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롯데월드다” 주간교육활동계획표에 안내된 현장학습 장소를 보고 일제히 터져나온 아이들의 함성이다. 늘상 가던 박물관이나 역사유적지 같은 교육적인 장소가 아니고 자기네들이 입버릇처럼 외쳐오던 곳이니 그 아니 기쁠 것인가. 하지만 그 환호도 잠시 여기저기서 볼멘음이 쏟아져 나왔다. “근데 하교시간이 왜 4시예요?” “5시 아니 5시 반에 오면 안돼요?” “학원 가기 싫단 말예요. 아 제발요?” “선생님 사랑해요, 이번 한번만 늦게 가요.” 4시에 돌아온다는게 불만인 아이들은 사랑한다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예를 들어 짝을 바꿀 때라던지, 아님 시험기일을 미뤘을 때라던지, 고럴 때만 꼭 따라붙는 사랑한다는 말... 다 빈말임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은 것은... 어리광을 부리는 제자들이 있다는 그 존재자체만으로도 행복임에랴... 현장학습시엔 어떤 상황이든 예고된 하교 시간은 철저히 지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은 떼를 쓴다. 차가 밀려 어쩔 수 없이 늦게 돌아오는 상황이 되면 박수를 치고 야단도 아닌 기현상이 일어난다. “선생님, 더 놀다 가면 안돼요?” “월드컵공원에 가서 공을 더 차다 가면 안돼요?” 이렇게 놀고 싶어 하는데,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익살스러운 호박의 모습이 떠오르는 10월의 마지막 날은 '할로윈데이'. 해마다 10월 31일 밤에 축제를 여는 연례행사로 서양의 어린이들이 갖가지 상징물과 가면 그리고 옷 등으로 변신해 집집마다 다니는 축제로 유명하다. === 서양의 할로윈데이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 이용의 잊혀진 계절 === 10월 31일하면 생각나는 것 청소년 :『서양의 할로윈데이』... 기쁨, 현실, 즐거움, 축제 중장년 :『이용의 잊혀진 계절』... 슬픔, 추억, 외로움, 낭만 똑같은 날인데도 세대에 따라 떠올려지는 이미지는 이렇게 다르다. 어쩜 이렇게 달라도 한참 다른지... 10월의 마지막날이라는 주인공을 한가운데에 두고 서로 반대편에 서서 한쪽은 울고 한쪽은 웃고 하는 그런 상황이다. 나이가 들면 서러움이 많아진다고 하더니 그래서 할로윈데이가 아닌 잊혀진 계절부터 먼저 떠오르는 것인가? 10월 31일을 맞는 아침, 매달 맞이하는 마지막날이
"학교에 근무하신다면서요? 그 학교에 어디 참한 여교사 없어요?” 문학 단체의 모임이든 다른 레벨의 모임이든 통성명을 하고 나면 교사인 내게 물어오는 말이다. 혼기를 놓친 자기 아들이나 이웃의 노총각을 짝지워주고 싶은 열망에 초면임에도 용감한 50대의 아줌마들은 막무가내로 부탁해온다. 그럴 수 없이 착한 애인데 왜 아직까지 애인 하나 없는지 모르겠다며 중이 제 머리 못깍으니 자기라도 나서서 똥차를 빨리 치워야 한다고 설레발을 친다. 이런 부탁을 해오는 부모나 중매쟁이들은 백이면 백 다 여자가 맞벌이이기를 원한다. 맞벌이라도 아주 안정된 직장을 가진 여교사라면 금상첨화이겠다는 얘기를 한다. 부모일 경우는 자기가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뼈빠지게 혼자 벌어서 식구를 먹여살리는 수고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차있다. 여교사가 신부감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배울만큼 배웠고, 교육공무원 신분이라서 정년퇴임 때까지 해먹을 수 있고, 남자가 아닌 여자로서는 꽤 괜찮은 보수를 받고 있고, 출퇴근 시간 그리 빡빡하지 않아서 직장생활하면서 살림까지 할 수 있어 좋고, 게다가 여름과 겨울방학이 있어 애키우는데 숨통이 트이니 여교사만큼 아
