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참 솔직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속담을 인정하는 순간, 마치 내가 질투심 많고 속 좁은 사람인 것만 같아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도 어렵다. 참 묘하고도 짓궂은 속담이다. 사실 우리의 복통 유발자는 꼭 ‘사촌’일 필요도 없다.
나와 비슷한 연차의 동료 교사가 먼저 승진했다는 소식, 친구 자녀의 명문대 합격 소식,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대학 동기가 강남권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는 소식까지. 심지어 SNS에서 나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던 지인이 최고급 해외 휴양지 사진을 올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정말 잘됐다, 축하해!”라는 말을 건네지만,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왜 저 사람에게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지?’ 등 축하와 부러움, 시기와 씁쓸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곤 한다.
이상한 일이다. 내 삶은 어제와 달라진 것이 없다. 어제와 같은 집에서 살고, 지난달과 같은 월급을 받으며, 늘 하던 대로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왜 주변 사람의 좋은 소식에 내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릴까? 내가 옹졸해서, 인격이 덜 성숙해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감정, 즉 ‘시기’나 ‘질투’를 매우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로 설명한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매우 오래된 생존 본능이라는 것이다.
신경과학과 진화심리학이 증명한 복통의 실체
우리 조상들이 말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표현이 단순한 비유가 아님을 증명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일본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의 다카하시 히데히코 연구팀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시기·질투심을 느낄 때의 뇌를 관찰했다.
그 결과 자신과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큰 성공을 거두는 장면을 볼 때, 날카로운 송곳에 찔리거나 뜨거운 불에 데었을 때 활성화되는 ‘전방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강력하게 반응했다. 누군가의 성공이 실제로 내 몸을 때린 것은 아니지만, 뇌는 그것을 ‘통증’과 비슷한 경험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뇌는 이렇게 반응할까? 그 답은 진화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수만 년 전 조상들에게 세상은 완벽한 ‘제로섬(Zero-Sum) 게임’의 공간이었다. 사냥한 고기, 안전한 동굴, 배우자를 만날 기회까지 모든 자원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누군가 더 많이 가지면 내 생존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따라서 주변의 성공을 예민하게 살피고 내 서열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능력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뒤처졌다는 신호를 빠르게 알아챈 ‘예민한 원시인’들은 더 치열하게 노력했고, 그 결과 살아남을 가능성도 높았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동굴에서 사냥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여전히 원시시대의 알고리즘을 그대로 사용한다. 사냥 실력 대신 성적을 비교하고, 동굴 대신 아파트를 비교하며, 부족의 서열 대신 승진과 연봉을 비교한다. 자원의 형태와 이름만 바뀌었을 뿐, 타인의 성취를 나의 결핍으로 해석하는 뇌의 오래된 알고리즘은 그대로인 것이다.
왜 하필 '사촌'일까? _ 페스팅거의 사회 비교 이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사촌’일까? 사촌은 부모 세대도 비슷하고, 성장 환경도 어느 정도 닮았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출발선’에 있었다고 믿는 존재다. 명절이면 자연스럽게 만나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가까우면서도 경쟁의식이 생기기 쉬운 대상이다.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사회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은 우리가 왜 이토록 자신과 비슷한 집단에 집착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한다. 페스팅거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신의 가치와 삶의 수준을 끊임없이 평가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 나이에 걸맞게 잘살고 있는가?’, ‘내 삶은 성공적인가?’와 같은 추상적인 질문에는 채점 기준표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타인을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아무나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직업·배경이 비슷한 사람일수록 비교의 강도는 커진다. 반대로 너무 뛰어난 사람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재벌의 성공은 뉴스로 소비하지만, 친구의 승진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유명 연예인의 대저택은 부러울 뿐이지만, 비슷한 형편이던 동료의 새 아파트는 마음을 흔든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성공에는 감탄하면서도, 옆집 아이가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는 소식에는 우리 아이를 떠올리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결국 우리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이다. 이것이 속담 주인공이 ‘재벌’이 아니라 ‘사촌’인 이유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감정을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이라고 부른다. 내가 실제로 잃은 것은 없지만, 비슷한 사람이 앞서가는 순간 상대적으로 뒤처졌다고 느끼는 심리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이런 심리를 정확하게 담아낸 표현인 셈이다.
21세기형 '사촌의 땅', SNS와 하이라이트 릴의 대유행
과거에는 명절에 사촌을 만나거나 동창회에서 친구의 근황을 듣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우리는 사촌을 만나기 위해 명절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아침에 눈을 떠 스마트폰을 켜면 전 세계에 흩어진 수천 명의 ‘디지털 사촌들’이 자신이 새로 산 땅을 실시간으로 자랑한다. 누군가는 해외여행 중이고, 누군가는 새 차를 샀고, 누군가는 승진했고, 누군가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비교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다.
