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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내가 읽은 가장 최악의 책...강남몽

공존의 히트작, 『강남몽』

최근 공존의 히트를 기록(출간되자마자 넉 달 만에 18만부 가량 팔림)한 소설가 황석영의 『강남몽』을 서점에서 구입하여 읽었다. 조정래, 이문열 등과 함께 금세기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일컬어지는 그의 창작력을 의심해서는 아니었지만, 도대체 얼마나 잘 썼길래 주요일간지에서부터 인터넷 배너 광고 등에까지 저리도 요란하게 홍보를 하는가 싶은 궁금증이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읽기 전에 각종 블로그나 뉴스 자료 등을 검색해 보고 사전 배경 지식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에 그의 삶의 궤적들이 작품 속에 잘 녹아 있다는 대중들의 지배적인 생각에 좀처럼 공감대를 형성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될런지 모르겠지만, 귀한 시간 쪼개어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정도가 이렇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겨우 이 정도의 책을 만원이 훌쩍 넘는 거금(?)을 들여 살만한 가치가 과연 있었나 하는 점이었다.

최근에 이 책을 긍정적으로 읽고 나름대로 감명을 받은 누군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겨 놓은 글이 눈에 띄었다. “400페이지도 못 되는 한 권의 책속에 해방 전 만주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의 우리 민중들의 애환과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이었다. …… (중략) …… 박정희. 김구. 여운형. 박헌영 등 우리의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다시 불러와, 그들과 함께 역사의 흐름을 따라 흐르는 기분을 들게 한 소설이었다. 숱한 정치가, 사업가, 조직폭력배, 화류계 여인 이야기가 나왔지만, 역시 나(해당 블로그의 실제 주인)와 같은 하층을 이루고 살았던, 임판식, 정아, 민자 언니 등에게 더 공감을 하고 시대를 거슬러 그들과 함께 호흡을 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그가 본 사실이 분명 잘못된 것은 아니리라. 이 말은 블로그 주인이 틀렸고, 내가 맞다는 단순 논리를 뜻하는 게 아니다. 대문호가 썼기에 그래서 그만큼 후하게 점수를 주기엔, 작품 전반에 흐르는 모순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꿈(夢)과 꿈(dream, hope)의 차이

대한민국의 소위 1%라는 강남공화국(?)에 살고 있는 그네들의 삶의 애환이랄까, 그들이 성장하게 된 배경을 들여다보는 이 이야기는, 석연치 않은 데가 몇 군데 있어 보인다. 황석영은 말한다. 우리 나라의 근간을, 아니 주축을 형성하는 강남 피플들은 우리가 보는 실제의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꿈으로서 존재한다고, 그래서 실체 없는 그 허영들이 언젠가는 쓰러져 나갈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꿈이 깨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그건 더 이상 꿈이라고 할 수 없다. 꿈은 어디까지나 잠 속에서만 이루어져야 하고 무의식 속에 잠재된 우리의 생각들이 약간의 환상과 가미되어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꿈은 한바탕의 화려함 뒤에 따르는 처절한 현실 인식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보면 황석영이 말한 "강남몽"은, 아무리 한여름밤의 꿈같이 일장춘몽할 꿈이라 해도 "夢"의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든다.

강남은, 그리고 강남에 산다는 것은 최소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간다는 자부심은 물론이고 그 인생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성공이라는 보증수표 역할을 하고 있다. 오죽하면 강남에 산다고 하지 않고, 강남에 입성(入城)했다고 표현할 정도니까. 그래서, 강남은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형이자 어쩌면 부유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아로새겨진 지고의 가치인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처럼, 대성백화점의 붕괴와 함께 그렇게 속절없이 스러질 수 있는 것이 강남공화국의 본질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이 자본주의가 더욱 공고해 질수록 강남-비록 황석영의 말처럼 그 실체가 허상일지라도-의 생명력은 더욱 굳건해 질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백화점의 붕괴와 함께 강남 피플을 대표하는 박선녀와 나머지 99%의 중산층 및 하층민을 대표하는 임정아-사실 그녀는 하층민에 지나지 않지만-가 함께 잔해에 매몰된 그 장면에서, 그리고 두 사람이 정상적인 시스템이었다면 결코 나누었을 리 없는 그런 솔직한 대화를 이끌어 낸 그 장면에서, 황석영은 의도했는지도 모른다. 실체없는 그 허영들이 쓰러져 나가는 적나라한 과정을……. 너무도 우습지만 그렇게 해서 무너질 강남의 아성이었다면 애초에 성립 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바의 노래(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승자가 되는 가장 최종적인 목표는 적어도 우리 나라에선 강남에 입성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강남몽의 몽은 “夢”이 아니라 “꿈(dream, hope)”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의 제목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강남몽이 아니라 강남 드리밍(dreamming)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본다.

