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시작된대구계명대 목요철학 인문포럼 일곱 번째 강의였다. 독도 영유권의 역사적 고찰이란 제목으로 계명대 성서 캠퍼스 행소박물관 시청각실에서 열렸다. 독도학회 회장, 울산대 석좌교수 사회학 박사 신용하님의 강연을 가슴 벅찬 심정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일본 외무성은 이른바 2008년 10포인트란 제목의 아전인수식 이론을 앞세워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의하면서 독도가 원래부터 일본 땅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전 세계를 향해 선전 선동함으로써 침략외교의 가면을 벗지 않고 있다. 2008년 10포인트에 대한 16개 항의 물러설 수 없는 우리의 입장을 역사적 자료를 제시하며 밝힌 내용이라 소개한다. 강연 주제 요약: 독도 영유권의 역사적 고찰 1. 한국은 아득한 옛날(서기 512년)부터 ‘독도’를 한국 고유영토로 ‘영유’해 왔습니다.(김대건의 조선전도 등 증거 제시) 2. 한국은 고려시대는 물론, 15세기 조선왕조 시대에도 세종이 독도를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조선영토로 계속 통치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규장각 세종실록지리지 등 증거 제시) 3. 한국은 15세기와 16세기에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당시 한자문화권 세계에 알렸습니다. 일본을 포함한 모든 한자권 세계
지금까지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는데 마침 최재봉의 '언젠가 그대가 머물 시간들'을 읽을 기회가 있어 세월과 환경이 각각 다른 다양한 소설 속 사랑풍경을 엿보게 되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1. 겹눈의 사랑 외 7편이 소개된 ‘그렇게 너는 나를 지나갔다. ’ 2. 2천5백만 년의 약속 등 6편이실린 ‘순정과 욕망의 교차로.’ 3.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이상의 봉별기 등 6편이 실린 ‘매혹하는자, 갈망하는 자.’ 4. 사람 마음을 이렇게 모르냐 외 6편이 소개된 ‘아득해서 아름다운.’ 5. 사랑은 미친 짓이다 등 7편을 소개한 ‘이것은 왜 사랑이 아닌가?’ 이렇게 구성된 이 책의 한국 소설 32편을 읽어 보면 “사랑이 무엇이라는 연역 대신 ‘이런 것이 사랑’이라는 예시를 통해 사랑의 본질을 귀납해 가는 방법을 택했다고나 할까”라는 저자의 말을 기억하게 된다. 저자가 바라본 문학작품엔 권력과 복종이 사랑의 숨길 수 없는 일면이라는 사실도 보여 준 '경마장 가는 길', 맘에 드는 서방질은 부정한 일도 죄도 아니라는 직업적 사랑 '뽕', 닿을 수 없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을 향한 조바심도 사랑이 될 수 있는 '화장', 고통과 사랑의 강도가 비례하는 무시무
부제목 '세상의 헛소리를 간파하는 77가지 방법'이란 안내처럼 저자는 방송이나 신문, 잡지 등 언론에 소개된 발언들을 대상으로 우리 실생활의 그럴 듯하지만 논리적이지 못한 말들을 골라 조목조목 '이러이러하니 이렇다 라는 이론은 실상 가짜 논리’임을 주장하고 있다. 처음 딱딱한 책제목과 표지디자인만 보고 차일피일 읽기를 미루기만 했는데, 읽어보니 글도 간단간단하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거의 쉬운 말과 명쾌한 해설로 저자의 '논리'에 빠져들게 되었다. 살인은 했지만, 살인자는 아니다라는 글은 정의의 축소(High redefinition)라는 부제목이 있고 “나는 음주운전자가 아니다. 어쩌다 한 번 그랬을 뿐이다”라는 유명 요리사의 말도 인용한다. 또 아내를 살해한 자가 법정에서 “나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 한 번 그랬을 뿐입니다”라는 주장도 함께 소개하며 살인자나 정복자, 발견자, 또는 방문자는 한 번으로 족한데도 의미를 너무 축소한 나머지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을 만큼 협의의 뜻으로 바꿔버린 이런 논리- ‘정의의 축소’ 재미 있지 않은가? '우유는 송아지가 먹어야지', '부모가 죄인이면 자식도 죄인인가?', '걱정도 팔자', '거짓말과 새빨간 거
