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참교육>이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다. 덩달아 학교폭력, 교권 추락과 교실 붕괴, 악성민원으로 학교가 흔들리는 현상 등 교사와 학교의 현실이 사회적 조명을 받으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11년간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며 느낀 점은 점점 우리의 학교는 어려워지고 교실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답답한 마음에 해결책을 고민했고,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이기에 법을 바꾸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길로 대학원 전공으로 법학을 선택하여 일과 연구를 병행하였다.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문제의 시작은 어디일까? 결국 「헌법」 제31조를 비롯해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교원지위법」 등 관련 법률일 것이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로 교권 추락과 교실 붕괴를 막기 위해 교권 5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계속해서 법률 개정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법들이 교육과정부터 교실 현장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실과 학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다지 실효성 있게 개정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해외 교육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은 어떠할까? 미국·핀란드·일본·영국·독일·싱가포르 등 필자가 연구한 국가들 대부분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생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교권은 추락하면서 수업이 파행을 겪고 있으며, 그 여파는 다시 학생들의 비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드라마 <참교육>처럼 시원하게 해결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법제 개선은 정교해야 하며, 학생 인권과의 균형도 깊이 고려되어야 한다.
● 교사의 수업권
우선 학교의 가장 기본인 수업과정을 살펴보자. 국가 단위의 교육과정이 편성되면 교사는 이를 재구성한다. 이어 교육과정에 맞는 교과서가 출판되면 교사가 이를 선정하고,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칠지 교육내용과 방법을 결정해 수업을 진행한다. 이후 관찰이나 지필평가를 통해 결과를 평가하고, 그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
이러한 수업의 중심은 온전히 교사여야 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 대한 교사의 임무와 권한이 구체적으로 법에 규정되어야 하며, 교사의 전문적·교육적 권한은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
● 교사의 생활지도권
다섯 살인 필자의 아들은 매일같이 혼난다. 동생과 싸워서 혼나고, 심한 장난을 쳐서 혼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자리에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혼나고, 음식으로 장난치면 안 된다고 혼난다. 집에서 포도나무 두 그루를 기르고 있는데, 열매가 맺힐 무렵 잔가지를 쳐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포도알은 익지 못하고 가지만 무성한 나무가 되어버린다.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행동은 바로잡고, 때로는 혼나야 밖에서 사랑받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 모든 아이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혼내는 행위가 ‘정서적 아동학대’로 신고될 수 있다면 어느 교사가 자신의 신분을 걸고 지도할 수 있을까? 교사의 생활지도에 대해서는 ‘정서적 아동학대’ 적용이 원천 배제되어야 한다. 현행법상 정서적 아동학대는 구성요건이 모호한 데다 무조건 검찰로 송치되도록 구조화되어 있어 폐해가 크다. 최근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판례가 잇따르고 있으나, 그 어떤 교사도 몇 년씩 걸리는 소송의 당사자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혹자는 “실제 아동을 학대하는 교사는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형법」상 모욕죄·명예훼손죄·학대죄 등으로 얼마든지 엄벌할 수 있다.
● 교사의 학생징계권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행법상 생활지도를 할 수 있다. 즉 혼낼 수 있다. 그러나 혼나도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순간 일부 교사들이 감정이 격해져 체벌을 하거나 폭언하여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따라서 수업을 방해하고 지도를 거부하는 학생을 통제할 구체적 권한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교사 직권으로 방과 후에 남겨 지도하거나,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수업 방해 즉시 다음 날까지 출석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물론 모든 조치는 학부모에게 즉시 통보되어야 하며, 오직 교육적 목적으로만 행사되어야 한다.
● 교육적 결정에 대한 민원 제한
최근 국회에서는 일부 초등학교가 점심시간에 운동장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어 논란이 되었다. 특정 학부모가 “자녀의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이유로 민원을 넣자, 학교가 점심시간 운동장 개방을 중단해 버린 것이다. 국무총리마저 “잘못된 현상”이라 지적할 만큼, 악성민원으로 학교의 교육적 결정이 무력화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학교는 학생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올바른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수많은 교육적 고민 끝에 내린 학교의 결정이 악성민원 한 통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 민원은 서면이나 전용 창구를 거치도록 창구를 단일화하고, 이미 합의된 교육과정이나 학사일정은 원칙적으로 민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주민이 소방서에 “화재 위험에 신경 써 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지만, “불을 어떤 방식으로 끌지” 지시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답은 반드시 있다.
일련의 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교실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혹은 특별법을 만드는 형태로도 해결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필자는 ‘참교육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전자청원에 등록하였지만, 법 제정까지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도대체 교사들이 얼마나 더 죽어 나가야 법 제·개정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과학교사인 필자는 인생 영화로 <인터스텔라>를 꼽는다.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있는데 우리의 상황과 같아서 응원의 메시지로 인용하고자 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