“음악 선생님은 여자라서요, 여자만 예뻐하구 남자들은 미워해요.” “체육 선생님은 남자라서요, 남자만 좋아하구 여자들은 싫어해요” 음악시간이 되면 노래를 부르기 싫어하는 남학생들의 입이 한 대빨은 튀어나오고, 체육시간이 되면 움직이기 싫어하는 여학생들의 입이 참새부리처럼 뾰족 튀어나온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노래를 부르게 해야 하는 음악선생님은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남학생에게 잔소리를 해야 하고, 활동적으로 움직이게 해야 하는 체육선생님은 엉덩이가 무거운 여학생에게 잔소리를 해야 하는 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그런 상황이 같이 가르침을 업으로 삼는 담임교사인 나는 지극히 이해되고도 남는 데 아이들은 그것을 차별로 받아들인다. 편애니 뭐니 해가면서 볼멘소리를 해대는 아이들을 보면 웃음부터 나온다. 어쩜 그렇게 시대가 바뀌어도 원초적인 질투심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지... “엄마는 막내동생만 좋아해.” “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아이만 예뻐해.” “동아리 선배는 여시 같은 후배만 잘해줘!” “상사는 앞에서 알랑대는 부하직원 말만 잘들어줘.” 상황판단 못하는 어린아이나 그럴 나이가 된 어른이나 대상만 달라졌을뿐 원초급의 시샘은 여전하다. 생각의 키가 넓어진 어른조차도 그
잠이 잠을 부르고 그 잠은 또 잠을 부르고... 잠의 유혹에서 좀체 벗어나기 힘든 토요휴업일 아침, 여느 때보다 느슨한 휴일의 단잠을 깨운 것은 배고픔이었다. 뱃속에서는 꼬로록 꼬로록 밥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런데도 제일 먼저 손이 간 것은 커피였다. 게슴츠레한 눈꺼풀을 밀어올려가며 찻물부터 끓였지만 아쉽게도 커피는 바닥이 나 있었다. 다른 먹거리라면야 꿈쩍도 하기 싫은 핑계를 대어 대체식품으로 때우겠지만, 인이 박힐대로 박혀버린 애호식품이기에 눈꼽을 매달고 가까운 가게로 달려갔다. 800원짜리의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홀짝홀짝 마시면서 돌아오는 그 기분이란... 경기도 땅의 신선한 공기와 어우러져 커피맛은 더할 나위 없이 상큼했다. 커피 한 번 홀짝거리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한번 홀짝거리고 싱그러운 나뭇잎 한번 쳐다보고... 소음공해, 매연공해로 범벅이 된 서울에서는 맛보기 힘든 모닝커피로 인해 기분이 업그레이드 되었고, 오늘 하루 즐거운 일이 계속될 것 같다는 예감으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흥얼흥얼 안부르던 노래까지 부르며 집에 도착해 보니 그제서야 날 반기는 것이 빈손이었다. 커피에 취해 풍광에 취해 왼손에 들고 오던 거스름돈을 잃어버린 것이다.
