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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그리고 나서 말하라

“학생들은 쓰기를 두려워한다.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는데, 논리적인 생각은 독서량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읽고 쓰기가 안 되는데 말하기가 제대로 될 리 없다. 학생들이 내용이 있고 연결성 있는 언어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경우가 드물다.”

70년대 중반, 고등학교 은사님 이야기부터 꺼내야겠다. 당시 그 선생님은 여름 방학 과제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방대한 저작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라고 하셨다. 아울러 교과서에 등장하는 시조 전편과 추가분을 책자화해 거의 100여 수에 육박하는 시조를 외워 오라고 주문하셨다. 우리 대부분은 ‘에이, 설마 검사하시려니’, 반신반의하며 다소 불안하게 방학을 보냈다.

개학 이후 거대한 폭풍이 몰려 왔다. 각 반에서 당신의 방식대로 과제를 검사하시던 그 선생님의 당당한 위엄을 난 결코 잊을 수 없다. 학번 순서대로 불러 시조를 외우게 하셨고, 그 두꺼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아무 페이지나 턱하니 펼치시고는 앞뒤 내용을 설명하라셨다. 2학기 내내 탈락자들은 재시험을 치러야 했으니, 그네들에게는 국어 시간이 경악과 공포 그 자체였다. 당연히 탈락자들의 불평과 불만은 고조됐고, 심지어 조급한 학부모는 교장실로 항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

40여 년 가까이 되는 지금 난 그 은사님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에게 운문의 서정성과 산문의 유장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신 분이셨다. 난 그 이래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죄다 섭렵했고, 선생이 된 지금 수업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시조를 줄줄 외우고 있다. 그 당시는 활자 매체가 가장 존중 받던 독서의 시대였다.

근자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난독증(難讀症)이다. 보이지만, 읽지 못한다는 난독증은 ‘독서 장애’라고도 한다. 그리스어 dys(불충분, 미숙)의 접두어에 lexis(말, 언어)라는 단어가 결합된 말이다.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가 앓고 있으며, 1Q84의 후카에리가 지닌 병, 다이렉시아(DYSLEXIA)이다.

문제는 오늘 날 우리의 학생들은 이러한 집단 난독증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개중에는 증상을 치료 받아야 할, 선천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게다. 하지만 필자가 관심을 두는 부분은, 지독히도 책을 접하지 않아, 독서량 자체의 부족으로 인해 생겨나는 후천적이고 습관적인 난독 증상이다.

80년대 중반 부임 당시를 회상해 본다. 학생들의 독서력은 그 자체가 소중한 자기 계발 능력으로 숭앙되었다. 그러기에 당시의 학생들에겐 그만 나이 때의 객기라 할 ‘지적 허영’도 생생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독서량이 많은 학생들을 찾기가 힘들다. 학생들은 활자로만 한 페이지 분량을 넘어가면 몹시 힘들어 한다. 앞 문장과 뒷문장만 읽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포기한다. 중심 문장과 보조 문장, 보편 진술과 구체 진술과의 연관 관계를 따질 여력이 없다. 그러니 어떤 글이든 제시문을 제대로 분석해 내지를 못한다. 논제 파악이나 논점 분석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활자 매체를 통한 심층적인 사고를 소홀히 한 심각한 결과이다.

이 점은 분명히 사회적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이 된다. 분명 시대는 가벼워졌다. 감각적 인상은 있으나, 진중한 사색은 없다. 여기에다 동영상, 컴퓨터, 스마트 기기와 같은 정보화의 발전에 따른 영상 매체의 범람에 학생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 중독이다시피 학생들은 영상 매체에 매달린다. 잡지 한 권조차 읽지 않고, 편지글 한 줄조차 쓰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학생들을 붙잡고 그들에게 독서 지도와 논술 지도를 하려니 진이 빠진다.

교육청에서는 독서토론논술 교육에의 시행에 대한 건수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내온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이다. 교육 정보화한 미명 아래, 현장 교사의 업무량은 나날이 과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실정에 독서토론논술 교육이라면 이는 그 누군가의 무한한 희생을 담보로 한다. 입시제도 개혁과 현장 교사를 위한 교육 시스템의 개선 없이는 독서토론논술에 대한 공문은 어디까지나 ‘건수 보고’에 그치게 될 것이다.

매년 통계화되는 도서관의 대출 권수를 보면 학생들의 독서량 감소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니 학생들은 쓰기를 두려워한다.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는데, 논리적인 생각은 독서량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읽고 쓰기가 안 되는데 말하기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생활 면담조차 지도 교사가 묻는 말에 짤막하게 답하는 것이 전부다. 학생들이 내용이 있고 연결성 있는 언어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경우가 드물다. 어렵사리 토론 수업을 시도해 보면, 난장판이 된다. ‘왜’와 ‘그러니까’의 이유와 논거 제시가 없다. 그냥 좋고 그냥 싫은 것이다. 지도 교사가 조금만 방심하면, 학생들은 엉뚱한 주변의 말 한마디에 휘둘려, 논점에서 벗어나 횡설 수설하고 만다.
 
공자는 “공부만 쌓고 사색하지 않으면 어지러워지고, 사색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며 ‘공부(지식)’와 ‘사색(독서)’의 조화로운 관계를 설파한 바 있다. 눈부신 오월을 보내며, 바쁜 때일수록 더욱 깊이 있는 독서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시 꺼내 읽으며 수업 시간에 고등학교 은사님 이야기를 전달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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