37년 외길 교육공무원 생활을 마치던 날까지도 본 리포터는 우리 주위에 노인인구가 얼마이며, 주변에 ‘시니어클럽’이란 멋진 보금자리가 있는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건강보험증 세대주를 둘째 아들 이름으로 변경하면서 나의 퇴임 후 제2인생은 시작되는데, 대구컨벤션센터에서의 ‘노인일자리 박람회’ 현장에서 몇 군데 회원등록을 해둔 것이 수성시니어클럽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07년 창립한 수성시니어클럽은 시장형·교육형·복지형 일자리사업을 통해 수많은 노인 일자리를 창출했고 햇빛촌콩나물, 생활용품재활용사업, 실버폴리스 등 지역실버산업 확산에 앞장서 오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연호동 사무실에서 간단한 이력서 작성과 면접을 거쳐 지금의 문화재해설사업체험사업단에 소속 되었고, 면접 당일 바로 문화재 강의를 경청했는데 알고 보니 회원 중 대부분 학교에서 2세 교육에 힘써 오신 선생님들이어서, 한 사람 건너면 대부분 선후배 교육가족이란 사실 여간 미더운 일이 아니었다. 요즘 우리집 마당에 낙엽 떨어진 나무들 사이에 뿌려놓은 채소씨앗이 싹을 틔워 하루가 다르게 잎이 푸르고 싱싱하다. 난 문득 요즘 세상에 ‘시니어’들이야말로 “낙엽지고 나서도 푸르른 겨울채
질병 없는 신체적 건강을 추구하는 것이 헬스(health), 신체적 건강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피트니스(fitness)이며, well-bing과 fitness의 의미를 포함하면서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한 차원 진화된 운동 개념이 '웰니스'이다. 이 책은 2008년 7월 KBS 1TV로 방영된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21세기 新운동 웰니스, 당신의 뇌를 바꾼다'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운동으로 변화되는 뇌와 마음의 작용을 최신 뇌과학 이론으로 설명하고, 잘못된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운동법을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흔히 운동의 필요성을 늘 자각하면서도 땀나고 힘들어서, 시간 내기가 어려워서, 돈이 들기 때문에 운동할 엄두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얼마 전까지 본 리포터도 그랬다. 그러나 운동이 놀랄 만큼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꾸준한 스트레칭이나 산책처럼 단순한 운동으로도 그런 변화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면, 더 이상 망설일 필요 없이 운동해야 한다. 운동이 삶의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과학적 근거와 국내외 사례들을 통해 밝히고 있는 이 책은, 그 동안 운동에 무관심했거나 운
IMF 경제위기사태에서 벗어났다고 그런지 요즘 학생들은 자신의 소지품에 대한 애착도 정리 정돈하는 습관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또 이런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습관이 얼마나 잘못됐으면 늘 지도하고 당부하는데도 저럴까? 아니면 저 학급만 그런가? 도둑이라도 들어 도난당하면 일이 아주 커지는데 걱정스럽다. 쉬는 시간에 복도를 지나다 보면 창문도 출입문도 열려 있고 전등은 켜져 있으며, 바람마저 불어 부득이 문을 닫고 담임한테 조용히 귀띔해 준 적도 있었고, 학생 소지품 분실사건 조사한다면서 수업할 학생들이 담임께 불려가 늦게 오는 바람에 반쪽 수업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또 한번은 어떤 사설경비업체 경비원이 월요일마다 어느 반 창문 어디가 열려 있더라고 문단속을 너무 세밀히 반복 지적해 전달하다가 얼마 안가 그만 둔 경우도 보았다. 아무리 옳은 일도 얼마나 지혜롭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상대방 반응은 다른 것이다. 학교시설 경비관리를 외부용역회사에 맡기고 주민의 출입이 자유로워진 요즘 과거에 없던 일이 늘었다. 운동장에서 주인 없는 핸드폰을 주워찾아 주었더니 정작 물건 주인은 어디서 분실했는지조차 모르
