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초 양산통도사에 매화를 보러 가는 길에 부속암자인 서운암에도 함께 들렀다. 서운암은 통도사의 부속 암자 중 가장 유명한 곳이다. 성파스님이 중창한 암자로 1985년부터 5년간 3천개의 불상을 흙으로 구워서 만든 도자삼천불을 모시고 있다. 2000년에는 약 9년간의 노력 끝에 십육만도자대장경을 완성하였다.
그런가하면 3년 여의 연구 끝에 생약재를 첨가한 전통약된장과 간장 개발에도 성공했는데, 이곳 된장을 구입하기 위해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오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뭐니뭐니해도 서운암을 대표하는 것은 야생화 군락지이다. 20여 만평의 야산의 백 여종의 야생화가 자라고 있다. 매년 4월에 ‘서운암 들꽃축제’가 열리는데, 축제 때가 되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4월 중순에서 5월말 경에는 100 여 종에 가까운 대부분의 야생화가 꽃을 피워 그야말로 꽃천지가 된다.
3월 중순에 찾아간 서운암은 많은 꽃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매화와 할미꽃 두 녀석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인 여행이었다. 할미꽃이 군데군데 피어오르며 봄을 알리고 있었는데, 사진 촬영에 열중할 무렵 무당벌레가 소풍을 나왔다. 벌레가 언제 다시 땅속에 숨어버릴지 몰라 서둘러 망원렌즈로 교체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녀석은 새순이 나온 할미꽃의 보송보송한 하얀솜털 위로 거북이처럼 아주 느리게 기어다녔다. 하얀 줄기의 끝으로 올라앉는가 싶더니 다시 줄기를 따라 내려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아직 나들이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한 것일까? 녀석은 약 1~2분 정도 아주 짧은 나들이를 끝내고는 영영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셔터소리에 놀래는 기색도 없이 제 갈길을 가던 녀석이 그렇게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만남동안 망원렌즈를 통해 아주 가깝게 만난 무당벌레의 움직임은 필자에겐 큰 희열을 안겨주었다.
할미꽃에 앉은 무당벌레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는 또다시 만나기 어려운 행운이다.
야생화군락지를 둘러보는데 맞은 편 언덕빼기의 소나무 두그루 사이로 연인이 지나가는 모습이 다정스럽다. 소나무가 있는 언덕은 멋진 조망포인트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암자 위로 내려쬐는 햇살이 따사롭다. 암자 앞쪽에 장독대가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채 햇살에 반짝이는 풍경은 산사가 아닌 시골의 전원풍경을 닮아 있다.
고향마을에 온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소나무 언덕에서 장독대가 있는 곳으로 내려서는 길 옆에는 매화가 만개해 나그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암자에 내려앉은 봄은 대지에 스며들며 그렇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문의 : 서운암 055-382-7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