문제는 SNS가 보여 주는 세상이 현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SNS가 위험한 이유는 삶의 ‘하이라이트 릴(Highlight Reel)’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장면만 편집해 놓은 예고편을 ‘하이라이트 릴’이라고 부르듯, 사람들은 SNS에 자신의 일상 중 가장 빛나고, 성공적이며, 행복한 찰나의 순간만을 선택해 업로드한다. 반면 이를 바라보는 나의 현실은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방구석에 누워 그저 그런 날들을 보내는 날 것 그대로의 ‘비하인드 씬(Behind the Scenes)’이다.
치명적 오류는 우리의 인지 체계가 타인의 정교하게 편집된 예고편과 나의 초라한 본편을 비교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삶은 매일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데, 나의 삶은 한없이 지루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SNS는 행복을 나누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 이른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은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디지털 복통’의 또 다른 병명일 뿐이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행복을 가장 쉽고 빈번하게 들여다보게 되면서, 역사상 가장 상대적 박탈감을 쉽게 느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포모 증후군’, 만들어진 행복감이 주는 불행
과거의 아이들은 교실에서 수십 명의 친구들과 부대끼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다. 비록 공부는 조금 못하더라도 축구를 잘하면 영웅이 되었고, 외모는 평범해도 유머 감각이 뛰어난 아이는 나름의 확고한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다차원적인 가치가 교실 안에서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SNS 속 수많은 또래와 자신을 비교한다. SNS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또래 인플루언서들, 매일 유행하는 수십만 원짜리 브랜드의 옷을 입고 럭셔리한 취미를 즐기는 전국의 청소년들이 실시간 비교 대상으로 밀려든다. ‘디지털 사촌’이 사는 SNS에서 요즘 아이들이 겪는 가장 큰 비극은 행복의 기준이 ‘내면의 만족’이 아닌 내가 올린 게시물의 ‘좋아요’ 개수, 나를 따르는 ‘팔로워’ 수, 단톡방에서의 반응 속도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또래 집단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SNS에 전시할 ‘만들어진 행복감’을 생산하는 데 혈안이 된다. 유행하는 카페에 가고, 비싼 인생네컷 사진을 찍어 올리며 완벽하게 연출된 페르소나를 연기하지만, 화면 뒤로 돌아섰을 때 느껴지는 가짜 행복의 유통기한은 지독할 정도로 짧다.
가공된 행복의 전시회가 화려해질수록, 아이들의 진짜 내면은 점점 더 지쳐 간다. 나만 빼고 모두가 완벽하게 행복해 보인다는 이 왜곡된 고독감으로 아이들은 우울증·무기력증이나 거식증 혹은 타인의 성취를 무차별적으로 깎아내리는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과 악성 댓글 문화라는 심각한 정서적 문제로 힘겨워하고 있다.
비교는 멈출 수 없다. 그렇다면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면 비교는 하지 않는 것이 답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비교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수십만 년 동안 품어 온 오래된 본능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성공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자신을 너무 쉽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다만 본능이 내 삶을 통째로 뒤흔들게 방치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비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비교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심리학에서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상향 비교(Upward Comparison)라고 한다. 상향 비교는 적당할 때는 동기부여가 된다. “나도 저렇게 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교의 대상이 너무 멀거나 반복될 경우, 그것은 동기보다 좌절을 만든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저렇게 될 수 없어”라는 무력감으로 이어지기 쉽다. 반대로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과 비교하는 하향 비교(Downward Comparison)는 잠시 위안을 줄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또 다른 비교 대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은 비교를 멈출 때가 아니라, 비교의 기준을 바꿀 때 찾아온다.
학생들에게 “친구와 비교하지 마”, “SNS 좀 그만 봐”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어른인 우리 역시 매일 비교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비교의 대상을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로 돌려놓는 것이다. 기준점을 바꾸는 순간, 비교는 박탈감이 아닌 성장의 기록이 된다. 남보다 앞섰는지를 따지는 대신, ‘나는 어제보다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SNS는 앞으로도 수많은 ‘디지털 사촌들’을 우리 앞에 데려다 놓을 것이다. 누군가는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직장을 얻고, 더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올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들의 삶 전체가 아니라 가장 빛나는 몇 장면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SNS는 현실을 보여 주는 창이라기보다, 가장 좋은 순간만을 정교하게 편집해 전시하는 무대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화면 속 행복을 그대로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사촌이 땅을 샀다는 사실이 아니다. 남의 땅만 바라보다 정작 내가 가꾸어야 할 내 삶의 땅을 황무지로 방치하는 일이다. 비교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 비교가 내 삶의 행복까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는 없다. 행복은 남보다 앞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한 오늘의 나를 발견하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