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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사자성어로 교육읽기> 공자천주(孔子穿珠)

교직생활 22년째 되던 해에야 내가 선생님이란 걸 깨달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은 때였다. 이천의 작은 시골학교에서 교무일을 보다 보니 월요일 아침은 매우 바쁜 시간이었다. 그래서 토요일이면 으레 단골로 내어주는 숙제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일요일에 있었던 일들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일을 그림으로 그려 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각자 그려온 그림을 친구들 앞에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 수가 적어서 한 사람씩 나와 설명을 하도록 했다. 선생님은 가만히 앉아 있지만 점수를 매기고 있다는 말과 함께 자세히 설명을 하는 사람, 즉 말을 얼마나 길게 하느냐가 점수를 좌우한다고 규칙을 정했다. 그것은 바쁜 월요일 업무를 처리할 한 시간을 확보하는 방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아이씩 나와서 그림을 보이며 설명하고 손뼉 치는 소리가 들리면 ‘끝났구나’ 하던 그때였다. 누군가에게 아이들이 손뼉은커녕 오히려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던 업무를 멈추고 누군가하고 보았더니 반장이 아닌가. 여학생이었는데 공부도 제일 잘 했지만 매사 야무지고 특히 그림은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기에 의아해서 말했다.

“기원(가명)아! 선생님이 잘 듣지 못했거든, 한 번 더 설명해 줄래?”

반장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내 쪽으로 보이면서 설명했는데 내용인 즉, 어제 자기 집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소꿉놀이를 했으며, 누구는 엄마가 되어 밥을 짓고 누구는 된장국을 끓이고 또 누구는 반찬을 만들었다는 등 아주 장황하게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보고 있는 그림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기에 다시 물었다.

“아니 기원아! 어제 너희 집에서 밥 짓는 소꿉놀이를 했다며?”
“예, 그랬어요.”
“그런데 웬 기와집이야?”

그랬다. 도화지 속에는 오직 커다란 기와집 한 채만이 덩그마니 그려져 있었으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 다른 그림을 가져왔구나. 그렇지?”
“아녜요 이 그림이 맞아요.”
“소꿉놀이는 어디에서 한 건데? 옳아, 너희 집 방안에서 놀았구나.”

나는 영리한 아이라 방안에서 노는 것을 그릴 수가 없기에 아마 집만 그렸을 거라 확신하던 그때 반장은 그림을 뒤집어 보여주면서, “여기서요” 하는 게 아닌가.

“아니 거기는 아무것도 안 그렸지 않아.”
“선생님 우리 집 뒤꼍에서 놀았어요. 집 뒤인데 안 보이잖아요.”

수업이 모두 끝나고 아이들의 그림을 정리하다가 반장의 그림을 보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 아이가 했던 설명을 상기해 보니, 글쎄 그때서야 집 뒤에서 열심히 밥을 짓는 아이들의 모습과 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된장국이 끓으면서 나는 구수한 냄새까지 나는 게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솔직히 집 뒤에서 놀았기에 안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을 적만 해도 참 바보 같은 애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 입학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일학년 어린애의 속마음 하나도 제대로 읽지 못한 내가 지금까지 아주 유능한 교사라고 자부하고 지낸 지난 시절이 얼마나 부끄러워 자괴감마저 들기도 했다.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선생님은 뭐든지 다 안다’는 잘못된 생각을 난 교직생활 42년의 중간쯤에야 알게 되었으니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지난 교직생활에 대한 반성이 크다. 물론 그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 아이들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도 숨어있는 의미를 알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고 그 후로 나의 삶에서 인간관계의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공자천주’.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말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가르쳐 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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