본 리포터는 아들과 그 친구를 위해 이 책을 구해 읽었다. 그리고 교생실습과 채용고시를 거쳐 발령을 손꼽아 기다리는 후배 교사들, 아울러 젊은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이 책이 의외의 직업, 아직 모르고 있던 각자의 숨은 재능을 알아볼 기회가 될 것이라 여겨지므로 소개한다. 교직원을 포함해 한국의 1500만 직장인들은 매일 출퇴근 전쟁과 반복되는 초과근무, 주말 근무에 시달린다. 100만 청년 실업,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시대, 졸업을 앞두고 어떤 직업에 종사해야 할지 고민 중인 젊은이들에게 이 책은 기회의 땅 프리랜서를 제안하면서 나이, 경력, 전공도 문제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도전할 기회가 열려 있다는 프리랜서란 직업이 때론 억대도, 무일푼도 벌 수 있는 직업이라니 쉽게 도전할 수 있는 9가지 프리랜서 직업과 저자가 제시하는 그 성공 비법이란 과연 무엇인지 안내하고 있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최대 장점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억대 연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 저자는 "부러우면 지는거다"라고 말하며 지금 당장 이런 일을 '시작'해 볼 것을 권한다. 프리랜서를 생각하고 있을 후배들을 위해 최소한의 방황, 선택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참고할 만한 직업 매뉴
2004년 B중학교로 옮겨 교무부장 업무를 맡아 하면서 부장회의, 교무회의뿐만 아니라 월간기획회의, 학교운영위원회 등 회의에 파묻혀 살았다.직접 주관하는 회의 외에도 00사건에 대한 대책협의업무 등 꼭 참여할 수밖에 없는 학생, 교사와 관련된 심각하고 시급한 회의까지나날이 회의라‘회의주의(?)’에 빠지겠다는 농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또 회의와는 별도로 해마다 있는 입학식, 졸업식, 종업식, 장학지도 준비업무, 학교운영계획서 업무, 급식과 관련한 직원 선발심사, 급식업체 선정, 강당 개관식, 식당 준공식, 방송실에서의 영상 애국조례까지 역할 분담과 시나리오 작성 등의 절차를잡음없이 무난히 수행했다는데 만족한다. 업무과중으로 수업을 조금은 덜 맡을 수 없을까애써봤지만 해마다 미술과 증원은 불가능해서도리 없이 새내기 교사때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20시간 정도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상이 중학생들이니 중학생 학년별 수준과 미술교육과정에 적합한 자료를 만들고 나름대로 제작한 독창적인 작품을 보여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2년이 내 인생의 절정기였다면 2005년은 한 많은 고통의 해였다. 교육복지우선투자지역 학교로 선정돼 그 사업추진 입안 계획 세우는 일
한번은 입학식 참석차 온 옛 제자를 보고 멀리서도 단번에 D여고 제자로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교직37년 중 거의 대부분, 특히 두 군데 여고에서 줄곧 비담임이었던 나는 실장도, 미술부원도, 특정분야 유명인도 아닌 그녀가금방 기억났다. 내가 자신을 기억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옛 제자에 대해 20년을 거슬러 하루 종일 옛날 일을 더듬었다. 하루 더 지나서야 단번에 떠올랐다. 단발머리 고1때 미술실 청소당번. 여럿 중 얌전하면서 인사성 있는 밝은 표정의 소녀였었다. 작은 섬도 아닌 대도시에서 그녀의 아들에딸마저 2년 간격으로 다른 학교에서 연이어 만나게 되다니 4식구 중 남편 외 3명이 모두 제자인 특별한 사례인 것이다. 아들을 가르칠 때는 평범한 미술실기력 밖에 안 된 그에게 누구보다 신경을 썼고, 학년이 달라 딸에게는직접 수업하진 못했지만 만화 애니메이션에 특별한 재주가 있는 학생이라 수시로 불러 자극을 주고 도운 결과 전국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학교를 옮겨서도 실기대회 소식을 알려주거나 영재교육원 입학을 추천하고 상급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기까지 관심을 가지며 계속 연락을 유지한 것은 사제간 남다른 인연이 아닌가 싶다. 2003년쯤 부터 우
