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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교육에 관한 인연이랄까. 나는 대학을 갓 졸업 했을 때, 구로공단 쪽에서 야학을 했었다. 공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희미한 형광등 아래 모여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교. 나이도 스무 살 전 후, 시골에서 상경한 뭇 20대들이 술집과 다방에서 웃음을 파는 시대에 ‘무식’과 ‘가난’의 고리를 끊고자 책을 펴든 그들이 참 눈물겨웠다.

나는 입시학원에도 있어보았고, 섬의 어느 분교에서 꼬맹이들을 가르쳐 본 적도 있다. 열 댓 명이 전부였던 분교, 어떤 꼬맹이는 아기를 등에 업고 오기도 했었다. 선생도 잠옷 바람에 바다를 보며 애들을 가르쳤다. 순진한 그 꼬맹이들에겐 바다가 선생이었고 백사장이 칠판이었다.
그 후로 나는 경기도에 와서 20년 넘게 고등학생을 가르치게 되었고 학교와 학부모, 선생이 어떤 존재인가를 몸으로 배웠다. 아마 내게 분필가루 같은 백색 유전인자가 있는 것 같았다. 교직을 선택한 게 우연이 아닌 천직이랄까.

나는 그동안 주변의 명문학교들을 탐방했다. 민사고로부터 특목고, 자사고까지 그들이 왜 명문일 수밖에 없는가를 가슴에 스크랩했다. 누가 시켜서 한 건 아니었다. 그냥 그들의 질 좋은 교육을 배워보고 싶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로 요약됐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반듯하다는 것, 선생이 지극히 학구적이라는 것 그리고 부모들이 겸손하다는 것이다. 인성과 학력이 교육의 핵심이라 한다면, 희한하게 그들은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우수했다. 그만큼 그들은 검증된 자기 연찬의 시간을 보냈다고나 할까. 스티브 잡스가 말한 "Stay hungry, stay foolish"처럼 갈망과 우직함으로 살아왔다고밖에 볼 수 없다.

민사고에 갔을 때, 교문에서 만난 충무공과 다산 선생, 그리고 건학이념을 보면서 문득 거창고등학교를 같이 떠올렸다. 줄 세우기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의 자존심을 지킬 첨병으로서의 정신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생각을 했다. 낯선 방문객에게도 아이들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공손히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그것은 영재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주에 있는 어느 학교를 탐방했을 때 '아,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선생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책상에는 전문 서적과 연구 자료들이 탑을 쌓고 있었다.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알려면 교무실 책상과 학생들의 책상을 보면 알 것 같다. 명문학교일수록 책이 말해준다. 선생들과 학생들의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책들이.

나의 학창시절도 그랬다. 누가 남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도서관하고 집밖에 몰랐다. 학생이 선생을 거스르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하는 것으로만 알았다. 몸의 유전인자가 늘 ‘책’에 굶주렸다고나 할까. 서울 국립대에 백 명 넘게 진학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만큼 순진했고 가혹하게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철’이 들었다는 얘기가 아닐까.

요즘, 나는 학교로 말미암아 피곤하다. 화장을 한 여학생에게 “너 화장하는 것 엄마가 아시니?” 묻자, “엄마가 화장 좀 하고 다니라면서 화장품 사줬는데요?” 깜찍하게 말하는 표정에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교복의 치마도 엄마가 미니로 짧게 줄여 준단다. 매우 친절한 엄마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자기주도학습이 무엇인지, 책을 읽다가 감전된 느낌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 또 그 엄마들. 요즘 엄마들은 툭하면 담임선생한테 전화한다. “우리 아이는 대학 안 갈 거니까 공부하란 얘기 하지 마세요. 알았죠?” 아이에게 꾸지람이라도 한다치면 “우리 애가 무슨 잘못이 있어 혼내켰죠?”하며 득달같이 전화로 선생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일선 교사들은 방관론자나 회의론자가 되어버렸다. 교육이 뭐 장난인가. 현장을 모른 채 조례를 만들고 정책을 입안한 사람들, 아이의 가슴에서 선생을 몰아낸 그들이 반성해야 한다. 부모도 전화기 앞에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백묵을 만지며 선생이 반성해야 한다. 철새처럼 절망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늘을 보면 교육이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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