“언니야, 내가 좋은 동영상 하나 메일로 보냈다. 대따 웃기니까 빨리 열어 봐라.” 여동생의 호들갑스런 전화다. 곰살맞기 이를 데 없는 여동생이 먼저 이렇게 수선을 떨 때는 진짜 재미있는 건이다. 그것이 엄마를 주인공으로 했을 때는 더욱 더. 교복입고 학교 다닐 때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게 부끄러워서 먼 산길로 우회해 다녔다는 울엄마. 동네사람들에게 인상 좋고 사람 좋은 복실네로 통하는 울엄마, 평생 큰소리로 싸움 한번 해본적이 없는 착한 울엄마,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이라고 할만큼 다소곳하고 선 고운 울엄마, 20년을 같이 살아온 우리의 머릿속에 박힌 울엄마의 이미지이다. 그러했기에 여행가면 한인기 한다는 말을 우리는 절대 수긍할 수 없었다. “내가 좀 인기가 있긴 하지. 여행갈 때 내가 빠지면 재미없다고 자꾸 데려갈라캐서 골아프다 안카나.” “에이, 왕비병.” 한번씩 툭툭 던지던 엄마의 말이 우리는 정말 농담인줄 알았다. 그런데 단체 관광 가서 찍어온 비디오를 보고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비디오 속의 엄마는 평소에 각인되어 있던 울엄마가 아니었다. 관광버스 안에서, 여관방 안에서 판을 이끌어가며 흥을 돋우는 사람은 분명히 울엄마였다. 그 날 여
학력위조 파문으로 방송과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유명인들의 위조명세서를 정리해놓고 보니 가관도 아니다. 허위학력과 실제학력 사이의 갭이 커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게릴라성 열대야로 유난히도 더웠던 한여름 8월, 학생들의 여름방학 기간이기도 했던 한 달은 전동국대 교수인 신정아가 몰고 온 학력위조 파문으로 온 나라가 위조화염에라도 휩싸인듯 훅훅 달아올랐다. 여기서도 학력, 저기서도 학력, 눈뜨고 나면 새로운 학력 위조건이 튀어나와 ‘설마 저 사람도’를 외쳐야만 했다. 지성인의 집결지라고 자부하는 학계부터 직격탄을 맞았고 줄줄이 문화예술계 종교계의 거목부터 끌려 들어왔다. 이런 추세에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고행성사하듯 어쩔 수 없이 학력을 위조했다고 커밍아웃하는 유명인들도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만큼은 아닐 거라고 믿어왔고 또 믿고 싶었던 대다수의 나같은 부류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로마의 황제 시이저가 암살될 때 외쳤다는 ‘부르투스 너도냐?’를 목놓아 부르짖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정아라는 인물이야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어느 날 느닷없이 툭 튀어나와 주목받은 인물이고, 늘 텔레비젼에 얼굴을 비추며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던 방송스타가 그랬을 때는 친한
“야야야, 얼굴은 잘생겼는데 성질 더러운 여자랑 얼굴은 못생겼는데 성격이 좋은 여자가 있다면 말야, 누구랑 결혼할래?” 딱딱한 공부시간의 정적음을 깨는 헌영이의 생뚱맞은 제안에 교실 안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나중에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헌영이는 늘 공부 이외의 딴 얘기로 분위기를 업그레이드 놓을 때가 많다. 끼가 넘치고 두뇌 회전이 빠른 헌영이는 사교성이 좋아 늘 많은 친구들을 매달고 다니는 남학생이다. 인정도 많은데다 의리도 있어 겉으로 드러내어 표현하진 않지만 속으로 무척 아끼는 녀석이다. 진도 나가기가 바쁠 평상시 같으면야 쓸데없는 소리말라며 지청구를 먹였을텐데, 저절로 긴장이 풀어져 노곤노곤해지는 6교시의 느슨함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전체 논의 주제로 삼아보자고 했다. 그러자 남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의의를 제기했다. “야, 세 번째는 없냐? 얼굴은 잘생기고 성격까지 좋은 여자. 둘의 좋은 점만 짬뽕시키면 딱인데 말야.” “그럼 모두 3번을 하게. 그러면 질문이 안 되지? 세상 일이란 게 그렇게 입맛대로 되는 게 아니거든. 둘 중의 하나만 골라야 돼.” 헌영이가 그 털털한 웃음을 매달고 꼭 둘 중의 하나여만 한다고 하니 남학생