대구광역시에서 전국 유일의 방짜유기를 테마로 한 전문박물관을 건립하여 방짜유기와 그 제작기술을 전승 보존하며 후손들에게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는 등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2007년 5월 25일 개관한, 아직은 덜 알려진 희귀한 박물관 방짜유기박물관. 대구공항-‘갓바위’ 가는 길목인 백안삼거리에서 동화사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있다. 수려한 풍광의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박물관에 들어서면 무료관람인데도 넓은 중앙 테이블에 안내원 두 분이 단정한 차림으로 반겨준다. 안내 팜플릿도 있다. 지하1층, 지상2층(대지면적 1만 7880㎡, 건축연면적 3758㎡)의 규모에 전시실로 유기문화실, 기증실, 재현실 외에도 문화사랑방, 영상교육실, 야외공연장, 기획전시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된 유기장 이봉주翁이 평생 제작 수집하여 대구시에 무상 기증한 방짜유기 275종 1,489점 등 주요 소장품을 소중히 관리하고 있다. 유기문화실은 ▲유기 역사의 장 ▲유기 이해의 장 ▲유기와 우리 삶의 장 ▲유기와 소리의장으로 나눠 우리 생활과 밀접했던 전통과 신토불이 놋그릇의 장점, 장인정신을 보여준다. 기증실에는 방짜유기장
계절제 대학원 수업을 하며 과거 한 번도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던 도자기와 염색 공예에 대해 실습을 통해 좋은 작품까지 만들고 전시하는 귀한 경험을 얻었으며 강원도, 전라도 경기도 등 각지의 젊은 교사들과의 생활은 새로운 삶의 가치와 재충전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작품제작 수업 중에는 점심시간도 채 되기 전에찾아오셔서 어디서 뭘 먹을지 걱정하시는 지도교수님이 계셨는데한번은 그분을 찾아 학교까지 갔다가 논문지도 약속날짜 깜빡하시고 서울에 계시어 대신 다른 분께 지도받던 일, 자정을 넘기도록 이어지는 작품 완성의 몰아지경, 시간을 쪼개어 양말과 내의를 세탁해 창가에 말리던 일, 강사와 수강생이 교대로 졸던 세미나 시간, 남들이 자는 한밤중에 ‘파닥’ 치킨과 함께 회포를 풀던 일도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다. 수업시간에는변함없이끝까지 충실했지만 영어시험도 전공시험도 내겐 힘겨웠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금요일 고속도로에서 한번은 정상운행중인 우리 차량 옆을 ‘끼익!’하며 난데없이 처박은 겁 없는 처녀들이 있었다. 무면헌지 졸았는지 사고차를 살피는 순간 우리 뒤에는 대형 트럭이 삼킬 듯이 버티고 있다. 만약 가운데 압축되었더라면 뼈도 못 추릴 뻔했다. 교과서에
새천년이라고 야단법석을 떨던 2000년 나는 20년간의 고교교사 생활을 접고 집 부근 J중학교에 새 보금자리를 잡았다. 중학교는 업무도 수업도 많다지만 끝에서 끝으로 반복되는 출퇴근이 싫어 선택했었다. 남들이 승진을 위해 일찍 방향을 틀던 중학교에 늦은 안착이었다. 학교에서 권하는 대로 환경부장을 맡았고 그 해 깨끗한 화장실 우수학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푸른숲선도원’이란 교내 봉사단을 만들어 청결한 학교환경에 힘썼다. 매일 학생을 모으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고 구석구석 눈과 잔손이 가지 않은 곳의 청소는 체질에 맞지 않은 것 같았다. 새벽에 수학여행단이 10여대 관광버스로 떠난 후 등교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 혼자 온 운동장 전체를 돌며 청소한 일은 지금도 잊지 못할 일이다. 떠나기 전 인솔교사가 학생들 스스로 줍고 가도록 지시만 했더라면 바로 해결될 일이었는데…. 20년 만에 중학생을 대하니 귀엽기 짝이 없고 행동 하나하나가 재롱스럽기 그지 없었다. 복도에서 서로 엉켜 뒹구는 일은 다반사였고 고교에서는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번은 학생이 입안을 빨갛게 물들여 자랑스레 벌리고 다닌다. 다쳤나 이상해서 한 번 더 보려 해도 도망가더니 바로 그
