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의 격심한 변화를 느끼는 대목은 멘토의 부재이다. 부임 당시 난 교무실에서 선배 교사들을 뵈면서 그들을 멘토로 교육적 담론을 듣곤 했다. 거개는 수업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교사로서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물어 듣던 시간이었다. 진정 교무실은 그런 공간이었다.”
80년대 부임 당시 교무실의 꽃병들은 흔하던 모습이었다. 당대의 학생들은 선생님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다양한 꽃병과 그보다 더 다양한 꽃으로 표시하곤 했다. 은근히 살짝 들어와서는, 장미, 카네이션, 백합 등속을 안개꽃에 섞어 꽂고 물을 갈아주곤 했던 많은 손길들. 혹여 일찍 출근하다 꽃을 손질하는 그네들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보는 이나 꽃을 다듬는 이나 서로 부끄러워하던 그 시기는 분명 낭만 시대였다. 무슨 꽃이 대수냐고 시비 걸지 말지니. 요컨대 당시의 꽃이란 교사와 학생을 매개하던 시대정신이요, 당대의 메타포였다는 게다.
교무실에서 격심한 변화를 느끼는 또 하나의 대목은 멘토의 부재(不在)이다. 부임 당시 교무실의 풍경을 회상하노라니 참으로 아련한 생각이 든다. 난 각 집무실의 선배 교사들을 뵈면서 그들을 멘토로 교육적 담론을 듣곤 했다. 거개(擧皆)는 수업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교사로서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물어 듣던 시간이었다. 진정 교무실은 그런 공간이었다.
90년대 들어 교무실에 점진적으로 도입되던 컴퓨터는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각 선생님들 각자에게 보급됐다. 개인 컴퓨터의 보급은 교무실의 지형지세를 바꾸어 놓았다. 모든 교육적 프로세스는 컴퓨터를 통해 이뤄지게 됐고 급기야 2010년대를 기점으로 봇물처럼 이루어진 전면 전자시스템 도입은 가르치는 현장을 행정 처리의 아수라장으로 변화시키고 말았다. 가뜩이나 팀플레이에 취약한 각 교사 간의 관계는 이로써 더욱 파편화되고 개별화됐다.
교무실의 선배 교사들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많은 자극이 되어주던 분들이었다. 그 멘토들은 어느 새 하나 둘씩 학교를 떠났다. 정년이 되어 떠나신 분들도 있지만, 명예퇴직의 길을 택한 분들도 많다. 말이야 ‘명예’ 퇴직이지, 떠난 빈자리와 그들의 뒷걸음이 쓸쓸함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었다.
그간의 교육 경력에서 멘토들의 조언과 나름대로의 고민을 통해 얻는 학생들과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 “교실에서 일대 다수로 학생들을 대할 때에는 품위 있게”, “교실 이외의 장소에서 일대 일로 학생들을 대할 때는 거리감 있게” 요컨대 학생과 교사 사이에는 교탁 하나만큼의 사이를 두어야 한다는 거다. 한데 오늘날 이 교탁 하나의 거리는 큰 굉음을 내며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다시 교무실을 돌아본다. 학생들의 교무실 안에서의 행동은 거리낌이 없다. 교무실 주변을 맴돌며, 특정 선생님을 찾아 수시로 드나들며, 심지어 교무실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학생조차도 발견된다. 불과 수년 전 미국 동부의 유수의 사립고들을 둘러본 적이 있다. 난 그곳에서 분명 보았다. 자유롭지만 엄격한 질서와 규율이 살아 숨을 쉬고 있는 현장을.
인사(人師)의 스승과 사회의 어른, 그리고 교육의 멘토들은 ‘귓전에 방울소리를 남기며’ 저 멀리 목마를 타고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친절하고 자애로운, 형 같은 선생님, 언니 같은 선생님들인 ‘사탕 교사’들이 채워가고 있다.
처음으로 자발적 비담임을 신청한 올해 초, 젊은 후배들은 내게 조금도 망설임 없이 주당 19시간에 방송반 업무를 맡으라고 요청한다. 얼마 전 한 후배 교사는 설문지를 쑥 내밀더니 바로 써서 달란다. 받아보니 개인의 성과급 산정에 관한 항목 리스트다. 분명한 것은 그 항목 어디에도 교육 고경력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교육 행위가 전면 계량화되는 참으로 무참한 세월이다. 그러기에 난 오늘도 멘토가 떠난 교무실에 앉아 ‘후생가외(後生可畏)’를 외치며, 수업과 잡무에 지쳐 망연자실해 한다.
공자는 “예의와 겸양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예의와 겸양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예는 무엇에다 쓰리오”라고 했다. 교육의 방도란 치국(治國)의 방도와 다를 게 없다. 그러기에 ‘메아 쿨파(MEA CULPA·내 탓이오)’를 외치자는 천주교의 선언처럼, ‘이 모든 게 다 내 탓이요’라는 교육적 각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인가 한다.