교사처럼 편한 직장이 어디 있냐? 여름에도 겨울에도 방학이 있어 얼마나 좋냐? 놀아도 월급 나오고 정말 좋겠다. 내가 교사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이런 소리들을 한다. 달력의 검정숫자가 찍힌 날이면 꼬박꼬박 일터로 나가야하는, 휴가래야 고작 피서철 일주일 정도가 고작인 직장인들에게는 학생들과 함께 방학을 즐기는 교사의 여유가 부러우리라. 그와 반대로 교사들은 방학은 없지만 연봉이 빵빵한 타직종의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특히 남교사들은 간만에 동창들이라도 만나고 오면 열에 아홉은 기가 팍 죽어온다. 누구는 뭘 하는데 연봉이 얼마고 빌딩을 올렸고 어쩌고 저쩌고 한숨을 푹푹 내쉰다. 공부도 못하던 코찔찔이가 사업수완은 있어서 성공했다며 공부 잘한 자기꼬라지가 요거라며 한탄을 한다. 돈을 도외시하고는 살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명분만 가지고는 살 수 없음에야. 어쨌든 남의 떡이 더 커보이고 남이 이룬 것이 쉬워 보이지만 세상에 만만한 일이 어디메 있을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던, 사람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든, 이 세상에 쉬운 일 거저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연봉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어쨌든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여름과 겨울방학은 축복의 선물임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거침없이 하이킥’이 정말 거침없다. ‘야동순재’인 70대 할아버지부터 ‘랜덤준이’인 1살 아기까지 전세대를 아우르는 시트콤 하나가 안방극장에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젊은층의 입맛에 맞게 편성하는 현방송 추세에 역행하는 쌩뚱맞음에도 전출연진이 인기급상승이다. 시청률을 좌지우지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춘 감각적인 트렌디드라마도 아니고 1대부터 70대까지 마구 섞인 짬뽕이나 다름없는 시츄에이션 시트콤이 왜 인기일까? 우선 가족의 이야기이기에 전층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고, 있을법한 이야기를 좀 더 과장되게 웃음 형식으로 전달하는 까닭이다. 이혼한 아들의 혈육을 맡아 키워야하는 할머니, 고등학교라는 현장에서 자리매김의 입지가 현저히 낮은 여교사의 수난사, 권위주의의 표상이지만 종이호랑이 신세가 된 할아버지까지 모두 나의 이야기고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지금은 사라진 대가족이라는 코드의 향수와 그 세대의 인물을 능청스럽게 연기해내는 조연들의 감칠맛이 한몫 더해 인기는 가히 점입가경이다. 특히 할아버지 역할을 맡은 이순재는 1935년생으로 실제나이가 73살이라서 그 나이대의 연기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한마디로 진국이 줄줄 흐른다. 만약 인기절정의 젊은 배우가 주름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 5월 5일은 어린이날 5월 8일은 어버이날 5월 15일은 스승의 날 5월 21일은 성년의 날 이 많고도 많은 날 중에 유독 환영받지 못하는 날이 있다. 세종대왕 탄신일이기도 한 5월 15일 스승의 날. 근로자, 어린이, 어버이, 성년들은 너무도 당당하게 그네들의 기념일을 맘껏 누리는데 반해 선생님은 자축은커녕 돌팔매질을 당해 얻어맞아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되는 세태다. 축하받지도 못하는 스승의 날을 왜 만들어가지고 이렇게 도마 위에서 신나게 회쳐지는 신세가 되었는지 서글플 뿐이다. 아이들이 생일날에 잘 부르는 ‘왜 태어났니’를 크게 소리쳐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파업을 밥먹듯이 하는 근로자들도 5월 1일만큼은 한마음이 되어 기념일을 자축하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동분서주하는 학부모들도 5월 8일만큼은 자식들이 꽃아 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보무도 당당하게 다니는데, 왜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혼을 다 뺀 선생님들은 5월 15일만 되면 학교재량휴업일을 하니마니 행사를 치르니마니하는 고민을 하며 우울해해야 하는지. 왜 왜 왜 하필이면 가뜩이나 행사가 많은 5월에 끼어가지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뒤에 붙어가지고 스승의 날이 젯밥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덩치가 나보다 한 뼘은 더 커서 13살의 6학년이 형식상 초등학생이지 이제는 중학생으로 편제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이날 타령을 하며 선물 달라고 졸라댈 때는 영락없는 어린 아이다. 이상하게도 마지막이라는 말은 마음을 짠하게 한다. 저학년 같으면야 학부모들이 바리바리 챙겨주는 형행색색의 선물이 넘쳐서 탈인데, 고학년은 다 컸다고 선물세례에서 멀어진 탓에 선생님인 내게까지 요청이 오는 것이다.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선물의 양 뿐만이 아니라 학부모님의 관심도도 마찬가지다. 갓입학했을 때는 자녀가 어떻게 학교에 잘 적응을 하고 있나 한번이라도 더 볼려고 교실 밖에서 기웃대는 일이 다반사인데 졸업할 학년이 되면 그저 잘하고 있으려니 발걸음을 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정에서 맏이는 그저 믿거니 하고 막내는 못미더워 챙겨주는 그런 모습과 진배가 없다. 내가 장녀로 자랐기에 맏이의 심정은 알고도 남는다. 동병상련 더하기 마지막이라는 말이 나의 연민을 자극해서 그 말을 들은 이후 내내 선물을 뭘로할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뱅글뱅글 돌았다. 하지만 마음뿐 퇴근 후에도 놓을 수 없는 학교의