대구은행 본점 3층에 위치한 이 금융박물관은 은행 고객은 물론 일반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약 264.5m²(80여평) 규모의 문화공간으로, 은행 설립 40주년을 맞아 2007년 10월에 개관했다.서울에는 한국은행화폐금융박물관이 있지만 지방은행 최초의 금융박물관이다. 오래 전 한국교육신문 '박물관 순례'를 통해 한국무속박물관, 대구박물관을 소개한 적이 있는 본 리포터가 직접 둘러보니 경제교육홍보관으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아직은 생소한 이곳에 대해 이번 4월 1일 개설된 박물관홈페이지와 함께 소개한다. 대구은행 금융박물관은 지역민과 함께 해온 지방은행의 역할과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소개하고 지역 학생들에게 올바른 금융가치관과 경제 지식을 전달하는 알뜰한 학습공간의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래서 어린이나 학생들이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쉽게 은행과 경제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일반인 누구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시부터 18시까지 무료 관람할 수 있고 단체관람의 경우 1회 관람인원 10~30인까지 사전 예약을 하면 전시품 설명도 해준다. 홈페이지에는 인터넷으로도 관람예약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열린 공간으로 이름
여고에서의 생활은 여학생들이 자신의 내신 성적을 걱정해 미술이나 음악 시간에도 꼼꼼히 준비하고 시간 중에 열심히 노력하므로 지도교사의 신경을 크게 거슬리게 하지 않는 점이 좋았는데, 1996년 다시 실업계고교에 발령받아 내 교직생활에서 가장 험난한 4년을 보내게 된다. 첫해 신학기 시작 전부터 조짐이 왔다. 야간부 수업까지 맡아야 하는데 그 시간이 2시간, 그 외 산업계특별학급 1시간 총 시수 19시간이란 것. 이미 단단한 각오가 돼 있고 다른 방도가 없기에 그렇게 맡겠다고 약속했는데이틀 정도지나 2부 교무부장이 불러 가보니 2시간 잘못 계산한 점 양해를 구한다며 총 21시간이라고 통보했다.착각할 게 있지 머리끝까지 치솟는 원망을 억누르고 매주 2시간 늘어나는 수업은 맡을 수 없다고 버틴 결과, 합반 강행 총 19시간으로 조정했지만 퇴근시간에 남아 가르치거나 한 교실에 남학생 100여명을 앉혀놓고 입시강의도 아닌 실기수업 합반이라니. 수업이 끝날 무렵 오는 학생, 붓 한 자루 없이 오는 학생, 허점 보이면 대항하는 학생, 쉬는 시간 잠시 눈 돌리면 폭행사고 내는 학생들을 일일이 따지고 갋으며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후배교사가 겸무로 온 덕분에
일반계 고교에서 8년이지나 C상고(현 일반계고교 전환)로 발령이 났다. 과목별 인원 조정 착오로 미술교사 2명이 됐다.내게 교생실습지도를받은 적 있는 젊은이가 배정돼 와서 자신은 수업시수가 많아도 미술과목만 맡겠다기에나머지 미술 4시간 한문 10시간을 가르치는 행운을 딱 1년 누렸다.나의 전공인 미술은 학생의 개성적 창의적 발상과 수행학습이 절대적이지만 한문은 읽고 쓰고 뜻을 밝혀 문장에 적용하는 과목 아닌가. 오래 전에 국어 영어를 가르친 경험도 있고 해서 교과서 중심의 전통적 교수 학습전개 방법의 수업은 쉬웠다. 교정이 워낙 넓고 야구장까지 갖춘 학교라 처음으로 바깥에서 풍경화 실기수업을 감행했다.이곳저곳 맘에 드는 구도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는 수업이라 교실에서처럼 학생들을 관리하기가 더 어려웠고 미술실수업은 청소하기가 힘들었다. 1988년 마흔 살에 이룬방송통신대학 합격은 또 한 번의 인생 새 출발이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학습관에 가다가 한 번은 고등학교 제자를 만났다. 대학 4년 졸업 후 법학과 3년에 편입했단다. 전공은 달라도 나보다 선배 학년이었다. 늘 동생 같고 조카 같은 동기생들과 스터디클럽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공유했고, 녹음기가 탑재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