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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끝났어요"

지긋지긋한 수능이 끝났다. 선생한테도 학생들한테도 수능은 그동안 무거운 ‘짐’이었다. 저마다의 짐을 내려놓은 지금은 모두 허탈하다. 언젠가 TV에서 본 ‘차마고도’처럼 우리의 여정은 산맥 몇 개를 넘어온 대장정이었다. 온몸이 좀 쑤시는 시간을 묵묵히 감내해준 학생과 그 부모들이 고맙기도 하다.

등산이 그런 것처럼 우리만이 아니다. 산악인들도 가족과 헤어지는 안타까움과 설산에서 크레바스의 공포를 이겨낸 뒤 히말라야를 얻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DNA에는 오래 전부터 도전과 투쟁의 인자가 있어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부르면 그만인 짐승과 사뭇 다른, 산이 있어 올라야 하는 인간만의 특징이 아닐까.

수능을 끝낸 후,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선생과 부모는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복불복처럼 서로의 희비가 다르겠지만, 만나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시험 잘 치렀니?” 그러면 대부분 “잘 못 봤어요”라는 대답이다. 그게 겸손한 어법이 아님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수시 모집 원서는 몇 개나 썼니?” 물으면 열 몇 장 썼다고 상기되어 웃는다.

인생의 험준한 산을 오르려면 무슨 준비를 하고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하는지 얘기해 준 사람이 없는 듯하다. 인생 여정이 상당히 가파르다는 것을, 어느 코스 건 평탄한 꽃밭 길은 없다는 걸 아무도 일러준 적이 없는 아이들.

신입생 때는 새내기니까 놀고, 2학년 때는 아직 수험생이 아니니까 여유 부리고, 3학년 되어서야 이제 공부해야지 책을 폈다가 작심삼일. 그제야 인생이 빙벽임을 깨닫는다. 사실 공부가 어디 마음먹는다고 해낼 수 있는 일인가. 만시지탄에 빠진 아이들은 이제 이 지루한 여정이 끝나길 바란다. 그러다 수능 백일 전 날이면 동병상련의 동지끼리 모여 백일주를 높이 들고…. 정말 우리의 아이들이 다 그런 건 아니고, 또 아니라고 믿고 싶다.

“Rome was not built in a day.” 우리는 이 격언을 얼마나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는가. 그러나 요즘 어른이나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믿는다. 로또 대박의 시대에 살아서 그런지 미래를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즐거우면 그만이다. 성적(成績)이란 한자가 열심히 ‘길쌈하여 이루어 놓은 상태’를 말한다면 분명 그 과정을 중시해야 함에도 우리 아이들은 중요성을 간과한다.

변질된 교육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교육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다. “공부는 애들이 알아서 하는 거죠.”, “애들이 하기 싫다면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없어요, 시대가 바뀌었어요”라고 한 결과다. 지독히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시대. 왜 공부해야 하는가를 가슴으로 알려주지 않는 시대. 일러주어도 듣지 않는 그 황무지에 학교가 있다.

공부의 참맛을 잃어버린 세대. 수능 끝났다고 해서 참맛이 돌아오겠는가. 지금 고3 교실은 집단적인 ‘해방’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과의 연애에 빠져 손에서 떼지를 못한다. 수불석권(手不釋卷)! 책을 그렇게 대했으면 얼마나 좋으랴. 선생이 들어와도 마냥 게임과 댓글에 몰입해 눈을 돌리지도 않는다. 짝꿍하고 대화도 없으니 조용하긴 하다.

정말 책을 기피하는 아이들. 책이라면 통속 소설 몇 권과 EBS교재 십여 권이 전부인 줄 아는 아이들. 우리의 잘못이다. 부모가 매일 텔레비전 앞에서 살고, 선생도 인터넷에 매몰되어, 보고 자란 게 그런 것인데 뭐라고 할 것인가. 어른들도 스마트폰을 분신처럼 끼고 다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어떤 ‘쓴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사도지침이 사라진 학교, 교사의 위엄도 흑백사진처럼 퇴색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대부분 학교에서는 고3 기말고사를 치렀다. 시험에 임하는 아이들의 자세도 참 가관이었다.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이들은 합격했다고 대충, 나머지 아이들도 편승하여 대충, 모든 걸 대충으로 끝냈다. 누가 이처럼 함부로 살라고 했던가.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태도.

어느 학급 칠판 위에 걸린 '끝까지 최선을'이란 급훈이 무색하다. 새들은 머릿속에 철(Fe)이 있어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데 철도 들지 않은 우리 아이들은 어둠이 내리는 시간 어디로 갈 것인가. 시내 곳곳에 네온이 꽃피기 시작하는 시간, 그들은 무사히 어둠을 건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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