초등학교 여교사 비율[2002년 기준] - 몽골93% 우크라이나99% 브라질90% 필리핀89% 러시아97% 미국88% - 이스라엘87% 이탈리아95% 아르헨티나86% 쿠웨이트83% 오스트리아90% - 칠레77% 홍콩78% 독일82% 캐나다68% 일본65% 프랑스81% 멕시코66% - 중국53% 스웨덴80% ※ 한국의 초등학교 여교사 비율은 2002년 72%에서 2003년 73%로 올라갔지만 외국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초ㆍ중학교 교원 신규 임용시 남자 교사의 선발 비율을 30% 이내에서 교육감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공무원시험처럼 합격자 중 특정 성별이 7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양성평등제'를 교원 임용고시에 도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하긴 서울시의 초등학교 여교사 비율이 2006년에는 82.3%까지 증가한데다가 남교사가 한명도 없는 학교까지 생겨났다고 하니 자구책을 내놓을만도 하다 싶다. 연령별로 보면 60세 이상은 45.4%로 성비의 균형을 겨우 유지하지만, 24세 이하는 95.6%로 아예 비교대상도 되지 않으니 앞으로의 교단여성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임은 명약관화
“로또” “귀하신 몸” “천연기념물” 복권당첨도, 인기스타도, 사라져가는 희귀동식물도 아닌 초등학교의 남교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얼마나 남교사들의 수가 귀하면 이런 은어들이 나돌까? 올해 서울시에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 여교사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공립은 83.4%나 나왔다고 한다. 10명 중에 8명씩이나 여교사이고, 겨우 2명이 남교사라는 말이다. 사립은 56.4%로 나와서 그나마 남녀의 균형을 유지하는 셈이다. 사립이 공립에 비해 남교사가 많은 이유는 야근, 야외체험학습, 캠프 등 궂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강서․양천구의 유일한 사립초등학교인 유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니 너무도 특이해서 사립의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남교사의 비율을 자랑하고 있다. 15명의 교원 중에 10명이 남교사라서 여교사의 비율은 33.3%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6년 동안 한 번도 여교사를 담임 한 번 못해보고 졸업하는 학생들도 있다. 남교사 담임 한 번 못해보고 졸업하는 공립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고 공립에서는 감히 꿈도 꾸어보지 못할 정말 꿈같은 얘기다. 그래서 가끔 교장선생님께 농담이지만 뼈있는 건의를 드리곤 한다. “우리학교를 다 남
건망증(健忘症) [명사]의학 : 경험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어느 시기 동안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또는 드문드문 기억하기도 하는 기억 장애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올라있는 의학용어 건망증! 날 궂으면 찾아오는 관절염처럼 학기초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나의 고질적인 만성 질병이다. “어, 내 USB?” “어, 내 다이어리?” “어, 내 가방?” 혼자 있을 때는 애지중지 하는 것들이건만 바쁠 때는 이상하게도 그 존재여부도 생각나지 않는 물건이다. 아이들과 부대끼는 학교일과시간에는 그저 잘 있으려니 했다가 퇴근할 때쯤이면 눈에 불을 키고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애장품이다. USB는 내 목에, 다이어리는 책상 위에, 가방은 의자 품에 얌전하게 있으려니 생각한 것들이 없을 때는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그제서야 소중함이 와락 밀려와서 눈물나게 찾아다니곤 한다. USB는 이 셋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는 애물이다. 글을 취미로 삼는 나의 창작물이 다 들어있는 탓이다. 짬날 때 끄적거린 온갖 종류의 잡문이 손가락만한 이동디스켓에 저장되어 있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고 간이 덜컥 내려앉는다. 다이어리는 일을 놓치지 않도록 메모를 해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