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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심 15화] 방관자 효과와 행동의 전염 “누군가 하겠지”

 

가끔 뉴스에서 마음이 뭉클해지는 장면을 보곤 한다. 차 밑에 깔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수십 명이 달려들어 차를 들어 올리는 시민들, 학교에서 배운 심폐소생술로 쓰러진 사람을 구한 학생들, 강도를 끝까지 쫓아가 붙잡는 사람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평범한 이웃들을 보면서 세상엔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이 많음에 안도하곤 한다.


하지만 정반대의 모습도 많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보면서도 ‘괜히 나섰다가 나에게도 불똥이 튈까 봐’ 외면하는 아이들, 옆집에서 싸움소리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도 ‘집안일이니까’라며 넘어가는 이웃들, 부당한 일을 당하는 동료를 보면서도 ‘내 일이 아니니까’라며 선 긋는 사람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무관심할까?’라며 씁쓸해지지만, 정작 내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일상에서 종종 방관의 순간을 만난다. 방관이라고 하면 흔히 누군가 위험에 처했는데도 모른 척하는 장면을 떠올리곤 하지만, 방관은 그렇게 거창한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며 ‘누군가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그 틈에서 한 걸음 물러서곤 한다. 회의에서 아무도 의견을 내지 않을 때, 누군가 부당한 말을 들었는데 모두 침묵할 때, 수업에서 아무도 질문하지 않을 때, 길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학교에서 한 학생이 혼자 남겨져 있을 때. 그 순간 우리 마음에는 비슷한 생각이 지나간다.


‘누군가 하겠지.’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있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닌가 보다.’
‘괜히 나섰다가 오지랖이라고 하면 어떡하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주변에 다른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개인이 나서기 어려워지는 심리학적 현상이 있다. 바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이다.

 

‘38명의 목격자’는 정말 아무도 돕지 않았을까? _ 키티 제노비스 사건

방관자 효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건이 있다. 1964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 사건이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38명의 이웃이 30분 이상 지속된 비명과 비극적인 살해 현장을 창문 너머로 목격하고도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 이야기는 ‘도시의 익명성이 사람을 무관심하게 만든다’는 상징처럼 퍼졌고, 이후 방관자 효과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일화가 되었다. 하지만 훗날 제노비스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당시 보도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38명이라는 숫자와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가 실제와 달랐고, 비명을 듣고 범인을 쫓아내거나 경찰에 신고를 시도한 이웃도 있었다.


그렇다면 방관자 효과 자체도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이 사건은 사회심리학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의 위기 앞에서 행동을 주저하는가?’ 이 질문은 이후 실험을 통해 본격적으로 검증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을수록 왜 행동하지 않을까? _ 방관을 만드는 세 가지 심리 기제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John Darley)와 빕 라타네(Bibb Latané)의 ‘인터폰 발작 실험’과 ‘연기 차오르는 방 실험’을 시작으로, 이후 다양한 연구들은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때때로 행동하지 않는 데에는 여러 심리적 기제가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표적인 것은 책임 분산, 다원적 무지, 그리고 평가에 대한 우려다.

 

● 책임 분산 _ “누군가 하겠지”
1968년, 달리와 라타네는 인터폰 발작 실험에서 도움 행동이 개인의 성격이나 도덕성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격리된 방에서 인터폰으로 서로 토론하던 중 한 참가자(연기자)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는다. 결과는 사뭇 흥미롭다. 자신과 발작을 일으킨 학생만 있다고 생각한 그룹은 85%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여러 명이 함께 있다고 생각한 그룹은 31%만이 도움을 요청했고, 반응 시간도 3배 이상 지연되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혼자 듣고 있다면 ‘이 상황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니, 내가 알려야 한다’라는 책임이 명확해진다. 하지만 나 말고도 들은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이 여러 사람에게 나뉘면서 ‘내가 해야 한다’라는 심리적 부담과 책임감이 약해진다. 책임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때문이다. 사람이 많아지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지만, 역설적으로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책임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상황을 해결할 책임 주체도 흐려진다.

