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산업화 시기 중등교육 기회의 확대와 직업계 고등학교 육성, 그리고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대학 정책을 살펴보았다. 교육기회의 획기적인 확대는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발전을 뒷받침할 인적자본을 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산업화 시기 교육정책이 교육기회의 양적 확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1980년대부터는 교육체제 자체를 정비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였다. 1980년대 한국 교육의 거대한 변화는 국가적 차원의 대수술이었던 ‘7·30 교육개혁 조치(1980년)’로부터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 개혁 조치를 기점으로 교육재정과 교육행정, 유아교육과 평생교육 등 오늘날 교육국가의 기본 틀이 본격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했다.
대체로 1980년대 교육정책은 과외 전면 금지나 대학입시 개편과 같은 정책으로 기억되며, 군사정권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정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 평가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교육정책을 유화책이라는 관점만으로 이해하기에는 교육체제 전반에 걸쳐 추진된 제도개혁의 범위와 내용이 매우 폭넓었다.
교육정책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기에는 교육재정과 교육행정, 유아교육과 평생교육, 교원정책과 교육과정 등 교육체제 전반에 걸쳐 다양한 제도개혁이 추진되었다. 비록 당시에는 정치적 상황에 가려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 시기에 마련된 여러 제도는 이후 한국 교육체제의 발전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특히 교육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통해 안정적인 교육재정을 확보하고 교육자치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국가의 교육 책임을 유아교육과 평생교육으로 확대하였다. 또한 고등학교 평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과학고등학교 설립과 영재교육을 통해 형평성과 수월성의 균형을 모색하였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국가 주도의 강한 정책 추진력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교육 민주주의와 교원의 자율성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한계와 논란도 남겼다. 그럼에도 이 시기의 제도적 변화는 이후 한국 교육정책이 발전해 나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교육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통한 교육재정의 안정화, 유아교육과 평생교육의 제도화, 기초교육의 질적 개선 등 교육국가의 제도적 기반을 형성한 정책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학입학정원의 확대와 졸업정원제, 대학입시 제도 개편 등 고등교육 정책은 다음 호에서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국가의 교육책임을 생애 전반으로 넓히다 _ 유아교육과 평생교육의 제도화
1980년대는 국가의 교육 책임이 초·중등교육을 넘어 유아기부터 성인기까지 생애 전반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전까지 유아교육은 일부 계층의 선택적 교육이나 보육의 성격이 강했고, 성인을 위한 계속교육 역시 체계적인 제도 기반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산업화가 심화되고 가족 구조가 변화하면서 교육을 생애 전 과정에 걸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우리 사회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1980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약 41.6%였으나 산업화와 서비스산업의 성장에 따라 1988년에는 지속적으로 45.5%로 상승하였으며, 정부 역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적극 장려하였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자녀 양육과 교육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도 커졌다. 이러한 변화는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국가기록원).
1982년 12월 31일 「유아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유아교육은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 영역으로 제도화되었다. 정부는 공·사립 유치원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농어촌 지역에는 새마을협동유아원을 설치하는 등 교육기회를 확대하였다. 1982~1986년 동안 유아교육예산은 26억 원에서 121억 원으로 증액되었고, 1980년 약 7% 수준이던 유치원 취원율은 1986년 말 55%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크게 증가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아교육을 일부 계층의 선택이 아니라 공교육의 출발점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중요한 정책적 전환이었다.
평생교육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이루어졌다. 먼저 1980년 10월 27일 개정된 제5공화국 헌법 제29조 제5항에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을 신설하며 국가의 평생교육 진흥 의무를 최초로 명시하였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약 2년 뒤인 1982년 12월 31일 「사회교육법」(현 평생교육법의 전신)이 제정되었다.
당시에는 사회교육이 교육부만의 영역이 아니라 여러 부처가 함께 추진하던 정책이었기 때문에 법 제정 과정에서 부처 간 이견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교육을 학교 밖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법 제정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평생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지원체계가 마련되었다.
같은 해인 1982년 3월,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초급대학 과정을 탈피하고 5년제 국립 대학교로 승격되며 독립된 학사학위 수여 기관으로 개편되었다. 이를 통해 직장인과 성인학습자에게 정규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였다(교육부, 1998). 또한 산업체 재직자를 위한 개방대학이 설립되어 일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고등교육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오늘날 성인친화형 대학, 학점은행제, 평생학습도시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평생교육체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결국 1980년대는 국가의 교육 책임이 학교교육을 넘어 생애 전반으로 확대된 시기였다. 교육의 공공성을 초·중등교육에 한정하지 않고 유아교육과 평생교육까지 확장함으로써 오늘날 교육복지국가의 기본 방향을 제도적으로 마련하였다.
공교육의 질적 도약을 추진하다 _ 형평성과 수월성의 균형을 모색하다
1980년대 교육정책은 교육기회의 확대를 넘어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교육기회의 평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면서도 국가 경쟁력에 필요한 우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수월성 교육을 함께 추진하였다.
정부는 고등학교 평준화를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지역 간 교육격차를 줄이고 학생들의 균등한 교육기회를 보장하고자 하였다. 동시에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인한 학습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조정하고 학습 내용을 적정화하는 개편도 추진하였다. 정치적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이루어진 정책이었지만, 학생들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교복 자율화가 시행된 것도 당시 교육정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정태수, 1991).