흥미 위주의 에피소드의 무분별한 남발

다음으로, 이야기의 전개라는 측면에서도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다. 강남을 형성하게 된 그네들의 삶을, 어떻게 태동이 되었고 또 어떤 식으로 성장해 왔는지 그 궤적을 더듬어 본 것까진 좋았는데, 필요 이상의 등장인물들까지 훑어 본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또 그렇게 한 것이 그저 훑어본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원래의 작가의 의도를 지나치게 훼손할 만큼 이야기 전개에 있어 너무 흥미 위주의 에피소드를 무분별하게 나열했다는 점이다.

삼풍백화점을 풍자한 대성백화점의 김진의 생을 더듬어 볼 때에도 그렇게 세세하게 언급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평범한 여인에 지나지 않았던 박선녀가 요정(화류계)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십분 활용해 결국엔 대재벌 총수의 후실이 됨으로써, 누구나가 꿈꾸는 신분의 급상승을 이루어 낸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그의 동업자 홍양태라는 조직폭력배의 생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세세한 언급은 흡사 조직폭력배를 화두로 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또 일제식민지와 전후 문제의 청산 속에 굳건히 자라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세력들과 그 잔재들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도 필요 이상의 사족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음의 기사를 보면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의도의 과잉과 형상화의 미흡’이란 제목의 글에서 “‘강남몽’은 말 그대로 강남 형성사를 다루고 있다”고 전제한 뒤 “등장인물들은 ‘꼭두각시놀음’의 캐릭터처럼 현실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풍자·희화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파편화된 에피소드들은 ‘강남 형성사’라는 중심 서사의 흐름에 온전히 수렴되지 못하고 제각기 부유하고 있는 인상”이라고 지적했다. …… (중략) …… ‘강남몽’의 인물들은 역사의 주요 갈피와 흐름을 실감나게 체현한 개인이 아니라 역사에 압착된 개인이라고 전제, 이는 ‘강남몽’이 주어진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인물들을 서사를 전개시키기 위해 매우 기능화된 단자로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강남몽’은 거대한 역사의 지류를 조형화하기 위해 다층적인 욕망, 차이의 욕망이 발산하는 역동적인 서사의 세계를 방기한 매우 순응적인 텍스트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젊은 평론가 고인환·권채린씨, ‘강남몽’ ‘허수아비춤’ 정면 비판」, 2010.12.10, 국민일보)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 진짜로!

잡다한 얘기들을 너무 두서없이 한 감이 없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난 이 책을 그다지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니, 친밀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가급적이면 읽지 말라고 얘기해 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냥 흥미 위주로-작가에게는 심각한 명예훼손이 될지 모르지만-, 그저 예능 프로그램 하나 보는 기분으로 보기를 원한다면 모를까, 뭔가를 얻기 위해서 이 책을 보려 한다면 말리고 싶다.

황석영 씨의 글솜씨는 그야말로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누구나가 인정한다. 그래서 스토리 상으로 보면 분명 재미는 충분하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의도나 주제 의식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쯤엔 ‘그게 어디 있더라?’하며 헤매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솔직히 광고가 너무 요란했다. 대문호가 쓴 작품이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렇게 충심으로 믿고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보고 나서 밀려드는 허탈감을 견딜 수 없다. 이번에 확실히 한 번 더 느꼈다.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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