일 무논의 개구리 소리를
봄입니다. 강마을의 봄은 건드리면 터질 듯 농익은 과일처럼 그렇게 더운 입김을 토해 냅니다. 내 볼에 내 어깨에..... 눈길 닿는 어디에나 봄꽃이 피어 있습니다. 보고 또 보고 있어도 그래도 어여쁜 봄꽃은 봄이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보다' 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봄은 보는 계절입니다. 보아야 봄을 느끼고, 보아야 봄이 왔다고 실감하듯, 봄이란 말은 항상 시각적 심상으로 다가서나 봅니다. 무수한 봄꽃이 일시에 폭탄을 터뜨리듯 그렇게 이곳 저곳에서 퍽퍽 물풍선이 터지듯 그렇게 노랑, 분홍, 흰색으로 떠오릅니다. 강나루를 감싸고 노오란 유채꽃이 제 그림자를 비추고, 자잘하고 하얀 자두나무꽃은 산기슭에 흰꽃구름을 만들고, 진홍의 진달래는 그 색감이 볼붉은 촌색시 그대로입니다. 좁쌀밥처럼 조그만 꽃뭉치가 가는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팝나무꽃은 참 앙증맞습니다. 그러나 덤불에 많이 피어 있으면 신부의 부케처럼 풍성하고 예쁩니다. 먼저 피었던 목련은 이미 그 꽃잎의 절반을 떨어뜨려 비맞은 노처녀의 모습처럼 불쌍하게 보입니다. 특히, 떨어진 꽃잎은 시커멓게 변해서 시작과 끝이 참 다릅니다. 뭐니 뭐니 지금은 벚나무의 꽃이 가장 눈부십니다. 연분홍 꽃나무는
2007학년도 수료식을 마치고 저는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돌아간 적막한 학교에 앉아 잠시 운동장에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았습니다. 강마을 운동장에는 봄비처럼 그렇게 보실보실 예쁘게 햇살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 햇살 뒤로 논둑에선 쑥이며 달래며 냉이가 기지개를 켤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 2008학년도 계획을 세워야하고, 새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는 입학식날에 새순 같은 아이들은 맞을 생각을 하면, 입춘날에 보았던 대문에 붙은 잘 쓴 춘첩처럼 그렇게 기분 좋습니다. 그렇게 저는 새 아이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갈수록 새봄이 좋습니다. 봄이란 말도 좋고, 봄이 오는 것도 좋고 봄을 맞이할 수 있음도 좋습니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일까요? 며칠 전에 향기로운 히아신스 알뿌리를 하나 샀습니다. 거실에 두었더니, 금새 길쭉한 솜사탕같은 꽃덩어리를 피워 올렸습니다. 작은 꽃들이 무수히 덩어리를 이룬 꽃에서 나는 짙은 향내가 온 집을 감싸 시위를 하는 듯 하였습니다. 히아신스는 그리스신화의 아름다운 소년 하이토킨스가 죽어서 된 꽃입니다. 아름다운 미소년이 변해서 된 것이어서 인지 꽃이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봄이면 저는 향기롭고 예쁜 수선화며 히아신스, 후
제가 있는 시골중학교에는 아침이면 겨울안개로 무성합니다. 학교 옆을 휘돌아 흐르는 남강으로 희뿌연 안개가 흐르면 그 강가를 둘러싼 키 큰 은사시나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문에서 도우미 교사가 되어 낙엽을 치우고 있으면,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안개를 뚫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앞머리가 젖어있습니다. 제법 머리가 긴 녀석도 보입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두발과 교복 차림이 꽤 단정한 편입니다. 도시의 학생들처럼 퍼머나 염색을 한 아이는 찾아보기 어렵고 교복을 이상하게 줄여 입는 아이도 드뭅니다. 전교생 58명의 시골중학교에서 누가 어느 집 아이인지 어느 골짜기에 사는지도 다 아는 선생님과 졸업을 하고 나서도 힘들 때면 밤늦게 전화를 해서 고민을 이야기하는 그런 제자가 모여 있는 것입니다. 처음 학생들의 인권 존중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니, 제가 교사이면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학생의 삶의 질에 대해 삶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3학년 아이들에게 너희는 인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샘예, 인권이 뭐라예?” “인권
시골 중학교의 저녁은 무척이나 쌀쌀합니다. 공기가 맑고 깨끗해서인지 해가 떨어지면 한기가 금새 몰려옵니다. 요즘은 퇴근 시간을 거의 6시를 넘기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학예발표회인 를 준비하는연극 연습을 하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강당에 모여 잠시연습을 하고 나면 이렇게 바깥이 어두워집니다. 전교생 57명중에서 연극에 참여하는 학생의 수는 12명입니다. 중학생 수준에 맞는 대본을 구하기도 힘들어 결국 대본은학생들이 공동 창작하여 쓰고 아이들과 의논해서 소품이랑 의상을 준비하였습니다. 조그만 강당에서 하려면 무대장치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고 조명은 열악하지만, 매일 연극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고 준비운동, 발성연습, 연기 지도를 하는 것이 저는 참 좋습니다. 연극은 묘하게 사람들을 응집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작년에도 학예발표회에서 연극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참여시킨 많은 학생들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오는 동안 사람들 앞에서 한번도 무대에 서 본일이 없는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발표수업보다 학생들의 표현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연극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연극을 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연기를 하였는지 무대 위에서 왜구들과
아침 등산을 다녀오신 친정어머니께서 ‘산에 갔더니, 할배가 왔더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할배는 된서리를 뜻하는 시골어르신들의 말입니다. 이제 할배가 왔으니, 얼마 남지 않은 고춧잎이 말라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된서리가 내린 들판은 희고 고운 망사천을 덮은 듯 그렇게 아름다운 가을의 정취를 보여줍니다. 요즘은 산과 들이 갈아입은 가을 옷이 참으로 눈부십니다. 개옻나무의 타는 듯 붉은 색과 키 큰 나무에 속하는 백합나무 노란색을 저는 좋아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절이지만 꼭 농촌의 추수와 맞물려 항상 바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 역시 시댁이 시골인지라, 단풍구경을 가려고 하던 것을 그만두고 일을 도우러 갔습니다. 주5일제로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들과 산에서 힘들게 보내었습니다. 첫날은 마늘논에서 비닐을 덮고 그 위로 마늘싹을 올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뾰족한 갈고리로 비닐 구멍을 뚫고 그 위로 5-10 센티 정도 자란 마늘싹을 올려주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쉽고 단순하지만 긴 밭고랑에 앉아서 하고 있으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팔순의 시아버님과 칠순의 시어머님께서 열심히 하시는데, 젊은 며느리가 힘들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