한편 평준화 정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었다. 1983년 경기과학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과학영재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1도 1과학고’ 정책이 추진되었다(교육부, 1998). 이러한 정책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과학기술계와 교육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제안해 온 과학영재 육성정책이 국가정책으로 채택된 결과였다(서혜애, 2006).
정부는 고등학교 평준화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과학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우수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함으로써 평준화 정책의 한계를 보완하려 하였다. 이는 교육기회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분야에서 자체 기술을 확보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고민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러한 정책은 이후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분야에서 추격국을 넘어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인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교육국가의 기반을 다지다 _ 교육재정과 교육자치의 제도화
1980년대 교육개혁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 가운데 하나는 안정적인 교육재정과 교육자치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교육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그리고 교육자치의 제도화는 이후 한국 교육 발전을 가능하게 한 핵심 기반이었다.
1981년 「교육세법」이 제정되면서 교육 목적세가 도입되었다. 교육세는 학교시설 확충과 교육환경 개선, 교육기자재 보급, 교원 처우 개선 등 교육 분야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였다. 이어 1982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가 부활하면서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지방교육재정으로 자동 배분하는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를 통해 지역 간 재정 격차를 완화하고 학교 신설, 교육환경 개선, 교원 확보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 두 제도의 정착은 정권 교체나 경기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교육재정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이후 추진된 모든 교육개혁의 재정적 기반이 되었다.
교육행정 체제에도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와 지방자치의 확대에 따라 교육 분야에서도 교육자치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1991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을 분리하고 교육위원회와 교육감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자치 체계가 마련되었다(국가기록원). 이는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인 교육행정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성과 교육 수요를 반영하는 교육행정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교육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통해 안정적인 교육재정을 확보하고, 교육자치를 통해 지역 교육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화한 것은 오늘날 한국 공교육을 지탱하는 핵심 제도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는 교육정책을 넘어 교육을 지속 가능한 국가 시스템으로 전환시킨 시기였으며, 이후 추진된 다양한 교육개혁은 이러한 제도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였다.
교육의 핵심은 교사였다 _ 교원 전문성 강화와 교직사회의 변화
1980년대 정부는 교육기회의 확대를 넘어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원 양성체제와 처우를 개선하고 교사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였다. 교육개혁의 성패는 결국 교사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 정책 전반에 반영된 것이다.
먼저 초등교원 양성체제가 근본적으로 개편되었다. 2년제로 운영되던 교육대학은 1981년부터 단계적으로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이를 통해 교사의 전공 지식과 교육학적 전문성을 강화하고, 초등교원 양성을 일반 대학 수준의 고등교육 체계로 발전시켰다. 중등교원 양성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1984년 한국교원대학교가 설립되면서 유치원·초등·중등 교원과 교육전문직을 종합적으로 양성하는 국가 차원의 교원양성체제가 구축되었다. 교원 양성과 연구, 현직 연수를 연계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교직의 전문성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교원의 처우 개선도 함께 추진되었다. 교육재정의 안정적 확충을 바탕으로 교원의 보수와 복지 여건이 점진적으로 개선되었다.
그러나 교원의 전문성 강화와 함께 교직사회의 민주화 요구도 점차 확대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교원의 교육 전문성과 자율성,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커졌고,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결성되었다. 정부는 이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여 약 1,500명의 교원을 해직하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는 당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아래에서 교육의 자율성과 국가 통제 사이의 긴장이 표출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과 대규모 교원 해직은 우리 교육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동시에 이를 계기로 교사의 전문성, 교육의 자율성, 교원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후 교원정책은 전문성 강화와 교육민주화라는 두 과제를 함께 고민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결론
1980년대 교육개혁은 흔히 과외 금지나 대학입시 개편과 같은 개별 정책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당시 교육정책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국가의 교육 책임을 유아기부터 성인기까지 생애 전반으로 확대하고, 교육재정과 교육자치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공교육의 형평성과 수월성을 함께 추구하고, 교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등 교육체제 전반에 걸친 폭넓은 개혁이 추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육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는 안정적인 교육재정을 확보하여 이후 교육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고, 교육자치는 지역 중심 교육행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또한 유아교육과 평생교육의 제도화는 교육의 공공성을 초·중등교육 중심에서 생애 전반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등학교 평준화와 과학고등학교 설립을 병행한 정책은 형평성과 수월성의 균형을 모색하려는 당시 교육정책의 특징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추진되었으며, 교육의 자율성과 민주성을 둘러싼 갈등도 지속적으로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세 도입을 둘러싼 재정당국과의 이견(동아일보, 1981), 유아교육과 평생교육의 국가 책임 확대를 둘러싼 관계 부처 간 조정 등 다양한 정책적 갈등 속에서도 교육을 국가 발전의 핵심 기반으로 인식하고 이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려는 정책적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결정은 안정적인 교육재정의 확보와 교육의 공공성 확대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교육체제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육정책사의 관점에서 보면 1980년대는 교육기회의 확대를 넘어 교육체제를 뒷받침하는 재정과 제도, 행정의 기반이 본격적으로 구축된 시기로 볼 수 있다. 이후 추진된 다양한 교육개혁, 특히 1995년 5·31 교육개혁이 제도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교육체제를 모색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기반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같은 시기 고등교육 분야에서도 대학입학정원의 대폭 확대와 졸업정원제, 대학본고사 폐지, 고교 내신 반영 등 우리나라 대학체제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 정책들이 추진되었다. 다음 호에서는 이러한 1980년대 고등교육 정책과 대학입시 제도의 변화가 우리나라 대학 발전에 남긴 성과와 한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