 

● 다원적 무지 _ “아무도 안 움직이네”
‘연기 차오르는 방 실험’은 다른 사람의 반응이 상황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방 안에 연기가 들어오자, 혼자 있던 참가자의 75%는 2분 이내로 비교적 빠르게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 있도록 지시받은 연기자 2명과 함께 있던 참가자들은 연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울 때까지 10%만이 신고하러 나갔다.


우리는 혼자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주변 사람의 표정과 행동, 침묵과 반응을 끊임없이 참고한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이상하고, 나서고 싶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가만히 있으면 ‘내가 뭔가 잘못 본 건가?’라고 생각하며 나 역시 가만히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태도를 기준으로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는 심리를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한다. 문제는 다른 사람 역시 나를 보면서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속으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서로의 침묵을 근거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 평가 우려 _ “내가 나서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여기에 ‘괜히 나섰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내가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면?’, ‘괜히 끼어들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면?’처럼 다른 사람의 평가나 집단 반응을 의식하면서 행동을 주저하기도 한다. 특히 상황이 모호하거나 또래집단처럼 주변의 평가나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중요한 환경에서는 이러한 평가 우려(Evaluation Apprehension)가 행동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방관자 효과를 단순히 무관심이나 도덕성 부족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누군가 하겠지’라는 책임 분산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네’라는 다원적 무지 때문에 상황 자체를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여기에 ‘괜히 나섰다가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평가 우려까지 끼어들면,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과 실제 행동 사이에 틈이 생기고, 우리는 행동의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공감한다고 반드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또래집단에서는 이 틈이 더 커질 수 있다. 학교폭력을 목격한 학생이 피해학생을 돕고 싶어도 ‘내가 나서는 걸 다른 애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 정도는 장난인가?’, ‘괜히 튀는 것 아닐까?’ ‘내가 나섰다가 다음에는 내가 공격받으면?’이라는 생각 때문에 행동을 주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을 보고도 방관하는 것은 정의감이나 도덕성이 부족해서만도, 학교폭력에 찬성해서도 아니다.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기다리다가 방관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 연구자 크리스티나 살미발리(Christina Salmivalli)는 학교폭력을 가·피해학생 간의 개인적 문제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을 바라보는 학생들까지 포함한 또래집단의 과정(peer group process)​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주변 학생들은 가해 행동을 부추길 수도 있고, 웃거나 침묵할 수도 있으며, 피해학생을 도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공감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동까지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예방교육에서는 흔히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피해학생이 얼마나 힘들지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저 친구 정말 힘들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러니까 내가 선생님께 알려야겠다’라고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따라서 학교폭력예방교육에서 중요한 질문은 ‘가해하지 말자’라는 당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을 본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까지 가야 한다.


누군가를 돕는 방법은 반드시 정면으로 맞서는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필요도, 영웅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신고할 수도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그냥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지?’라는 실천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차를 함께 들어 올렸을까?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사람이 많으면 방관하기 쉽다는데, 시민들이 다 함께 차를 들어 올려 아이를 구하는 기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심리학자 피터 피셔(Peter Fischer) 연구팀의 메타분석에 따르면, 방관자 효과는 모든 상황에서 똑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명확하고 위험성과 긴급성이 높을수록 약해진다.
차 밑에 아이가 깔린 상황은 다원적 무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아이가 위험하며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함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혼자서는 절대 차를 들 수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명확하다. 이때 누군가 먼저 차를 향해 달려가 “같이 들읍시다!”라고 외치는 순간,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 상황에서는 움직여야 한다’는 신호가 된다. ‘행동’이 상황 판단의 기준이 되면서 책임 분산의 고리가 끊기고 행동이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방관자가 될 수 있다 
방관은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모호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고 있을 수도 있다.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내가 나섰을 때 부정적 평가를 받을까 두려울 수도 있다. 방관자 효과를 넘어서는 데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용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눈앞의 침묵이 모두의 생각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고, 먼저 움직이는 단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이면 충분하다. 그 한 사람이 집단의 다음 행동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방관도 전염된다. 하지만 도움 역시 전염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심리학을 배우는 이유는 그 침묵의 고리를 끊고 도움의 전염을 시작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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